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지갑을 닫는 소비자가 늘었다. 여기에 생산가능인구 감소,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 등 부정적 경제 전망이 소비위축을 더욱 부추긴다. 소비 감소는 생산 감축으로 이어진다. 생산이 줄면 소득이 감소해 자연스레 소비도 위축된다. 소비가 급격히 줄어드는 ‘소비절벽’이 우리나라 경제 전체를 경직시키는 악순환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머니S>는 소비절벽시대를 긴급 진단했다. 서울 주요 상권 및 유통가의 분위기를 살피고 새로운 소비트렌드를 분석했다. 정부와 기업의 소비절벽 극복 대책과 전문가로부터 해법도 들었다.<편집자주>

사상 최악의 내수침체가 우리경제에 최대 위협이 되고 있다. 유통가는 물론 제조업체도 ‘호황’을 말하는 곳을 찾기 힘들다. 내수를 살리기 위해 정부는 다양한 소비유인책을 썼다. 개별소비세 인하 등 다양한 내수 살리기 정책이 진행됐지만  경제주체들의 피부에 와닿지 못했다는 평가다.


현재의 ‘소비절벽’은 저성장·저금리·저출산 등 3저 현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들은 이런 국면이 점점 심화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소비절벽시대에도 빛을 발하는 상품이 있다는 것은 인간의 삶에서 소비가 사라질 수는 없음을 방증한다. 불황으로 인해 그 방법이 바뀌었을 뿐 소비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법칙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매 연말이나 연초에 나오는 트렌드 관련 서적과 보고서는 올해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는다. 변화하는 소비자의 마음을 읽는 것이 소비절벽을 타파할 열쇠라고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소비절벽시대를 관통하는 소비트렌드를 들여다봤다.

[2017 소비절벽] 욜로족 잡는 ‘가치·경험소비’

◆ 소비절벽시대, ‘욜로족’ 주목

게임회사에 재직 중인 3년차 직장인 김정우씨(29)는 내년 직장을 퇴사하고 1년여간 세계일주를 떠날 계획이다. 직장생활을 하며 아껴 모은 3000여만원을 모두 이 여행에 쏟아부을 생각이다. 그는 입사한지 1년여가 됐을 때부터 이런 계획을 세웠다. 김씨는 “회사 업무에 적응이 될 때쯤 미래를 상상해 봤는데 떠오르는 미래가 내가 살고 싶던 삶과는 너무 달랐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그의 이런 선택을 탐탁치않게 여긴다. 여행이 아니라 어학연수나 유학을 떠나는 것은 어떻겠냐고 권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는 이 여행이 자신의 인생의 전환점이 될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는 “여행을 다녀와서 현재보다 나은 직장을 다닐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이번 여행이 평생을 살아갈 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확고한 가치관을 확립하는 계기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와 같은 사람을 일컬어 ‘욜로(Yolo)족’이라고 부른다. ‘인생은 한번뿐’(You Only Live Once)이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삶을 자신의 주관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뜻한다. 서구권 배낭여행객 사이에서 유행한 말로 ‘헬로’(Hello)를 대신해 인사말로 쓰이며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욜로족이 김씨와 같은 여행객을 지칭하는 말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기준 삼아 소비활동을 하는 사람을 통칭한다. 남들이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내 삶에 기쁨을 주는 소비를 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최근의 소비트렌드를 짚은 보고서와 서적들은 욜로족을 주목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 욜로족 눈길끄는 ‘B+프리미엄’

욜로족의 핵심은 ‘가치’를 소비하는 것이다. 다만 이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보편적인 기준의 ‘실용성’이나 ‘효용성’과는 차이가 있다. 소리를 중요시하는 사람은 중고 경차 가격에 버금가는 비용을 들여 사운드 시스템을 튜닝한다. 또 3000원짜리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1만원이 넘는 핸드드립 커피의 향을 즐기는 식이다. 지갑을 여는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가 철저히 구분된다.

따라서 국내 기업들도 욜로족을 겨냥하기 시작했다. 값싼 대중제품은 저렴한 인건비와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한 중국산 제품에 밀린다. 기술의 차별성도 미미해졌다. 럭셔리브랜드가 아닌 대중제품일지라도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지 않으면 이들에게 눈길조차 받지 못한다. 욜로족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분야만큼은 ‘준전문가’ 수준의 식견과 까다로운 취향을 가져 마케팅으로 극복하기도 쉽지 않다.


이들의 취향을 저격하기 위해서는 욜로화되는 소비자의 특성을 이해하고 차별화된 가치를 선제적으로 파악해 제공해야 한다.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 분석센터는 신간 <트렌드코리아 2017>을 통해 이런 제품을 ‘B+프리미엄’이라고 명명했다.

수입차가 대중화되고 저렴하면서도 탈만한 중국산 자동차가 곧 유입될 것으로 전망되는 자동차업계에서 이런 경향이 뚜렷하다. 티볼리, SM6, 말리부 등 비주류 국내제조사의 새로운 시도가 성공을 거둔 것. 국내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 자동차시장에선 기존의 편안함과 합리성보다는 프리미엄사운드 시스템이나 새로운 유저인터페이스, 운전의 재미 등 새로운 가치를 제공한 자동차가 큰 성공을 거뒀다”며 “그간 가격과 합리성 등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내수점유율을 지켜온 국내 자동차회사들의 위기감이 커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SM6. /사진제공=르노삼성
SM6. /사진제공=르노삼성

◆ ‘경험’에 지갑 열린다

욜로족의 소비패턴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경험’이다. 특히 경험의 총체라고 할 수 있는 여행은 욜로족의 삶을 대표하는 키워드다.

현재 가장 성공한 공유경제모델로 꼽히는 에어비앤비는 최근 한국판 TV광고에서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문구를 내세웠다. 저렴한 가격에 숙소를 빌리는 합리성보다 실제 주민의 삶을 경험할 수 있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에어비앤비뿐 아니라 차량공유앱, 카풀앱 등 공유경제 모델들은 경제적 효용성뿐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주요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운다. 공유의 경험 자체가 소비유인 요인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이는 일반적인 재화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전문가들은 “물건을 파는 것에서 경험을 파는 것으로 시장의 법칙이 바뀐다”고 말한다. 이 트렌드는 쇼핑몰에도 반영됐다. 최근 문을 연 유통공간은 테마파크에 가깝다. 대표적 체험형 공간인 이케아는 우리나라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사람들은 물건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데이트나 나들이 목적으로 이곳을 찾아 자연스레 소비활동을 한다. 신세계는 쇼핑몰이라기보다 복합테마파크에 가까운 스타필드 하남을 오픈해 매 주말 많은 이들의 발길을 끌어 모으는 중이다.
 
전미영 서울대 교수는 “호주 멜버른에 위치한 샌드위치가게 ‘재플슈츠’는 7층 가게에서 낙하산으로 손님에게 샌드위치를 서빙하는 방식으로 큰 성공을 일궜다”며 “대부분의 소비가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시기에 오프라인이 가진 유일한 장점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