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형 택배사 마크를 부착했지만 개인용(비영업용)번호판을 달고있는 화물차.
중소형 택배사 마크를 부착했지만 개인용(비영업용)번호판을 달고있는 화물차.

정부 부처간 엇박자로 전기화물차 보급이 지체되고 있다.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노후 경유상용차를 대신해 전기화물차를 보급하기 위한 법안이 발의됐으나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발목이 잡혔다.

지난해 12월2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에서는 전기화물차에 한해 영업용 번호판 취득을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꾸는 내용이 담긴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일부개정안’의 최종 계류가 결정됐다. 국토위의 이같은 결정은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정책기조와 엇갈려 논란이 인다.


◆ 친환경차 보급 막는 ‘특권’

이우현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해당법안은 전기나 수소를 연료로 하는 친환경화물차에 한해 영업용 증차를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미세먼지의 주범인 경유화물차를 조기 감축하고 친환경화물차로의 교체를 촉진할 묘수로 평가받았다.


이는 특히 ‘전기화물차’ 보급을 추진하는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의 정책기조에 부합한다. 환경부는 지난해 6월 발표한 ‘미세먼지 특별대책’에서 일반화물차를 전기화물차로 교체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어 같은해 12월에는 중고 경유화물차를 전기화물차로 개조할 경우에도 보조금을 지원하는 보완대책도 마련했다. 산업부 역시 전기화물차 보급을 국가과제로 편성해 추진 중이다. 2019년까지 국내 환경에 적합한 1톤 전기화물차를 개발한다는 목표다. 해외 대형 상용차업체들이 승용차에 버금가는 비용과 노력을 투자해 전기화물차 보급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해당 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국토위는 “영업용 번호판이 늘어나면 화물차주들의 재산권이 침해된다”는 이유로 해당법안을 계류시켰다. 국가가 발급한 영업용 허가를 개인의 재산권으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화물차 번호판이 고가에 거래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3년 화물차 과잉 공급과 환경오염을 억제하기 위해 수급 조절제가 도입되면서부터다. 이후 정부는 업계와 함께 수급조절협의회를 열어 매년 신규 화물차를 얼마나 늘릴지 협의해왔지만 화물업계 또한 사업자마다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 증차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2013년과 2014년 영업용 화물차가 2만대 이상 늘어나기는 했지만 급증하는 택배물량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사정으로 소형 상용차의 영업용 번호판은 온라인 등지에서 수천만원에 거래된다. 결국 국토위는 현재 영업용 번호판을 가진 차주들의 ‘특권’을 보호하기 위해 친환경차 보급을 막는 셈이다.

이 법안이 계류된 데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반발이 컸는데, 이 당의 20대 총선 공약집에는 전기차 등 친환경자동차 육성안이 포함돼있어 공약과 의정행위가 상반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 규제 때문에 뒤처지는 전기상용차 산업


전기화물차 활성화는 환경 뿐 아니라 자동차산업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사안이다. 따라서 현재 글로벌 상용차 제조사는 ‘전기화물차’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승용차보다 상용차가 대기오염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큰 것으로 조사되며 상용차의 환경규제가 큰 폭으로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점차 강화되는 규제를 맞추기 위해서는 가까운 시일 내에 상용차시장도 전기차 중심의 급속한 개편이 이뤄질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만트럭, 다임러트럭, 스카니아트럭 등 글로벌 상용차업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전기화물차 개발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최근 상용차 모터쇼인 독일 하노버 모터쇼(IAA2016)에서 다임러는 총중량 26톤급의 대형 순수 전기 트럭 ‘어반 e트럭’을 비롯해 다양한 전기상용차를 선보였다.


메르세데스-벤츠 어반 e트럭.
메르세데스-벤츠 어반 e트럭.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해외 대형 상용차업체들은 승용차브랜드에 버금가는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 미래자동차 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며 “승용차와 기술 교류가 가능하고 전기화물차의 산업 규모가 큰 만큼 우리나라도 적극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전기화물차 개발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현재 환경부 인증을 취득해 구매보조금이 지급되는 전기화물차는 파워프라자라는 중소업체가 개발한 0.5톤급 전기화물차 ‘피스’가 유일하다. 한국지엠 라보를 개조해 만들었는데 16kWh를 완전충전해 실온해서 72km를 주행할 수 있다. 다만 물류업계는 주력인 1톤급이 아니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나타낸다.

우리나라 상용차 업계가 전기차 개발에 소극적인 이유는 ‘판매처’가 없기 때문이다. 만들어도 당장에 판매할 곳이 없으면 생산라인 증설이 어려운 것은 당연지사다.

업계에서는 ‘물류기업을 통한 판매처 확보’가 전기화물차 개발을 촉진할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차량 출시 초반에 이런 기업에 대량판매가 가능하다면 투자비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류업계 입장에서도 정부의 인센티브만 주어진다면 바꾸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전기차는 유가대비 연료가격이 안정적이며 시내를 주행하는 택배차의 경우 일평균 주행거리도 길지 않아 부담이 없다.

실제로 페덱스와 UPS 등 글로벌 물류사는 이미 전기차를 활발히 도입하고 있다. 페덱스의 경우 0.7톤~2.5톤급 5종의 전기차 라인업으로 2015년 기준 200여대의 전기차를 운영 중이다. UPS는 2015년 기준 400여대의 전기차를 운영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각종 규제들이 전기상용차 도입을 지연시키고 있다”며 “정치권이 일부의 특권 유지에만 관심을 두다간 자칫 전기화물차산업을 통째로 중국에 넘겨주기 십상이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