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통상임금 소송 판결임박, 차업계 초비상… ‘신의칙’ 인정여부 관건


한국자동차산업이 ‘통상임금’이라는 암초에 좌초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된다. 글로벌 시장악화와 경쟁심화로 고전중인 자동차 업계는 기아자동차의 통상임금 소송 결과에 모든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자동차 관련 업계에선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이 대내외적 악재로 고전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통상임금이라는 폭탄이 더해지면 그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 기아차 패소하면 산업계 타격 불가피

이달말 혹은 다음달 초 1심 판결이 날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에서 기아차가 패소할 경우 회사는 회계평가 기준 최대 3조원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반기 영업이익이 7870억원에 불과한 기아차는 당장 3분기부터 영업적자를 면하기 어려워진다.


중국의 사드보복으로 글로벌 판매량이 급감해 사실상 차입경영을 하고 있는 기아차가 적자를 기록할 경우 유동성 확보와 자금조달이 어려워져 경영위기로 내몰릴 전망이다. 그리고 기아차의 위기는 자동차 산업 전반의 위기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먼저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부품업계다. 우리나라 자동차 부품업계는 완성차 업계의 글로벌 판매부진에 이미 어려움이 현실화됐다. 신규채용이 줄어드는 등 다양한 시그널이 나타나고 있는 것. 올 상반기 계열사를 제외한 현대기아차 1차협력업체의 신규채용인원은 5426명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5888명) 대비 8%나 감소한 수치다. 중국 사드 여파와 미국 통상압력 등으로 인한 완성차 판매 및 경영여건 악화가 부품사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졌다는 게 부품업계의 설명이다.


기아차의 통상임금 소송 패소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백개의 부품사에게 폭탄이 될 수 있다. 이로인해 부품업체들이 도산할 경우 우리나라 자동차산업 생태계 전부를 무너뜨릴 수 있는 지대한 위협이 된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 관계자는 “통상임금 판결의 영향으로 완성차 및 부품사에서만 2만3000명이 넘는 일자리가 감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통상임금 문제는 나아가 전 산업계의 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진행중인 수백여 기업의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 인건비가 상승할 경우 기업은 투자와 채용을 줄일 수 밖에 없다.


학계에서도 통상임금 부담에 대한 일자리 감소 우려의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21일 '통상임금 논란의 쟁점과 판결 이후 과제' 토론회에서 "통상임금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후 노동 현장에서는 많은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며 "법원의 사후 개입으로 임금이 상승하고 노사갈등으로 임금이 균형임금으로 하락하지 못하면 기업의 수요곡선에 의해 실업이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 판결임박, 차업계 초비상… ‘신의칙’ 인정여부 관건


◆ 금호타이어 신의칙 인정… 기아차도?

자동차 관련 업계에선 최근 금호타이어 통상임금 소송 2심 선고에 희망을 걸고 있다. 앞서 지난 18일 금호타이어 통상임금 소송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인 광주고등법원이 1심판결을 뒤집은 근거는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이다. 신의칙은 ‘권리의 행사와 의무 이행은 신의를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는 민법 제2조 1항을 말한다. 재판부는 “근로자가 노사가 합의한 임금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외의 이익을 추구하고 사용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재정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면, 이는 노사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밝혔다.

이같은 판결은 기아차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판례로 비춰 볼 때 기아차 역시 신의칙 인정을 위한 요건에 부합되기 때문. 업계 관계자는 “과거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는 노사 협의가 존재하고 청구되는 추가임금으로 기업경영상 중대한 어려움이 발생하는 경우 신의칙이 인정될 수 있다”며 “기아차 역시 이같은 요건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워크아웃을 거쳤고 적자를 기록중인 금호타이어보다 경영상황이 양호하다는 측면에서 변수는 있지만 3조원에 달하는 비용이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어떤 기업도 감당해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