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 IDS 콘셉트 /사진=박찬규 기자
닛산 IDS 콘셉트 /사진=박찬규 기자

매해 3월 초면 스위스 제네바에서 세계 5대 모터쇼 중 하나인 ‘제네바모터쇼’가 열린다. 한해의 트렌드를 미리 살필 수 있고 친환경차와 고성능차를 함께 즐기기 좋은 모터쇼로 꼽힌다. 올해는 148개국 180개 브랜드가 참가해 900여종의 차가 전시됐다.

어느 나라 모터쇼든 전시회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건 최초공개차종(프리미어)의 수다. 특히 콘셉트카는 모터쇼의 꽃으로 불릴 만큼 중요도가 높다.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무대 위에 오른 탓에 독창적인 겉모양에 시선이 쏠리지만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바라보면 유난히 넓고 미래지향적인 실내를 살필 수 있다. 무엇보다 양산차에서는 볼 수 없는 아이디어 넘치는 인테리어에 눈길이 간다.


콘셉트카는 말 그대로 어떤 주제를 표현하고 보여주는 자동차다. 실내공간도 마찬가지다. 콘셉트카 인테리어의 비법(?) 중 하나는 시트를 매우 얇게 만드는 것이다. 자주 보면서 눈에 익은, 기능성을 우선한 양산차의 두툼한 시트 대신 시각적 요소를 우선한 의자를 설치하는 것도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다. 콘셉트카가 하나의 미술작품에 가까운 이유다.

최근 항공기엔 슬림시트가 적용되는 추세다 /사진=박찬규 기자
최근 항공기엔 슬림시트가 적용되는 추세다 /사진=박찬규 기자

그런데 요즘엔 양산차에서도 시트를 최대한 얇게 만들려는 노력을 이어간다. 자동차업계의 최대 화두인 ‘경량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시트 자체의 무게를 줄여 전체 자동차 무게를 감량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지만 같은 틀 안에서 약간의 공간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목적이 더 크다. 실질적으로 실내공간이 넓어진 셈이니 결과적으로 틀을 크게 만든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실제로 요즘 자동차는 차체의 공기역학이나 디자인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지붕 높이를 낮추고 최대한 유선형으로 길게 늘어뜨리는 게 유행이다. 이 경우 탑승객의 헤드룸을 확보하기 어려워지지만 시트포지션을 낮추면 문제가 해결된다. 두툼한 시트를 얇게 만들면 높이를 좀더 낮출 수 있다.

같은 이유로 항공기 시트도 슬림화가 대세다. 중량 다이어트는 물론 협소한 이코노미 클래스의 좁디좁은 좌석을 조금이나마 넓히기 위해서다. 슬림시트가 적용된 요즘 항공기는 탑승객 주변공간을 더 확보해 구형항공기보다 넓어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슬림시트가 항공사의 차별화요소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다.


LA오토쇼에 전시된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마이바흐 시트 /사진=박찬규 기자
LA오토쇼에 전시된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마이바흐 시트 /사진=박찬규 기자

◆시트를 얇게 만드는 방법

시트를 얇게 만들려면 내부 구조물부터 바꿔야 한다. 얇게 만들면서 무게를 줄이지만 기능성은 유지해야 해서다. 과거의 시트는 소파나 침대처럼 내부에 스프링이 들어있어서 체중을 지탱하는 역할에 그쳤지만 요즘엔 다양한 강도의 스펀지와 복합소재가 이를 대신하며 몸을 편안하면서도 단단히 고정시켜준다.

얇게 만들기 위해선 시트에 전달되는 하중을 어떻게 분산시키는 지가 중요하다. 몸에 닿는 부위 별로 소재의 강도를 달리해 기능성을 유지하기도 하고 금속 구조물 대신 탄성이 있는 플라스틱을 쓰기도 한다. 특히 자동차 앞좌석 뒤편의 등받이 두께를 줄이면서 넓은 플라스틱 판으로 힘을 분산시키는 것도 이같은 노력 중 하나다. 뒷좌석 승객의 무릎공간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항공기에서는 두랄루민처럼 가볍지만 강한 금속으로 시트 프레임과 고정장치를 만들고 기능성 플라스틱 구조물이 더해지며 시트 두께와 무게를 줄일 수 있었다. 경량소재에 강점을 보이는 화학회사 빅트렉스에 따르면 항공기 1대당 45kg을 줄이는 노력만으로도 연간 1000만원 이상의 유류비를 절감할 수 있다.

자동차에서도 항공기처럼 첨단소재를 써서 경량화를 추구하는 경우가 있다. 자동차경주에 참가하는 레이스카는 극단적으로 무게를 줄여야 하는데 탄소섬유처럼 가볍고 튼튼한 소재를 써서 일정수준의 충격을 견디면서도 운전자를 단단히 잡아준다. 레이싱용 버킷시트가 푹신한 쿠션을 강조하기보다 몸에 밀착되는 바구니형태를 띈 것도 이 같은 이유다.
대한항공 A380 비즈니스석 /사진=박찬규 기자
대한항공 A380 비즈니스석 /사진=박찬규 기자

◆프리미엄 시트도 피할 수 없는 경량화

시트는 오랜 시간 몸이 밀착되는 부분이어서 제조사 입장에서는 그만큼 더 신경쓸 수밖에 없다. 인체 모형을 통해 근골격계를 비롯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피부에 닿는 소재인 만큼 여러 테스트를 거친다.


최근의 자동차와 항공기 시트가 가벼우면서 얇아지는 게 트렌드지만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예외의 법칙이 통한다. 대형고급세단의 좌석이나 항공기의 퍼스트·비즈니스클래스석은 최첨단 기능과 최고의 안락함을 추구한다.

프리미엄 시트의 공통된 특징은 맞춤화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시트 등받이의 각도, 엉덩이 받침과 다리지지대 위치까지도 섬세하게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다. 의자에 내 몸을 맞추는 게 아니라 의자가 내 몸에 맞춰진다는 게 일반 시트와의 차별점이다. 여기에 최신 디지털기기가 더해지면 달리거나 날아다니는 호텔로 변신한다.

하지만 무턱대고 무게를 늘려 편안함만 강조하지는 않는다. 경량화 노력이 반드시 뒤따른다. 가죽이나 천의 소재와 두께를 달리하거나 보다 가벼운 소재로 대체할 수 있는지 많은 연구를 거듭한다.

루프트한자 독일항공의 한 엔지니어는 “자동차와 항공기 모두 경량화라는 현실적이면서도 중요한 과제를 마주했다는 공통점이 있다”면서 “특히 항공기 시트는 테이블 등 여러 장치가 달려있고 제한된 공간 안에서 생활하는 특성을 고려하면서 경량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산차업체 관계자도 “최근 자동차업체들이 시트에 상당히 많은 투자를 하는 추세”라면서 “사고가 났을 때 탑승객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하기에 무턱대고 가볍거나 얇게 만들 순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