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기업은 구조조정으로 수익을 내고 빚에 눌린 가계는 지갑을 꽁꽁 닫았다. 암울한 상황은 다음 정부에 더 큰 재앙으로 다가온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로 줄어든 생산인구에게 경제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머니S>는 만성불황의 터널에 갇힌 국민과 기업의 현주소를 알아보고 정부정책, 나아가 대선주자들의 경제공약을 진단했다. 또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선진국이 경기부양에 구사하는 전략을 살펴봤다.<편집자주>


19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대선주자들의 경제공약이 쏟아진다. 우리 경제가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 장밋빛 미래로 도약하기 위한 경기부양책이다.


대선주자들의 경제공약은 서민과 중소기업의 회생에 집중됐다. 오랜 경기침체로 서민과 중소기업이 ‘외환위기 최대치’라는 기록을 경신하며 가계부채 증가, 실적 악화에 시달리고 있어서다. 

현 정권의 물가·금융정책은 경기침체 속에 물가가 빠르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를 몰고 왔다. 경제이론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은 고물가와 실업, 경기후퇴가 동시에 일어나는 경기 대재앙으로 불린다. 소득은 제자리인데 물가가 올라 가계가 지갑을 닫는 소비위축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을 경험한 미국과 영국은 물가급등과 소비위축으로 기업이 연쇄 도산하면서 대량실업이 일어났다. 우리나라도 지금의 경제정책을 유지하면 국민의 빚 부담을 넘어 기업의 파산까지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 어느 때보다 경기 회복을 책임지는 경제대통령이 필요한 시점. 대선주자의 경제공약을 진단하고 차기 정부가 제시해야 할 올바른 경제정책을 알아봤다.


/사진=뉴스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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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다이어트’ 한 목소리… 해법은 차이

대선주자들의 첫번째 경제공약은 가계부채 줄이기다.


가계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1300조원을 넘어 국민들의 살림살이를 옥죄고 있다. 국민의 빚 부담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아 경제성장률이 3년 연속 2%대에 머무는 결과도 초래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우리나라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73.6%에 달한다.


박근혜 정부가 2013년 출범 당시 이 비율을 160.3%에서 5%포인트 낮추겠다고 공언했으나 오히려 13.3%포인트 치솟았다. 경기부양을 위해 부동산시장을 풀고 저금리정책을 펼쳤더니 ‘빚 내서 집 사자’는 인식이 가계부채를 키웠다.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느낀 대선주자들은 부채를 줄여야 한다는 데 한 목소리를 낸다. 다만 해법에는 차이를 보인다.

문재인 후보의 경제비전 ‘J노믹스’는 가장 강력한 규제정책인 가계부채 총량제를 제시했다. 가계부채 증가율을 소득증가율보다 낮게 유지하고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50%를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전략이다.

기존 가계부채 정책은 경제성장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부채를 줄이는 게 목적이지만 문 후보는 ‘빚부터 줄인다’는 입장을 강조한다. 가계부채 감소에는 효과를 볼 수 있으나 가계의 소득과 소비를 저해할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통화정책기관인 한국은행은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

한국은행법 28조에 따르면 한은은 극심한 통화팽창기 등 경제가 악화될 경우 일정기간 안에 금융기관 대출과 투자의 최고한도를 제한할 수 있다. 그러나 한은은 금융회사의 자율경영을 가로막고 투자시장을 어지럽힐 수 있어 규제보다 국민의 부채 상환을 높이는 방식을 유도하고 있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천정부지로 솟은 집값 때문에 소득으로 빚을 갚게 하는 정책은 이미 실패했다”며 “최근에는 미국이 금리인상을 예고해 대외환경을 고려한 가계부채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철수 후보의 가계부채 관리 핵심은 규제 강화다. 가계부채 급증의 주범으로 꼽히는 LTV(주택담보인정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를 강화하자는 취지다. 다만 인위적인 규제를 배제하고 현 정부의 정책 틀 안에서 가계부채를 관리해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이다.

심상정 후보도 DTI 규제를 60%에서 40%로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 후보는 아파트 집단대출에도 DTI를 도입해야 한다며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를 시사했다. 홍준표 후보도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하기 위한 공약을 준비 중이다. 역시 부동산 규제 쪽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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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금융, 무분별한 '빚 탕감' 공약

서민들의 채무를 탕감해주는 선심성 공약도 눈에 띈다. 서민금융은 대상자가 많고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역대 대선주자들이 강조하는 공약 중 하나다.

선거 때만 되면 ‘빚은 갚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채무자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이들의 형성평 문제와 NPL(부실채권)을 관리하는 금융시장 질서를 훼손할 우려가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문 후보는 203만명, 22조6000억원 규모의 채무를 탕감해주는 공약을 제시했다. 국민행복기금의 회수불능채권 103만명, 11조6000억원과 떠돌이 장기 연체채권 100만명, 11조원을 합친 규모다.

문 후보는 회수 가능성이 없는 채권을 탕감하면 채무자들이 경제활동을 하고 금융회사는 채권관리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실효성은 미지수다.
 
심 후보는 대부업법상 이자율 상한을 20%로 인하하고 이자의 총액이 원금을 넘지 못하게 하는 이자제한법 개정을 주장한다. 개인워크아웃과 국민행복기금 채무조정 감면율 확대, 개인회생 변제기간 단축도 공약으로 내놨다.

이 같은 서민금융 공약은 단기적으로 금융소외계층의 이자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금융회사와 대부업체가 대출을 강화해 장기적으로 서민들이 사금융으로 몰리는 악순환에 빠질 우려가 높다.

실제 지난해 3월 정부가 대부업 법정최고금리를 34.9%에서 27.9%로 낮추자 저신용 대출자는 같은 해 9월 88만명으로 전년 동월(94만명)대비 6만명 가까이 줄었다. 이들 대다수는 불법 사금융시장에 몰린 것으로 파악됐다.

홍 후보는 학자금대출 이자를 취업 후 일정 소득수준이 될 때까지 국가가 부담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현재 한국장학재단을 통해 받은 학자금 대출 중 제대로 상환을 하지 못해 부실채권으로 분류된 5만5000명의 채무도 탕감하기로 했다.

오정근 건국대 IT금융학부 특임교수는 “대선주자들이 실현 가능한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뾰족한 대안 없이 빚을 탕감하거나 이자율 규제를 강화하면 서민들의 악성채무가 늘고 사채시장에 기대는 수가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기지원에 수조원 투입, 재원은?

중소기업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대선후보마다 ‘중소기업 대통령’을 표방하며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육성 전략을 내놓는다. 특히 대기업-중소기업 간 일자리 양극화를 문제 삼아 중소기업 일자리 살리기를 강조한다. 그러나 중소기업 전담부처 신설이라는 보여주기식 해법만 내놓을 뿐 구체적인 대안은 찾아볼 수 없다.

문 후보는 중소기업 전담부처 신설과 중소기업이 청년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경우 2명 신규채용 후 세번째 채용 직원의 임금 전액을 정부가 지원하는 ‘2+1고용제’를 제시한다. 1년에 5만명씩 15만명을 지원할 계획으로 최소 3조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한다.

안 후보는 중소기업 취업 청년에게 매달 50만원을 2년간 지원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첫해는 10만명, 다음해는 20만명으로 혜택을 늘려 5년간 5조500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중소기업 근로자와 비정규직 근로자 지원을 위한 '근로자지원센터' 설립을 주장했다. 국책 연구소를 중소기업 전용 연구개발센터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도 강조했다.

두 후보의 공약이 실현되기 위해선 총 8조5000억원이 필요하다. 현 정부의 일자리 예산 17조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로 수조원대의 재원마련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소기업을 겨냥한 공약은 보수진영에서도 쏟아진다. 홍 후보는 중소기업부 신설과 강소기업 중심 정책을 강조했다. 혁신형 강소기업 육성을 위해 2022년까지 중소·중견기업 전용 연구개발(R&D)예산을 10조원으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유승민 후보는 중소기업·창업 컨트롤타워로 중소기업청을 창업중소기업부로 승격한다. 초·중등 교육과정 속 창업 관련 교육을 의무화하고 자유학기제 과정에 창업교육 비중을 확대할 계획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중소기업 전담부서의 승격이 문제를 해결하는 대책이 될 수 없다"며 "중소기업의 재산권 보호가 실질적으로 이뤄지고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도록 법,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복지, 아베노믹스 교훈 삼아야 

경제전문가들은 차기 정부에서 경기가 살아나려면 현 정권의 경제정책과 복지정책을 동시에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10개월째 기준금리를 1.25%로 동결하고 수조원의 재정을 쏟고 있지만 단기적인 경제정책 만으로는 경제가 활력을 찾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우리 경제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일본에서도 교훈을 찾을 수 있다. 아베 총리가 2012년 말부터 막대한 재정투입, 과감한 통화량 확대 등 경기부양정책을 추진했으나 5년이 지나서야 회복의 기미가 보일 만큼 효과가 미미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일본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8%로 종전보다 0.2%포인트 올렸고 일본은행(BOJ)도 1.3%에서 1.5%로 상향조정했다. 다만 지난해 마이너스까지 떨어졌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2월 현재 0.2%에 그쳐 여전히 민간 소비가 부진한 상태다.

우리나라도 올해부터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어 소득과 소비가 감소할 것으로 예견된다. 정부가 저출산·고령화와 소득 정체, 주거비 부담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가계 사정이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조영철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정부가 경기부양에 재정을 쏟은 탓에 국가채무가 빠르게 늘었다”며 “복지와 일자리 예산 등을 만들기 위해서는 재정확대가 불가피하지만 4대강사업 같은 SOC와 경제예산 등을 줄이고 저출산·고령화 등에 대한 미래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