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25조원, 아쉬운 빚탕감 정책
이남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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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113억원. 국민행복기금에서 600만원 가까운 채무조정을 받고도 3개월 이상 연체한 금액이다. 연체인원은 10만6000명에 달한다. 채무자가 좀처럼 줄지 않자 결국 정부가 통큰 대책을 내놓았다. 취약계층의 빚을 전액 탕감하기로 한 것이다.
국민행복기금의 소각 채권은 원금 1000만원 이하, 연체기간 10년 이상인 장기·소액 연체채권이다. 이를 통해 채무자의 신용회복을 돕고 추심 고통도 없애준다는 취지다.
대책의 취지는 공감한다. 상법상 돈 갚을 의무는 연체 시점부터 5년(소멸시효 완성)이지만 채무자가 법원의 지급명령을 받거나 일부 금액을 상환한 경우 15~25년까지 연장된다. ‘죽은 빚’이 살아나 서민을 괴롭히는 일이 반복된 것이다.
다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수박 겉 핥기’ 정책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채권을 운영하는 국민행복기금의 개선방안이 빠졌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자. 정부는 2013년 3월 채무자의 채무조정을 관리하기 위해 국민행복기금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효과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지난 3월 기준 국민행복기금에서 채무조정된 금액 2조874억원 중 1조113억원(38%)이 다시 연체채권으로 돌아왔다.
국민행복기금이 서민으로부터 거둔 원금과 이자수익을 주주에게 돌려주는 채권추심기관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행복기금은 민간금융회사 출자로 출범했다. 기업으로선 당연히 이익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 지난해 7월까지 기금은 주주와 위탁추심업체에 2500억원을 배당했고 1500억원을 수수료로 지급했다. 서민에게 받은 이자로 주주들이 돈 잔치를 벌인 셈이다.
나아가 배당 등을 결정하는 국민행복기금 이사진은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과 이순우 저축은행중앙회장 등 금융회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수장으로 구성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윤영 서민금융진흥원장이 국민행복기금 이사장과 신용회복위원장을 겸임한다. 한 수장이 서민 자금지원과 채무조정을 담당하는 두 기관을 총괄하는 모습은 ‘짜고 치는 고스톱’을 연상케 한다.
정부의 부채탕감정책이 가시적인 효과를 내려면 국민행복기금의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세금을 운용하는 곳은 정부지만 그 세금을 내는 주체는 국민임을 간과해선 안된다.
무엇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내세운 포용적 금융의 첫 단계는 전 정권이 실패한 제도 혹은 기관을 재정비하는 작업이 돼야 할 것이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으려면 헌 술은 버리는 것이 당연지사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0호(2017년 8월9~1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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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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