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을 연 서초구의 한 분양 아파트 견본 주택. /사진=뉴시스 고범준 기자
최근 문을 연 서초구의 한 분양 아파트 견본 주택. /사진=뉴시스 고범준 기자



“후분양제를 도입하면 시공비 부담이 커져 분양가가 오를 수밖에 없어요.” A대형건설사 관계자
“입주 날짜 받아 놨는데 아파트가 엉망진창이라면 화날 것 같아요.” 소비자 B씨

8·2부동산대책과 후속조치로 부동산시장에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아파트 후분양제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예전부터 소비자와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후분양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업계 논리에 밀려 현실화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부영의 부실시공 아파트 사태가 불거지며 후분양제 도입 주장에 힘이 실렸다. 정치권에서는 부실시공 건설사의 시장 퇴출과 더불어 전면적인 후분양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소비자는 완공된 아파트를 직접 보고 선택할 수 있어서 환영의 뜻을 내비치지만 건설사들은 시공비 부담이 가중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는 상황이다. 


◆‘부영주택’의 아파트 부실시공 논란


최근 부영주택의 부실시공 아파트가 논란이 되며 아파트 후분양제 도입 주장이 공론화됐다. 부영주택이 시공한 경기도 동탄2신도시 23블럭 부영아파트는 지난 3월 사용승인을 받은 이후 18개동 1316가구 중 1135가구가 입주했지만 무려 8만415건의 하자보수 신청이 접수됐다.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관계자들이 화성 동탄2신도시 23블럭 부영아파트에서 지하주차장 누수 및 침수, 아파트 배수 하자 등의 현장을 살펴보는 모습. /사진제공=경기도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관계자들이 화성 동탄2신도시 23블럭 부영아파트에서 지하주차장 누수 및 침수, 아파트 배수 하자 등의 현장을 살펴보는 모습. /사진제공=경기도




경기도는 세차례 품질 검수를 실시해 우선 211건의 지적사항을 적발한 뒤 부영주택에 전달했고 이 중 201건이 시정됐다. 하지만 최근 내린 폭우로 배수 불량과 지하주차장 천장누수 등 추가 하자가 발생해 입주민 불만이 고조됐다.

관할 화성시는 입주민의 민원이 늘고 주거 안전까지 우려되자 지난 7월 부영아파트 내에 현장 시장실을 설치했다. 화성시는 현장 시장실에 건축분야 민간전문가와 도시주택국장, 주택과장 등을 상주시켜 부영아파트 부실시공 내역을 접수받고 보수공사를 독려했다. 그 결과 온·오프라인을 통해 2220여건의 추가 부실시공 사례가 접수됐다. 하자 종류도 도배·도장 불량, 누수 등 다양했다.

부영주택은 지난해 3월 창원에서도 아파트 부실시공이 적발돼 창원시로부터 공사 중지 행정처분을 받은 바 있어 논란을 더 키웠다.


경기도는 부영주택이 시공한 도내 또 다른 아파트도 부실시공 여부를 특별 점검해 국토교통부, 타 지자체와 지속 공유하기로 하며 부영을 압박 중이다.

부영주택의 아파트 부실시공 사태가 커지자 각 지자체와 정치권이 바빠졌다. 이들은 부실시공 건설사에 선분양제를 제한하는 방식의 후분양제 적용 방안과 법 개정 등을 검토 중이다.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채인석 화성시장은 부영아파트 부실시공 사태에 대해 문제 해결과 함께 엄중한 행정조치를 약속했다. 양측은 ▲부영아파트 시공사·감리자에 대한 제재 방안 적극 검토 ▲부영아파트 하자내역 추적·관리로 입주자 불만 해소 ▲도내 시공 중인 부영아파트 단지 특별점검과 점검결과 공유 ▲부실시공업체 선분양 제한 제도개선 방안 등을 마련키로 했다.

정치권의 목소리도 커졌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회의에서 “아파트 부실시공을 한 건설사는 선분양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이 의원은 지난 5일 부실시공으로 문제를 일으킨 건설사에 대해 공동주택 선분양을 제한하고 주택도시기금 이용을 막는 이른바 ‘부영방지법’을 발의했다. 이 의원이 9명의 의원과 함께 발의한 부영방지법은 ‘주택법 일부개정안’과 ‘주택도시기금법 일부개정안’ 등 2건이다.


이 법안에는 시공실적, 하자발생빈도 등에서 국토교통부가 정한 벌점 기준을 초과한 건설사의 준공검사 이전 입주자 모집을 막는 ‘선분양 제한규정’이 담겼다. 또 부실벌점제를 연계해 기준에 미달하는 건설사는 주택도시기금으로부터 출자·출연 또는 융자를 제한토록 했다.

앞서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도 지난 3월 주택법 개정안을 통해 후분양제 도입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지방공사 등 공공기관, 재벌 건설사의 후분양 의무화를 핵심 내용으로 해 도입 여부에 업계 이목이 집중됐다.

◆건설사들, 후분양제 확산될까 노심초사

당연한 얘기지만 소비자들은 후분양제 도입을 환영한다. 견본주택만 보고 청약하는 선분양제와 달리 완공된 아파트를 직접 보고 청약하는 후분양제를 도입하면 소비자 피해가 줄고 건설사의 시공 책임감이 커질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이번 부영주택 부실시공 사태는 워낙 범위가 넓고 다양해 수면 위로 부상했지만 비슷한 사례는 이미 수도 없이 발생했다. 이번처럼 큰 이슈로 부각되지 않은 것은 입주민들이 집값 하락 등을 우려해 조용히 해결하려 한 탓이다. 시공사가 하자보수에 미온적 태도를 취한 경우도 흔하다.

2011년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의 한 고층 아파트에 입주한 C씨는 “분양 당시 건너편 백화점 건물이 우리 집 아래였는데 완공 뒤에 보니 더 높게 지어져 일조권을 침해당했다”고 하소연했다. C씨는 당시 시공사에 항의했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며 억울해했다.

선분양제의 문제점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공론화되며 후분양제 도입 목소리가 커지자 건설사는 최근 분위기가 자칫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까 우려하는 모습이다. 특히 후분양제를 도입하면 시공비 부담이 가중돼 오히려 분양가를 높이는 역효과가 난다며 도입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선분양제는 입주예정자에게 받는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아파트를 짓는 형태라 원활한 시공이 가능하다”며 “반면 후분양제는 시공기간 내내 모든 자금 부담을 시공사가 떠안아야 하므로 결국 원가 상승과 분양가 상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중견건설사도 비슷한 입장.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10대 건설사와 일부 재무구조가 탄탄한 중견건설사를 빼면 대부분의 건설사는 자금력이 빈약하다”며 “꼭 후분양제를 도입해야 한다면 중소건설사를 배려한 자금 융통 방안도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5호(2017년 9월13~1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