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은 없었다. K9(광구)의 주행은 계속된다’. 

우리은행이 지난달 25일 민영화 후 첫 은행장으로 이광구 행장을 내정했다. 우리은행 이사회는 “지난 2년 동안 이뤄낸 민영화와 실적을 보면 업적과 경영능력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며 이 행장의 연임을 공식화했다. 이에 대해 은행 직원들은 “대형세단처럼 빠르고 강하게 움직이는 이 행장의 경영 2기가 시작됐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우리은행 이사회가 의결한 이 행장의 임기는 2년으로 오는 2019년 3월까지다. 통상 3년인 임기를 2년으로 줄인 것은 이례적이다. 이 행장은 2014년 취임 당시에도 임기를 3년에서 2년으로 줄여 ‘민영화 성공’을 공헌한 바 있어 이번에도 ‘지주사 전환’이라는 목표 아래 임기 단축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임에 성공한 이 행장은 충청도 특유의 느리지만 단호한 억양으로 ‘민선 1기’ 은행장으로서의 포부를 밝혔다. 그는 “과점주주들에 의한 집단경영이라는 새로운 지배구조의 시험대에서 은행장으로 내정돼 감사한 마음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변화를 기회로 삼아 더 새로운 은행, 더 강한 은행을 만들어 주주에게 보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조가 돌아온다’ 금융지주 전환 착수

우리은행은 이 행장의 지휘 아래 1등 금융그룹으로 도약하기 위한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할 계획이다. 2001년 우리나라 최초 금융지주사인 우리금융지주의 위상을 되찾고 신한·KB·하나·NH농협 등 4대 금융지주와 경쟁에 나설 계획이다.


올해 이 행장은 ▲고객기반 확대 ▲수익성 중심으로 영업체질 개선 ▲철저한 뒷문 잠그기 ▲신성장동력 추진 ▲영업·문화 혁신 등 5대 경영전략을 세웠다. 이를 기반으로 외형확장을 위해 증권사와 보험사의 인수합병(M&A)에 나설 방침이다.

우리은행의 지분을 매각할 때부터 지주사 전환 계획을 밝혔던 이 행장은 사외이사들과 사전 교감을 많이 한 만큼 사업 포트폴리오 구축을 이른 시간 내 이룰 것으로 기대한다.


이광구 우리은행장. /사진제공=우리은행
이광구 우리은행장. /사진제공=우리은행

4대 금융지주와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면 계열사 M&A로 몸집 키우기가 필요하지만 한화·동양생명과 한국투자·키움증권, 미래에셋·유진자산운용, IMM 사모펀드(PE) 등으로 이뤄진 과점주주의 이해관계를 고려해 캐피탈회사 인수부터 추진할 계획이다.

이 행장은 “계열사 중 캐피탈 등의 M&A를 추진하고 과점주주들이 영위하고 있는 증권은 그 다음, 보험사 인수는 가장 마지막에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이 금융지주사 전환을 신청하면 금융당국의 승인까지 약 6~7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 최소한 내년 상반기 전에는 지주사 전환에 나서야 이 행장의 임기 안에 지주사로 전환할 수 있다.

이 행장은 “은행업이 발전하는 데 자회사 간 겸업이 필수인 만큼 빠른 시일 안에 지주사 전환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지주사 전환 작업에 착수할 것”이라며 “은행 및 비은행 영역의 조화를 통해 앞으로 1등 종합금융그룹으로 성장하겠다”고 밝혔다.

◆경영시험대, 자회사 인사 등 용인술 ‘주목’

은행권에선 우리은행이 금융지주 전환에 성공한다면 새 회장에 이광구 행장이 낙점될 것으로 조심스럽게 점친다.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처럼 지주 회장과 은행장을 겸임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이 같은 청사진을 그리기 위해선 우리은행의 실적 유지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 행장은 지난 2년 동안 좋은 실적을 기록했지만 녹록지 않은 금융환경에서 새로운 주주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호실적을 또다시 내놔야 한다.

우리은행 주주 중에서 사외이사를 추천하지 않은 유진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재무적투자자(FI) 성격이 강해 주가가 하락하면 보호예수기간이 만료되는 올해 말 주주에서 이탈할 우려가 있다. 나머지 5곳의 주주 역시 우리은행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만큼 우리은행의 실적이 악화하면 이 행장에게 책임을 물을 가능성도 높다.

다행히 우리은행의 최근 실적은 ‘이광구호’에 청신호를 켰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1~3분기에 1조1059억원의 순익을 올려 2015년 한해 동안(1조592억원) 거둔 순익을 초과했다. 지난해 초 8000원대였던 주가도 최근 1만3000원 선에서 오르내리며 상승세를 탔다.

민영화 이후 이 행장의 경영시험대인 자회사 최고경영자(CEO) 인사도 원활히 진행해야 한다. 우리은행은 정부 간섭에서 벗어나 과점주주들이 추천한 사외이사들과 협의해 자유롭게 인사를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자회사 중에선 우리카드, 우리종합금융 대표의 임기가 오는 3월 끝난다. 12월에는 우리에프아이에스, 우리신용정보, 우리프라이빗에퀴티자산운용의 CEO가 자리를 떠난다. 따라서 금융지주 전환을 염두에 둔 자회사 대표의 물갈이작업이 이뤄질 전망이다.


[CEO] 역사 새로 쓰는 '민영화 1호'

앞서 우리은행은 민영화 이후 첫 임원인사를 단행하면서 부문장 1명(한일), 부행장 6명(상업3, 한일3), 상무 8명(상업4, 한일4) 등 15명을 승진시켰다. 상업, 한일은행 출신을 5대 5로 배분하던 관행을 지킨 셈인데 오는 12월 인사부터는 출신과 상관없이 성과중심의 인사체제를 확립한다는 방침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 행장이 민영화 이후 꾸리는 첫 진용으로 사실상 지주사 전환을 염두에 둔 인사작업”이라며

“이번 인사를 통해 이 행장이 그리는 우리은행의 청사진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행장은 ‘여명’을 상징하는 우리은행의 심볼마크(CI)를 가슴에 달고 다닌다. ‘날이 밝을 무렵,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여명이 지주사 전환에 나선 우리은행과 연임에 성공한 이 행장을 밝게 비출지 귀추가 주목된다.

☞ 프로필
▲1957년 충남 천안 출생 ▲천안고, 서강대 경영학과 졸업 ▲상업은행 입행 ▲우리은행 홍콩지점장 ▲개인마케팅팀장 ▲개인영업전략부장 ▲경영기획본부 부행장 ▲개인고객본부 부행장 ▲우리은행장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7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