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회사원 서모씨(40·남)는 회식 탓에 회사에 차를 둔 채 퇴근했다. 다음날 자동차 키 챙기는 것을 깜빡한 채 출근했지만 걱정이 없다. 집에 있는 아내가 서씨의 스마트폰으로 가상 키를 보내주면 문제가 쉽게 해결된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키 정보가 블루투스와 NFC기능으로 차에 전달돼 스마트키를 지닌 것과 마찬가지로 문이 열리고 시동이 걸린다. 머지않아 실현될 첨단기술이다.


#2 운전경력 3년차 주부 김모씨(35·여)는 차 문을 제대로 잠근 건지 헷갈릴 때가 많아 고민이다. 이런저런 짐은 물론 아이들까지 챙기다 가끔씩 도어락 잠그는 것을 깜빡한다. 하지만 김씨는 최신형 차종으로 바꾸면서 이런 걱정이 줄었다. 키를 지닌 채 차에서 멀어지면 스스로 문을 잠그는 데다 스마트키의 정보 버튼을 누르면 마지막 내린 명령이 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어서다.

자동차에 ‘연결성’(connectivity)이 부여되면서 ‘열쇠’(key)의 중요성도 점점 커진다. 그동안 열쇠는 잠긴 차 문을 열고 시동을 거는 역할에 그쳤지만 이젠 차의 각종 정보를 파악하고 제어하는 ‘스마트 디바이스’로 진화 중이다. 이런 이유로 콘티넨탈, 덴소, 현대모비스 등 글로벌 전장업체들은 최근 자동차의 ‘열쇠’에 큰 관심을 갖고 연구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과거 리모컨식 잠금장치에서 터치스크린을 갖춘 최첨단 통신형 스마트키로 진화했고, 한걸음 더 나아가 스마트폰의 가상 디지털키도 개발됐다. 그동안 열쇠는 일정한 물리적 형태가 존재했지만 앞으론 ‘가상의 열쇠’가 이를 상당부분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박찬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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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 환영하는 '똑똑한 키'

자동차에서 열쇠는 잠긴 문을 열거나 시동을 걸 때처럼 역할이 제한적이다. 오래도록 쓸 수 있으면 충분해 납작하고 기다란 쇠막대기 형태를 유지했다. 비용이 적게 들어 지금도 많은 차종에서 활용하는 방식이다. 무선 리모컨이 등장했지만 문을 잠그거나 여는 기능만 담았을 뿐 그 이상은 없었다.

이후 스마트키가 등장하며 변화가 생겼다. 굳이 키를 꺼내지 않아도 문의 잠금을 해제할 수 있고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걸 수 있게 됐다.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다양한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어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툭 튀어나왔던 쇠막대기는 비상시를 대비해 스마트키 케이스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스마트키는 자동차에게 ‘주인’임을 알려주는 수단이다. 각각의 키에 고유의 값이 있어 맞춤형 서비스도 가능하다. 시트 위치나 실내 조명색, 운전모드 등을 키별로 지정할 수 있다. 운전자가 키를 지닌 채 차 근처에 다가가면 자동차는 환영의 인사로 주변을 환히 밝히며 운전자는 문 손잡이를 쥐는 행동만으로 도어락을 해제할 수 있다. 반대로 차에서 내려 거리가 멀어지면 스스로 문을 잠그기도 한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게 통신형 스마트키다. 정신없이 차에서 내려 문을 제대로 잠근 건지 헷갈릴 때가 있는데 통신형 키는 이런 상황을 대비해 개발됐다. 마지막으로 내린 명령이 무엇인지 알려줘 현재 차 상태를 파악하기 쉽다. 장거리 통신이 가능한 제품도 등장했다. 최대 1km 거리에서도 명령할 수 있다. 볼보와 어큐라 등이 적용 중이다.


다양한 기능을 구현하려면 버튼 개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어 아예 터치스크린을 집어넣는 경우도 생겼다. BMW 신형 7시리즈는 터치스크린이 달린 키를 통해 여러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

현존하는 방식 중 최종버전으로 꼽히는 건 스마트폰을 활용한 가상키다. 올 초 볼보자동차가 이 같은 기능을 개발 중이라고 발표했고 전장업체 콘티넨탈이 지난 14일 해당 기술의 상세 원리를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사진=박찬규 기자
/사진=박찬규 기자

◆가상키 시대 올까

가상키는 스마트폰으로 내려받아 활용할 수 있다. 전장업체가 스마트폰을 주목한 건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여러 통신표준에 쉽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가장 효과적인 가상키 분야로 카셰어링을 꼽는다. 국내 카셰어링업체 쏘카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도어락을 해제할 수 있다. 통신망을 이용해 정보를 주고받기 때문에 몇초의 랙(lag)이 있고 반드시 앱에서 기능을 작동해야 한다. 최근 콘티넨탈은 한걸음 더 나아간 방식을 발표했다. 블루투스와 NFC 통신기술로 자동차와 직접 연결하는 것으로 가상키를 발급받아 물리적 조작 없이 스마트키처럼 이용할 수 있다. 매번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불편도 사라진다. 카셰어링이나 렌터카 등 여럿이 차를 공유하는 경우 큰 장점을 갖는다.

콘티넨탈 관계자는 “이 기술은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국내외 완성차업체가 큰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현재는 기술 협의 중이고 2018년쯤이면 양산차 적용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물리적 키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자원을 아낄 수 있고 소비자도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콘티넨탈은 앞으로 모든 물리적인 키를 가상키가 대체할 거라고 자신했지만 자동차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 일종의 사치품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물리적 키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게다가 스마트폰을 휴대하지 않을 때도 있으니 물리적 키는 여전히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수입차업체 관계자는 “제조사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고급차종은 대체로 차급에 맞춰서 스마트키 디자인을 달리하는 게 추세”라며 “소재나 무게도 차별화하며 브랜드 정체성을 표현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이에 국산차업체 관계자는 “기존에는 스마트키를 2개씩 제공했지만 주로 1개만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스마트기기에 거부감이 적은 젊은층이 주로 이용할 차종에 먼저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가상의 디지털키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다가오지만 보완재 성격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결국 소비자 심리를 얼마나 잘 이용하느냐가 초기정착의 성패를 좌우한다. 업계 관계자는 “무선 디지털기술의 발달로 생활에 편리를 더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건 보안”이라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