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용주사 대웅보전, 보물 제1942호 지정
김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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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용주사 대웅보전. /사진=문화재청 제공 |
사도세자의 명복을 비는 사찰이었던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이 보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경기 화성시에 있는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942호로 지정했다고 14일 밝혔다.
화성 용주사는 장조(사도세자)의 묘소인 융릉(전 현륭원)의 능침 사찰로 쓰였던 장소이다. 능침 사찰은 왕과 왕비의 능침을 수호하고 명복을 비는 사찰을 가리킨다. 제사 물자를 준비하기 위한 조포사(나라 제사에 쓰이는 물자를 조달하는 절) 역할을 했다.
1790년 2월19일 공사를 시작해 4월15일 상량, 9월29일 불상이 봉안됐는데 왕실이 공사를 발주하고 관청이 재원을 조달하는 등 건립 계획부터 공사 감독까지 일관되게 국가가 주도한 공사였다. '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현륭원의궤' 조선사찰사료' 등 관련 사료를 통해 공사 내용, 재원, 집행, 인력 등 공사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화성 용주사는 중심 영역인 삼문, 천보루, 대웅보전을 가운데 일렬로 두고 승당, 선당(스님들의 살림 공간), 좌우 익랑(정전 양쪽에 날개처럼 빠져나온 건물)은 똑같은 규모의 동일한 형태로 마주보고 대칭되게 배치했다.
문화재청은 "이 같은 배치와 공간 구성은 창건 당시 모습을 대체로 잘 유지하고 있어, 조선 후기 능침 사찰의 배치 특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평가했다.
1790년 2월19일 공사를 시작해 4월15일 상량, 9월29일 불상이 봉안됐는데 왕실이 공사를 발주하고 관청이 재원을 조달하는 등 건립 계획부터 공사 감독까지 일관되게 국가가 주도한 공사였다. '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현륭원의궤' 조선사찰사료' 등 관련 사료를 통해 공사 내용, 재원, 집행, 인력 등 공사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화성 용주사는 중심 영역인 삼문, 천보루, 대웅보전을 가운데 일렬로 두고 승당, 선당(스님들의 살림 공간), 좌우 익랑(정전 양쪽에 날개처럼 빠져나온 건물)은 똑같은 규모의 동일한 형태로 마주보고 대칭되게 배치했다.
문화재청은 "이 같은 배치와 공간 구성은 창건 당시 모습을 대체로 잘 유지하고 있어, 조선 후기 능침 사찰의 배치 특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평가했다.
또한 대웅보전은 용주사의 주불전으로 여러 번의 중수가 있었지만 외부 단청을 제외하면 처음 지었을 때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의 건물로 18세기 불전 건축의 특징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장대석 기단과 원형주좌를 둔 사각의 초석, 지붕의 취두와 용두, 양성바름 등 시공에 정성을 기울여 능침 사찰로서 건물의 격을 나타낸다. 다포 양식의 공포와 초각 수법은 창건 당시의 시대적 특성을 보여준다.
문화재청은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은 능침 사찰의 주불전으로 권위, 격식, 시대성을 잘 간직하고 있다"며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이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적극적으로 협조할 계획"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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