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주총 몰려 소액주주 참석 ‘불가’… 전자투표제가 해결할까

올해도 어김없이 ‘슈퍼주총데이’가 돌아왔다. 슈퍼주총데이는 12월 결산법인의 정기주주총회 일정이 같은 날 몰려 개최되는 것을 말한다. 기업이 한꺼번에 주주총회를 열기 때문에 여러 기업에 분산투자한 소액투자자들은 자신이 투자한 기업의 주주총회에 전부 참석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소액주주의 권리가 제한되는 셈이다. 이에 정치권에서 전자투표제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기업들의 반발이 만만찮다.


◆3월 넷째주 금요일, 1000개사 주총 열어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주(3월12~18일) 현대차, LG전자, 셀트리온, 카카오 등 총 211개의 12월 결산 상장법인이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했다. 이 중 175개사(83%)가 지난 17일 한꺼번에 주총을 열었다. 코스피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과 LG그룹 계열사를 포함해 아모레퍼시픽, GS리테일, 롯데손해보험 등 110개사가, 코스닥시장에서는 GS홈쇼핑, 컴투스 등 65개사가 몰렸다. 특히 이달 24일은 역대 최대 규모의 슈퍼주총데이가 열릴 전망이다. 전체 12월 결산 상장법인 2070개사 중 절반이 넘는 기업이 이날 주총을 개최한다.


슈퍼주총데이는 매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해왔다. 지난해의 경우 주총을 연 1794개 상장법인 가운데 70%인 1255개사가 3월 하순(21~31일)에 주총을 열었다. 이 중 818곳(65%)이 3월 마지막주 금요일인 25일에 몰렸다. 2015년에도 3월27일에 810개사가 일제히 정기주총을 가졌다. 날짜뿐 아니라 주주총회 개회 시각도 대부분 오전 9~10시여서 사실상 여러 기업에 분산투자한 소액주주들은 주주총회에 참여하기 힘든 상황이다.
LG전자 제 12회 정기주주총회. /사진=뉴시스 DB
LG전자 제 12회 정기주주총회. /사진=뉴시스 DB

게다가 주총 장소 또한 전국에 퍼져 있다. 특히 일부 기업들은 법인 등기부등본상 본사 소재지를 회사의 지방 지사나 공장으로 등록해 주주총회를 먼 장소에서 개최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대주주가 소액주주들의 참여를 어렵게 만들어 이사회에서 결정한 안건에 대한 반발을 차단하려는 꼼수라고 지적한다. 실제 회사 홈페이지에 본사가 판교로 등록된 A상장사는 이달 24일 강원도에서 주주총회를 개최한다. A사 관계자는 “상법에 따라서 사업자등록증에 명시된 본사에서 주주총회를 여는데 우리는 강원도 공장이 본사로 등록돼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소액주주의 주총 참여가 미미한 것을 이용해 주주가 1000명이 넘는 상장사인데도 마치 개인회사처럼 경영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최대주주이자 최고경영자(CEO)가 기업가치를 훼손할 수 있음에도 자신의 이익을 위한 안건을 별다른 반발 없이 통과시키는 것이다.

실제 B상장사는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내부인사 출신 사외이사를 선임하고 보수한도를 50% 증액해 경영 독립성 논란이 야기됐다. 또 C상장사는 지난 17일 주주총회에서 기업가치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3자배정 유상증자 등으로 신주를 발행할 때 주주에게 통지하지 않고 주요사항보고서 공시로 대신하도록 정관을 변경했다. 이 회사의 소액주주는 2015년 말 기준 3788명으로 36.16%의 지분을 보유했지만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전자투표 의무화 입법되나… 기업 “과도한 부담”

주주총회에서 외면받는 소액주주의 권리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전문가들은 주총의 투명성이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주총장에 직접 가지 못하는 주주를 위해 영상으로 현장을 생중계하거나 온라인으로 주주포럼을 개최해 주주제안 내용을 논의할 수 있는 장을 여는 방식이 거론된다.


이 중 가장 현실적 대안으로 전자투표제가 꼽힌다. 전자투표제는 회사가 전자투표시스템에 주주명부, 주총 의안을 등록하면 주주가 주총에 참석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전자투표 행사기간은 공휴일을 포함해 주총일 열흘 전부터 주총 전일까지라 주주의 참여 폭을 넓힌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기준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기업은 코스피 321사, 코스닥 725사, 기타 46사로 총 1092사다.
현대차 47차 정기주주총회. /사진=뉴시스 DB
현대차 47차 정기주주총회. /사진=뉴시스 DB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2010년 전자투표제가 도입된 후 약 4년간 주총에 적용하는 기업이 거의 없었다”며 “2014년 예탁원의 중립투표(섀도보팅)가 전자투표제 도입 기업에 한해 허용되면서 계약자가 급속도로 늘었다”고 말했다. 실제 2014년 말 기준 전자투표 계약사는 79사에 불과했지만 약 2년 새 1027사가 증가했다. 섀도보팅은 예탁원이 주총에 참석하지 않은 주주의 의결권을 대신 행사하는 방식이다. 찬반비율은 주총 참석주주의 찬반을 따르지만 의결정족수를 채워주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안건을 통과시키기 유리하다.

반면 전자투표를 계약하고 실제 활용하는 기업은 절반 수준인 541개사에 그쳤다. 상법상 전자투표를 강제하는 법안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예탁결제원의 자료에 따르면 전자투표 도입 상장사 중 90%가 넘는 기업이 섀도보팅을 위해 전자투표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소액주주 의결권 행사를 위해 도입한 전자투표가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에 이용된 셈이다.

이 같은 부작용을 막고 도입 취지를 살리기 위해 정치권에서는 전자투표제 의무화를 추진 중이다. 지난 15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3당은 3월 임시회에서 전자투표제 단계적 의무화를 포함한 상법개정안을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 다만 기업들은 전자투표제 의무화가 기업에게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회사는 사실상 전자투표제도가 필요없는데도 비용을 지불하고 전자투표를 도입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며 “실제 기업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된 법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