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기업은 구조조정으로 수익을 내고 빚에 눌린 가계는 지갑을 꽁꽁 닫았다. 암울한 상황은 다음 정부에 더 큰 재앙으로 다가온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로 줄어든 생산인구에게 경제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머니S>는 만성불황의 터널에 갇힌 국민과 기업의 현주소를 알아보고 정부정책, 나아가 대선주자들의 경제공약을 진단했다. 또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선진국이 경기부양에 구사하는 전략을 살펴봤다.<편집자주>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불황의 늪에 빠졌던 미국과 일본이 최근 경기침체 국면을 벗어났다. 미국은 지난해 말부터 경제지표가 개선됐고 정책금리를 두차례 인상했다. 일본도 ‘잃어버린 20년’을 되찾을 방안을 모색하면서 최근 성과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불황과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세계 각국 정부 사이에서 리쇼어링(reshoring)이 화두로 떠올랐다. 정치권에서는 한국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자는 의견이 나오지만 한편에서는 국내에서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는 의견도 상존한다. 강성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만나 관련 이야기를 들어봤다.


강성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사진=김수정 기자
강성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사진=김수정 기자

◆선진국발 불황이 ‘만성불황’으로 고착화

- 한국의 ‘만성불황’은 어떤 상황인가.

▶불황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발도상국 몇곳을 제외하면 대부분 성장이 둔화된 상태다. 불황은 어제오늘의일이 아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금까지 이어졌다. 10년째 계속되는 불황의 늪에서 미국과 일본은 시행착오를 거쳐 저마다의 개선책을 내놨고 최근 들어 효과를 보는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은 오히려 조선해운업까지 무너지며 더욱 침체되는 분위기다.


- 미국발 경제위기인데 미국은 개선했고 한국은 못했다.

▶선진국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는 시장에 맡기느냐 아니냐다. 선진국은 정부가 개선책을 주도하지 않고 서포트 역할만 한다. 나머지는 시장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다. 미국은 정부가 개입을 거의 안하고 망하는 기업은 그냥 둔다. 리먼브라더스와 GM(제너럴모터스)의 파산 신청이 그랬다. 따라서 기업들의 자생력이 강하다. 한국은 정부의 개입이 많다 보니 기업의 글로벌시장 경쟁력이 약하고 악순환을 반복한다.


- 선진국인 일본도 한국과 비슷하지 않나.

▶미국과 달리 일본도 한국처럼 국책은행과 국책기업이 서포트하는 구조였다. 따라서 시류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일본도 미국처럼 시장에 맡기는 방향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도시바의 반도체 매각이 그런 사례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의 상황이라면 한국은 적극적으로 부양해서 살릴 것이다. 이처럼 한국과 비슷했던 일본은 미국처럼 시장에 맡기면서 불황의 그늘을 조금씩 벗어났다.


◆리쇼어링, 한국은 실효성 없다

- 미국이 불황 타개책으로 리쇼어링을 미는 것 같은데.


▶미국은 국가전략 차원에서 오바마행정부 때부터 지금의 트럼프행정부까지 리쇼어링을 통해 세계의 패권을 되찾는다는 ‘일자리 자석’ 정책을 추진 중이다. 한국 정치권에서도 리쇼어링, 즉 기업유턴정책을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 해외에 나가 있는 자국기업을 각종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를 통해 자국으로 불러들이는 게 리쇼어링인데 미국만큼 혜택을 제공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 또한 미국의 리쇼어링은 외국기업과 자국기업 모두에게 혜택을 제공하지만 한국은 외국기업이 들어올 때 혜택을 더 많이 준다. 따라서 국내기업은 싼 인건비나 판매시장을 찾아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을 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 왜 한국은 리쇼어링이 어려운가.

▶이유는 미국과 한국의 시장 크기에 있다. 수출국 입장에서 가장 큰 시장은 미국과 중국이다. 그렇기에 미국과 중국에 생산기지를 지으면 이득이다. 미국기업이 제품을 생산해 판매할 시장도 미국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다. 미국기업은 비싼 인건비와 땅값에 멕시코와 기타 국가로 공장을 옮겨 생산한 제품을 다시 미국시장에 판매한다. 따라서 파격적인 혜택을 받고 미국으로 돌아가면 오히려 이득이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한국기업은 인건비 비싼 본국으로 와서 생산한 제품을 다시 미국과 중국에 수출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비용이 더 많이 든다. 손해 보는 장사를 할 기업은 없다.

- 그래도 리쇼어링이 일자리 창출 효과는 있지 않나.

▶리쇼어링의 장점은 일자리 창출이다. 또한 주변지역 상권을 살리는 파급효과도 크다. 문제는 청년실업을 해소할 수 있느냐다. 해외로 나가있는 것은 대부분 기업의 생산기지인 공장인데 리쇼어링으로 돌아오면 뭐 하나. 청년들이 공장에 취업하려고 열심히 스펙을 쌓는 건 아니지 않나. 따라서 리쇼어링으로 한국에 돌아오더라도 값싼 외국인 노동자가 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규제 완화하고 투자 확대해야

- 불황 극복을 위한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불황과 실업문제는 노동의 공급과 수요 균형이 깨지면서 심화됐다. 대학 졸업생 수가 1990년 50만명에서 2015년 62만명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대졸 채용 일자리는 30만명 수준이다. 결국 한국의 불황과 취업난이 이어진 이유는 수급문제다. 경제가 1% 성장하면 일자리가 7만명가량 늘어난다. 3% 성장한다는 가정 아래 경제성장으로 창출되는 일자리는 20만개다. 기업이 투자를 확대하고 경제가 성장해야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

- 국내기업의 투자 확대를 유도하려면.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어렵다. 기업의 수요라는 것은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산·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면 투자 확대를 유도할 수 있다. 최근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의 최대주주에 등극하고 싶은 KT와 최대주주 자리를 내려놓고 싶은 한국금융지주의 노력이 모두 은산분리 규제 때문에 제동이 걸렸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대 변화에 맞춰 한국도 금산·은산분리 원칙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 외국자본이 M&A를 주도하면 국가적 손실 아닌가.

▶외국자본이 국내 주요 산업군의 기업을 M&A(인수·합병)하면 국가적 손실이 불가피하다. 단순한 기업의 매각이 아닌 기술과 정보, 인력 유출로 국가의 경쟁력을 잃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산·은산분리 규제 때문에 한국자본이 국내기업에 투자하는 데 한계가 있다. 기업과 은행의 유보금을 고려했을 때 여력이 없어 투자를 못한다기보다는 할 수 없기 때문에 못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불황 개선을 위해서는 선진국처럼 시장에 맡기면서 동시에 규제 완화도 병행해야 한다. 아울러 외국기업과 국내기업의 차별을 철폐하면 외국자본에 기술력을 잃는 상황이 줄어들고 투자는 활성화돼 불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