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정규직화’ 이슈를 놓고 정부와 경제계가 충돌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 선언에 경제계가 반기를 들고 청와대가 다시 반박하는 사태가 이어졌다. 비정규직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극명해 양측의 싸늘한 기류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경제계가 이견을 보이는 핵심쟁점을 살펴봤다.


◆비정규직은 나쁜 것인가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1일 서울 창성동 정부청사 별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이내에 교육·노동·복지 등 국정시스템과 재정·세제 등 정책수단을 전면 재점검해 일자리를 중심으로 재설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 부위원장은 “민간기업도 실태조사를 거쳐 합리적 수준에서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제도’를 운영하고, 비정규직을 과다하게 고용하는 대기업에 대한 고용부담금 도입도 검토하겠다”며 “이 방안은 사회적 합의와 국회 입법을 통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A대기업 관계자는 “업종별로 비정규직을 운영하는 방식이 다르다”며 “비정규직을 쓸 수밖에 없는 업종도 있는데 ‘비정규직은 나쁘다’는 인식 아래 일괄적으로 비정규직을 없애면 기업 경쟁력이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경영계는 비정규직 과다 기업에 대한 고용부담금 부과는 기업을 망가뜨리는 악수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B대기업 관계자는 “사회적 합의와 국회 입법을 전제로 한다지만 새정부가 국정을 운영하는 방식을 보면 사실상 답을 정해 놓고 밀어붙이고 있다”며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일괄적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진행해야 할 수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가 부담금 부과를 검토하는 건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추진하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흐름의 민간 확산을 위해서다. 반면 경영계는 정부의 방향성에는 공감하지만 기업활동을 위한 보완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상임부회장. /사진=뉴스1 DB
김영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상임부회장. /사진=뉴스1 DB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비정규직을 줄이고 정규직을 늘려야 한다는 방향성에 이의를 제기할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정규직은 기업 사정이 나빠졌을 때 정리해고 등이 어려워 고용 유연성 확보를 위해 기업들이 채용규모 자체를 줄이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와 경제계의 입장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것은 우선 비정규직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가 최근 한국사회를 ‘헬조선’이라 불리게 만든 핵심 적폐 중 하나로 본다. 따라서 정규직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대가를 받는 비정규직이 만연한 노동구조를 바꾸기 위해 비정규직이 없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반면 경영계는 자발적 비정규직도 있고 기업이나 업종에 따라 비정규직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는 입장이다. 경영계 한 인사는 “비정규직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며 “논란의 본질은 정규직·비정규직 문제가 아니라 대·중소기업 임금격차 문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실적이 좋은 보험설계사나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대리운전 기사 등 자발적 비정규직 근로자도 있고 시간제 일자리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며 “비정규직이 전부 나쁘다는 것은 편견”이라고 덧붙였다.

◆어디까지가 비정규직인가

노사정위원회는 우리나라 비정규직 근로자를 기간제 근로자, 단시간 근로자, 파견·용역·호출 등의 형태로 종사하는 근로자로 정의한다. 노동연구원도 이 기준에 따라 해마다 비정규직 규모를 집계한다.

지난해 비정규직은 644만4000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32.8%를 차지했다. 반면 노동계는 정규직 근로자 중 상용직이 아닌 근로자까지 비정규직으로 포함시킨다. 이 기준에 따른 비정규직은 873만명으로 전체의 44.5%다.

이런 가운데 문 대통령은 생명·안전과 직결된 업무나 상시·지속적 업무를 하는 근로자를 정규직 전환 대상자로 꼽았다. 상시·지속 업무의 명확한 기준은 오는 8월 중으로 정해질 예정이지만 기준에 대한 노동계·경영계의 입장이 다른 만큼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사진=뉴스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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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정부는 청소, 경비, 시설관리 등 주력 사업과 무관한 일을 하는 비정규직도 정규직 전환 대상으로 본다. 하지만 경영계에선 비핵심 업무는 외주업체에 맡기는 게 효율적이라는 입장이다.

근로자와 개인사업자의 경계선에 있는 특수고용근로자에 대한 명확한 정의도 필요하다.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캐디 등은 노동계에선 비정규직으로 보지만 경영계에선 개인사업자로 분류한다.

◆정규직 전환 형태 입장차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키를 쥔 정부의 의지에 따라 일괄적 전환이 가능하지만 민간기업에선 쉽지 않은 문제다. 기업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비용도 만만찮고 전환 방법을 놓고 노조와 충돌이 있을 수 있다.

정부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따라 같은 일을 하는 근로자라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경영계는 인건비 비용 부담액이 커지는 만큼 기존 정규직의 양보와 함께 정부의 적절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규직 전환 방법은 크게 두가지 안을 놓고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이 엇갈린다. 노동계에선 원청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는 방안을 원하지만 경영계는 사업 변화에 따른 노동 유연성 확보를 위해 자회사를 설립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실제 SK브로드밴드는 초고속 인터넷 및 IPTV 설치·AS 위탁업무를 맡은 홈센터 비정규직 직원 5200여명을 자회사를 설립해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소속 조합원 81.8%도 이 안에 동의해 이대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 SK브로드밴드 노조 관계자는 “원청 소속 정규직이 되면 좋겠지만 자회사 정규직도 지금보다 근로조건이 많이 나아진다면 나쁘지 않은 것 같다”며 “한번에 다 바꾸기는 힘들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변화가 시작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약 80%의 홈센터와 이달 말까지 업무위탁 계약을 종료하고 이들 센터의 구성원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채용할 계획”이라며 “반대하는 일부 센터 대표는 희망하면 기존과 같이 위탁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9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