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이 주도하던 재벌 경영에 오너가 여성이 참여하는 경우가 늘었다. 일부 기업의 경우 오너일가 여성이 경영능력을 앞세워 그룹 내 위상을 강화하며 후계자 경쟁에 가세할 조짐을 보인다.


국내 재계서열 1위 삼성그룹은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이 사실상 그룹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휘말리며 지난 2월 구속된 후 사상 초유의 총수공백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왼쪽)과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사진=뉴시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왼쪽)과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사진=뉴시스

◆‘총수공백’ 삼성, 주목받는 오너가 여성

이런 가운데 이 부회장의 여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이 각자 맡은 경영에 집중하며 여성 경영자로서의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리틀 이건희’라는 별명을 가진 이부진 사장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서울시내 면세점 신규 사업권을 획득하고 한국전통호텔 건립이라는 숙원사업도 해결했다.


특히 이 사장은 2011년 삼성가 후계자 중 처음으로 그룹 계열사(호텔신라)에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린 이후 등기이사직을 유지하며 책임경영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의 사드 보복이 본격화되며 관광·면세점업계가 직격탄을 맞자 해당분야의 수익성을 끌어올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일각에선 이 부회장의 빈자리를 이 사장이 채우며 삼성가의 후계구도에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내놓는다. 하지만 삼성 측은 현재 그룹 지분구조 등을 살펴보면 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일축한다.

이서현 사장은 2015년 삼성물산 패션부문장(사장)에 오르며 그룹의 패션부문을 이끌면서 실적이 부진한 일부 브랜드를 과감히 정리하고 중국·미국, 유럽 등 해외시장 공략에 속도를 냈다. 


지난해 삼성물산 패션부문 매출은 1조8430억원으로 전년(1조7382억원) 대비 6% 늘었지만 영업손실이 452억원으로 적자폭이 커졌다. 실적 악화는 국내외 경기침체 장기화와 소비심리 위축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정리한 브랜드들의 매장 철수 비용 등이 반영된 탓으로 분석된다. 지난 2년간 구조조정을 진행한 만큼 올해는 국내외에서 성과를 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 /사진=신세계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 /사진=신세계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 총괄 능력 입증

이부진·이서현 사장과 사촌인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은 2015년부터 백화점부문을 실질적으로 이끌며 주목받았다.

지난해 4월에는 오빠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의 주식교환을 통해 신세계 지분 9.83%를 가진 신세계 2대 주주가 됐다. 반면 정 부회장은 이마트 지분만 9.83%를 가진 이마트 2대 주주가 돼 지분구조상 두 사람의 위치는 거의 대등해졌다.

정 사장이 진두지휘한 사업들은 상당한 성과를 냈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대구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도심 속에서 즐기는 정글 콘셉트의 옥상 테마파크 주라지와 거인의 방으로 꾸민 실내 테마파크 등이 자녀를 동반한 쇼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오픈 100일 만에 1000만명이 방문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또 정 사장은 고객들의 취향을 일대일로 파악해 쇼핑 정보를 제공하는 인공지능(AI) 고객분석 프로그램을 도입해 마케팅에 새로운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신세계가 자체 개발한 이 서비스는 AI시스템을 기반으로 고객을 분석하는 시스템 ‘S마인드’, 브랜드별 인기상품과 프로모션 등 정보를 축적하는 ‘콘텐츠 매니지먼트 시스템’ 등으로 구현돼 고객에게 차별화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착실한 후계자 수업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 오너경영자가 특정 영역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그룹 전체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며 “오너일가 여성이 경영에 참여하는 경향은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