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픽셀폰. /사진=뉴시스
구글 픽셀폰. /사진=뉴시스

최근 구글이 HTC의 스마트폰 사업부문 일부를 전격 인수하면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시장에 일대 격변이 일어날 조짐이다. 일단 구글은 지난해 출시한 프리미엄 스마트폰 ‘픽셀’에 좀더 집중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입장이다. 구글의 구상대로 픽셀 집중전략이 성과를 거둔다면 안드로이드 프리미엄시장의 대표주자인 갤럭시S·노트 시리즈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커진다. 과연 구글의 노림수는 무엇일까. 삼성전자 등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구글의 전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구글, HTC 인력 2000명 인수한 이유

지난 21일 구글은 대만의 스마트폰 제조사 HTC의 픽셀 제조·개발 사업부문을 11억달러(약 1조2463억원)에 인수한다고 자사 블로그를 통해 밝혔다. 릭 오스텔로 구글 하드웨어부문 수석부사장은 “픽셀 스마트폰을 개발하며 그간 긴밀히 협력해온 놀라운 사람들이 구글 하드웨어부문의 새로운 직원으로 합류한다”며 “거래에는 HTC 지적재산권의 비독점 사용권도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오스텔로 부사장의 말처럼 이번 구글-HTC 계약의 골자는 HTC 스마트폰 사업부문 약 4000명의 인력 중 픽셀 개발과 관련된 인력 약 2000명을 구글로 이적시키는 것이다. 이 직원들은 지난해 구글이 하드웨어사업부문을 통합해 출범시킨 단일사업부 ‘하드웨어부문’에 속하게 된다. 지난 가을 처음 공개한 픽셀 스마트폰, 구글 홈, 구글와이파이, 데이드림 뷰(가상현실 기기), 크롬캐스트 울트라 등 ‘메이드 바이 구글’(Made by Google) 제품군을 개발·생산하는 부서다. 

픽셀폰, 구글 홈, 구글 와이파이, 데이드림 뷰 등 구글 하드웨어 제품군. /사진=뉴시스
픽셀폰, 구글 홈, 구글 와이파이, 데이드림 뷰 등 구글 하드웨어 제품군. /사진=뉴시스

HTC가 보유한 특허 라이선스 권한도 확보했다. 독점계약이 아니라 HTC는 여전히 특허권을 보유하며 다른 기업에 팔거나 증여할 수도 있다.

이번 계약으로 구글은 하드웨어 역량을 한층 강화하게 됐다. 지난해 출시돼 좋은 반응을 얻은 구글브랜드 스마트폰 ‘픽셀’은 구글이 개발하고 HTC가 위탁생산하는 구조였고, 오는 10월4일 발표될 후속작 ‘픽셀2’와 ‘픽셀2XL’은 각기 HTC와 LG전자가 위탁생산한다. 하지만 내년 출시될 3세대 픽셀은 구글이 단독생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모토로라 인수와 어떻게 다른가

앞서 구글은 지난 2012년 5월 125억달러에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인수한 바 있다. 당시만 해도 대표적인 스마트폰 제조사였던 모토로라의 제조능력으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시장에서 당당히 경쟁하겠다는 포부였다. 하지만 이 시도는 금방 한계에 부딪혔고 결국 2년도 지나지 않은 2014년 1월 구글은 29억1000만달러의 헐값으로 중국 레노버에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통째로 넘기게 된다.


이때 구글이 스마트폰 전쟁에 참여하려던 게 아니라 모토로라가 보유한 특허를 노린 것이었으며, 구글의 모토로라 보유가 삼성전자, 화웨이, HTC 등 안드로이드 진영의 주요 파트너사와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방해가 돼 레노버에 되팔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었다. 그렇다면 이번 구글의 HTC 픽셀 사업부문 인수는 앞서 모토로라의 사례와 어떻게 다를까.

HTC의 역대 하드웨어들. /사진=HTC
HTC의 역대 하드웨어들. /사진=HTC

가장 큰 차이는 HTC가 지난 10년간 구글과 가장 밀접하게 협력해온 파트너라는 점이다. HTC는 지난 2008년 발매된 최초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HTC 드림’(티-모바일 G1)을 제조한 회사다. 이후 2010년에는 안드로이드 레퍼런스폰 ‘넥서스’ 시리즈의 최초 모델인 ‘넥서스 원’을 생산했고, 그 외에도 넥서스 태블릿, 픽셀 스마트폰 등 구글이 새로운 기기를 만들 때마다 매번 첫번째 협력사의 자리를 지켜왔다.

두 번째로 모토로라의 경우 기업 전체를 인수했지만, 이번에는 HTC 스마트폰 사업부문 인력의 50%만 인수하는 거라 앞으로도 HTC가 이전과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사업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50%의 개발인력 상실로 인한 후유증은 예상되지만 HTC는 여전히 자체브랜드 스마트폰은 물론 최근 가상현실(VR) 분야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바이브’(Vive)까지 보유한 회사로 남게 된다. HTC는 이번 매각대금 11억달러를 사용해 다시 한번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낼 것으로 예상된다.

◆구글의 새 전략, 파트너사 위협할까



이렇듯 구글과 HTC는 윈-윈이지만 삼성전자, 화웨이 등 안드로이드 진영에 속한 다른 파트너사의 입장은 다르다. 앞서 모토로라 인수 때와 마찬가지로 운영체제를 가진 구글이 하드웨어 제조역량까지 갖추고 경쟁자로 나서는 상황이라 자칫 ‘닭 쫓던 개’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파트너사들의 반발이 뻔히 예상되는 데도 구글이 이번 계약을 굳이 강행한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이익이 많이 나는 프리미엄시장에서 아이폰과 경쟁할 새로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졌다는 점이다. 갤럭시S·노트 시리즈만으로는 아이폰과 대결이 역부족이라고 판단했다는 것.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의 지난 2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 집계에 따르면, 출시된지 6개월이 지난 아이폰7과 아이폰7플러스가 여전히 1690만대, 1510만대로 출하량 1·2위를 차지했고, 갤럭시S8과 S8플러스는 직전 분기에 출시된 신작임에도 1020만대, 900만대로 각기 3·4위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이에 구글이 생각한 대안이 ‘픽셀’이다. 오는 10월4일 출시될 픽셀2는 최신 안드로이드O(오레오) 운영체제와 OLED 화면, 손떨림방지(OIS) 기능, 듀얼카메라, 방수방진 등 각종 최신 사양이 총망라된 플래그십 스마트폰이 될 전망이다. 픽셀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처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보유한 기업이 될 필요가 있었다.

앞서 MS도 아이패드, 맥북 등으로 프리미엄 태블릿·노트북 시장에서 애플이 앞서 나가자 서피스 시리즈를 직접 만들며 윈도 운영체제 기반으로도 충분히 완성도 높은 하드웨어를 만들 수 있음을 입증했다. 전문가들은 구글의 픽셀이 마이크로소프트 서피스의 모방 전략이라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이 전략은 삼성전자, LG전자, 화웨이 등 안드로이드 파트너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단은 프리미엄 안드로이드폰의 소비자 선택지 하나가 더 늘어나는 것일 뿐 파트너사들에게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MS 서피스의 완성도가 높다 해서 HP, 삼성전자, 에이서의 태블릿, 노트북 판매가 줄어들지는 않는다”라며 “구글 픽셀 역시 서피스와 비슷한 수준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 정도로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