[특파원 리포트] 1257만대1, 중국 ‘7개의 별’이 되는 길
원종태 특파원의 China Report
베이징(중국)=원종태 머니투데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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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시진핑 주석의 1인 권력 강화를 공식화한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6차 전체회의’(6중전회)가 막을 내렸다. 시 주석은 예상대로 장쩌민 전 주석 이후 사라진 ‘당 핵심’이라는 타이틀을 14년 만에 거머쥐며 세계에서 가장 큰 당의 서열 1위(총서기) 자리를 확고히 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제 시선은 내년 가을 열리는 제19차 당 대회(5년 단위)에 쏠린다. 시진핑 집권 2기(2018~2022년)와 맞물리는 이 당 대회는 시 주석 이후 차기 최고지도자의 윤곽이 드러나 또다시 중국을 정치의 계절로 몰고 갈 전망이다.
이미 서슬퍼런 반부패 활동으로 시 주석은 경쟁 관계에 있는 장쩌민파(상하이방)와 공청단파에 치명타를 가했다. 시 주석이 차기 최고지도자로 어떤 인물을 낙점하고 퇴임 이후 어떻게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하느냐는 그가 속한 태자당의 운명도 가를 승부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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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치의 왕별, 상무위원이 뭐길래
간단치 않은 중국 정치구도를 푸는 해법은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라는 자리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상징하는 상무위원은 중국에서 단 7명에게만 허용된다. 정권이 바뀌어도 ‘전직 상무위원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무위원의 파워는 막강하다.
일부에서는 중국 공산당 최상위 권력그룹인 ‘상무위원’에 대한 불문율이 이미 깨졌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2014년 7월 전직 상무위원인 저우융캉이 비리 혐의로 중앙기율검사위원회(기율위)의 조사를 받고 그해 12월 공산당 당적까지 박탈당하자 분위기가 바뀐 것이다.
저우융캉 처벌로 상무위원의 위세가 꺾였다고 하지만 그래도 상무위원은 상무위원이다. 중국을 이끄는 7명의 왕으로 불리는 상무위원은 왜 이처럼 대단할까. 중국 최고 권력에 오르는 필요충분조건이 바로 상무위원이기 때문이다.
상무위원은 아무나 될 수 없다. 우선 공산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6중전회 출석 기준 197명)이나 중앙위원에서 결원이 생길 경우 이를 보충하는 후보 중앙위원(6중전회 출석기준 151명)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 여기서 다시 25명의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돼야만 비로소 상무위원 후보가 될 자격이 생긴다.
정치국 위원 중에서도 ‘꽃 중의 꽃’으로 꼽히는 상무위원은 1257만명 중 단 1명에게만 허용된다. 결국 후보 중앙위원→중앙위원→정치국 위원→정치국 상무위원→최고지도자(주석 및 총서기) 순으로 가파른 권력의 계단을 하나씩 모두 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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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석도 상무위원까지 파란만장 행보 거쳐
시 주석이 지금의 국가 주석과 당 총서기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드라마처럼 이 좁은 바늘구멍들을 연이어 통과했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1997년 15차 당 대회 당시 푸젠성 부서기였다. 그는 이때만 해도 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193명은커녕 후보 중앙위원 150명 명단에도 오르지 못했다.
그런데 그해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무슨 이유에선지 후보 중앙위원을 150명에서 1명 더 늘린다. 시진핑을 위해 누군가가 힘을 써줘 151명을 뽑았다는 분석이다. 시진핑은 간신히 후보 중앙위원에 턱걸이를 했다.
여기서부터 운명의 시계가 작동한다. 시진핑은 이후 2000년 푸젠성의 성장이 된다. 그리고 2년 후인 2002년 5월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전 부총리)의 부음이 알려졌다. 시중쉰의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러졌고 정계의 내로라하는 인물이 모두 참석했다. 푸젠성 성장 시진핑의 존재가 만천하에 알려진 결정적 계기가 바로 이 장례식이었다.
장례식 5개월 후인 2002년 10월. 시진핑은 저장성 부성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는 곧바로 저장성 서기로 초고속 승진하며 그해 가을 16차 당 대회에서 ‘후보’를 떼고 정식으로 중앙위원이 된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중앙정치국 위원에 등극한다. 시진핑은 상무위원 지위의 턱밑까지 다가간 셈이다.
◆상무위원이 되는 마지막 한방
만약 홀수차 당 대회가 열리는 2007년 가을 17차 당 대회에서 상무위원이 되지 못했다면 시진핑의 정치 운명은 거기서 끝났을지 모른다. 주석의 임기가 10년인 데다 상무위원을 새로 뽑는 당 대회는 5년마다 열리기 때문이다. 당시 54세였던 그가 차기 주석이 되려면 반드시 이 대회에서 상무위원이 돼야 했다.
그때 하늘이 시진핑을 돕는 사건이 터진다. 2006년 9월25일 장쩌민파의 핵심 인물인 상하이시 서기 천량위가 면직된 것. 천량위는 장쩌민이 상하이 시장을 맡고 있을 때 일찌감치 후계자로 지목하고 영국 유학까지 보내준 인재다. 유학에서 돌아온 후 그는 상하이시 시장과 시 서기를 맡으며 16차(2002년) 당 대회에서 정치국 위원이 됐다.
천량위는 이 추세라면 후진타오 주석 집권 2기인 2007년 17차 당 대회에서 상무위원 자리를 꿰차며 차기 대권을 이어받게 돼 있었다. 그러나 천량위는 이를 감당하지 못했다. 당시 후진타오 주석(공청단파)이 중국 경제의 양적 성장을 비판하자 천량위는 이것을 상하이방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받아들이고 맞받아친다. 그는 “개혁·개방은 자전거와 같아 멈추면 쓰러진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후진타오는 현 주석이자 공산당 총서기였다. 후진타오는 천량위의 이 발언이 자신에 대한 장쩌민파의 공격이라고 판단하고 천량위를 캐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6년 9월25일. 천량위는 사회보장기금 329억위안을 횡령한 혐의로 상하이시 서기에서 물러났다.
졸지에 차기 대권주자를 잃은 장쩌민파는 천량위 후임으로 누구를 앉히냐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이때 장쩌민파와 공청단파의 가교 역할을 하던 쩡칭훙이 장쩌민에게 상하이시 서기로 시진핑을 추천한다. 시진핑 저장성 서기를 상하이시 서기에 앉힌 것이다. 그때가 2007년 3월. 시진핑은 7개월 후 열린 17차 당 대회에서 서열 6위의 상무위원이 되고 차기 대권 자리를 거머쥔다.
◆역사는 반복된다, 중국의 1년 ‘정치 소용돌이’ 예고
흥미로운 것은 장쩌민파가 천량위 비리 사건으로 곤경에 몰리기 10년 전 장쩌민파도 똑같은 방식으로 상대편 대권주자를 견제했다는 점이다. 1997년 당시 장쩌민 주석은 맞수인 베이징방의 차기 대권주자 천시퉁 베이징시 서기를 역시 비리 혐의로 물러나게 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특히 장쩌민파와 공청단파, 태자당이 서로 물고 물리는 권력 관계로 얽힌 중국에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이제 시 주석은 막강한 권력을 굳혔고 1년 남은 내년 19차 당 대회까지 차기 대권주자의 윤곽을 결정해야 한다. 앞으로 중국 정계는 1년 동안 엄청난 소용돌이가 몰려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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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명 중 무려 5명의 상무위원을 교체해야 한다. 벌써부터 일부 중화권 언론은 이 5자리를 놓고 파벌 간 진검승부가 시작됐다고 본다. 아무리 촉망받는 차기 대권주자라고 해도 상무위원으로 낙점될 때까지는 숨도 안 쉬고 납작 엎드려 있어야 한다. 시진핑의 등극처럼 변수는 무한대로 펼쳐져 있다. 바야흐로 10년 만에 중국이 정치의 계절로 깊게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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