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증세 없는 복지’는 허상에 불과했다. 박근혜정부 4년을 평가한다면 ‘증세 넘친 정부’로 요약된다. 장미대선을 앞둔 차기 대선주자들은 박근혜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국민은 증세하더라도 적재적소에 세금이 쓰이길 원한다. 보다 효율적인 국가 가계부가 필요한 시점이다. <머니S>가 대선정국을 맞아 세금정책을 긴급 진단했다. 대선주자별 세금공약을 살펴보고 법인세와 서민세의 효과적 대안 등을 짚어봤다.<편집자주>

지난 1월 법인세를 둘러싼 흥미로운 설전이 벌어졌다. 신년을 맞아 한 방송사가 진행한 신년토론회에서 전원책 변호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이 법인세 실효세율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인 것. 이 시장은 당시 “10대 그룹의 평균 법인세 실효세율이 1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고 주장했고 전 변호사는 “16%가 넘는다. 12%는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는 엉터리 통계”라고 반박했다. 

언론과 학계 전문가들이 ‘팩트체크’한 결과 양측의 주장은 서로 다른 기준을 두고 실효세율을 계산한 것에서 발생한 해프닝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 설전은 각종 커뮤니티와 SNS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법인세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한몫했다. 또 법인세가 ‘장미대선’을 앞두고 대선후보 사이에서 표심을 뒤흔들 주요 정책과제로 떠오른 계기가 됐다.

‘인상이냐 인하냐’로 다시 한번 법인세 딜레마에 빠진 대한민국. 해법은 있을까. 

[세금 공화국] 올리느냐 마느냐, 법인세 딜레마

◆“OECD 수준” vs “기업 투자 위축”

지난해 국회 예산정책처가 경제·재정분야 전문가 55명을 대상으로 경제정책과 관련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38명이 ‘증세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특히 증세 세목으로는 법인세(38명 중 16명)를 가장 많이 지목했다. 상대적으로 조세저항이 큰 개인소득세나 부가세를 손질하는 것보다 법인세 인상으로 부족한 세수를 메꾸는 게 효과적이라고 본 것이다. 

이런 흐름은 최근 대선주자 사이에서도 감지된다. 주자별로 아직 정확한 정책을 내놓은 것은 아니지만 법인세율 인하보다는 실효세율 등의 인상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정치적 움직임은 차치하더라도 차기 정부 수립을 앞둔 현재 이명박정부 때 인하된 법인세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국내 법인세 최고세율(22%)이 지난해 기준 OECD 평균(23%)보다 낮은 수준이고 MB정부 때 25%에서 22%로 3%포인트가 인하되며 기대했던 ‘낙수효과’(부유층의 투자와 소비 증가가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로 이어짐)가 나타나지 않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MB정부의 법인세 인하는 경제전반의 효율을 늘려 경제 전체의 잉여를 일정 정도 향상시키는 데는 성공했다”며 “하지만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혜택을 집중, 조세의 소득재분배 기능향상이나 대·중소기업간 격차 해소라는 목표에는 미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법인세 인하로 오히려 법인세수가 줄어 국민부담이 늘어났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지난해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 앞서 김현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3년간 소득세수는 30% 이상 증가했지만 법인세수는 세율인하 등으로 오히려 감소했다”며 “새누리당 정권 8년 동안 부자 감세정책을 추진하면서 월급쟁이에게 소득세를 걷어 법인세 구멍을 메웠다”고 꼬집었다. 

반면 법인세 인상 반대진영은 조세부담이 커지면 기업의 투자여력이 줄고 고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한다. 세계 각국이 법인세 인하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우리만 인상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최근 전문가 사이에서 이 의견은 점차 설득력을 잃고 있다. MB정부는 2009년 기업소득 2억원 초과 기업 법인세율을 25%에서 22%로 낮췄고 2012년엔 22% 최고세율 과세표준을 2억원 초과에서 200억원 초과로 높였다. 그런데 지금껏 법인세 인하가 실질적인 기업투자로 이어졌다는 지표가 없는 상태이며 대기업 고용률은 최근 몇년간 오히려 줄어들었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투자와 임금, 배당이라는 기업경영의 고유한 의사결정영역을 법인세율을 통해 통제하겠다는 것은 무리한 논리의 확장”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머니S>는 조세전문가 3인을 만나 적절한 법인세 조정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세금 공화국] 올리느냐 마느냐, 법인세 딜레마

■기업 ‘초과이윤’에 법인세 걷어야 
/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더 이상 법인세 인하로 기업투자가 확대되지 않을 것이다. 국내 기업의 투자가 침체된 것은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며 수익이 날 만한 곳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국내 기업이 애플이나 구글처럼 혁신을 선제적으로 시도한 적이 없다. 세계경제의 흐름을 뒤따르는 ‘팔로워’였지 ‘퍼스트무버’가 아니었단 얘기다. 현재 투자가 위축된 것은 자금이 없어서가 아니라 더 혁신적인 시장을 찾지 못해서다.

R&D혁신시대에 접어든 현 상황에서 물량공세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기업투자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법인세 인하로 경제활성화를 도모하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따라서 법인세 상향조정이 불가피하다. 다만 단순 명목세율 인상이 아닌 대기업 위주의 세금감면정책을 폐지해 실효세율을 높여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법인세율의 근본적인 개편도 필요하다. 현재 법인세는 과세표준 2억원 이하 10%, 2억원~200억원 이하 20%, 200억원 초과기업에는 22%의 세율을 적용한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자기자본 규모와 상관없이 200억원 이상의 이윤이 나면 똑같은 세율을 매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 기업의 자기자본을 공제한 후 초과이윤에 대해 법인세를 매기는 것이 형평성에 맞다고 본다.

■우리만의 적정세율 찾아야
/ 김현동 배재대 경영학과 교수

법인세는 국가별로 적정법인세율이 다르다. 따라서 법인세만 놓고 문제의 해법을 찾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다. 현재 법인세 인상론자는 선진국이나 OECD 평균세율에 비해 우리의 세율이 낮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 국가의 세율은 국가의 재정건전성, 개인의 세 부담 형평성, 소득 불평등의 정도, 기업환경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해 결정된다. OECD 평균세율이나 다른 나라의 세율로 법인세를 인하하자는 주장은 무리가 있다. 우리 실정에 맞는 법인세율이 필요하다.

개인이 감당할 수 있고 이 정도면 공평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소득세나 부가가치세를 거둬 세수를 확보하고 그 나머지 필요재원으로 법인세를 거둬야 한다. 이후 법인세 규모가 확정되면 이를 역산해 적정법인세율을 정할 수 있다.

개인이 감당할 수 있고 공평하다고 받아들이는 수준은 소득불평등의 정도나 형평성(조세정의) 등이 척도가 될 수 있다. 법인세율을 낮추고도 국민 부담이 가중되지 않는 획기적인 지출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법인세 인상하면 세수 감소할 수도
/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

법인세 인상이 곧 법인세수의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글로벌화되는 기업환경에서 법인세 인상은 자국기업의 경쟁력에 치명타를 심어줘 결국 세수가 줄어들 것이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5%에 육박하는 법인세를 15%까지 내려 해외로 흩어진 자국기업들을 불러모으겠다고 선언했다. 높은 법인세율이 내국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결과적으로 이윤이 감소해 법인세가 줄어들 수 있음을 인지한 것이다. 영국 역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선언 후 법인세율을 현행 17%에서 더 인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해외기업 유치와 동시에 자국기업 경쟁력 약화를 막기 위해 나섰다.

우리나라도 법인세 인상보다는 실효세율 인상을 통해 세수를 확보하는 것이 적절하다. 기업의 법인세와 R&D 분야를 제외한 비과세 감면정책 등이 우선적으로 폐지돼야 한다. 자국 기업의 투자 여력 여지를 남겨두고 실효세율을 인상해 세수를 확보하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세금 공화국] 올리느냐 마느냐, 법인세 딜레마

◆‘선거용’ 아닌 장기적 안목 필요

현재 미국과 일본은 정부 주도로 법인세 인하 등 기업환경 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법인세 인하에 대한 기대감으로 미국 기업들의 주가가 오르는 추세다. 중소기업 비중이 높은 일본은 각종 세금감면혜택을 확대하는 등 법인세 관련 정책을 빠르게 확정하는 분위기다.

반면 대한민국은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직면해 법인세 논의가 올스톱됐다. 그나마 최근 점화된 법인세 논쟁도 ‘잘못된 법인세 정책의 개선’이 아닌 ‘부족한 복지세수를 채우려는 정치적 움직임’에 가까워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대선주자들의 공약이 인상론으로 기우는 분위기지만 공약은 공약일 뿐이다. 인상이냐 인하냐의 이분법적 논의에서 벗어나 견실한 국내 경제상황을 만드는 데 초점을 두고 장기적으로 법인세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