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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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헨리 포드가 만든 최초의 대량생산 자동차 ‘모델T’. 이 자동차가 개발된 뒤 불과 10여년 만에 미국의 도로는 마차 대신 자동차로 채워졌고 철도 인프라는 고속도로에 밀려났다. 칼 벤츠가 최초의 자동차를 만든 지 불과 30여년 만의 일이다.


업계에선 전기차가 내연기관을 대체하는 일 역시 이처럼 급격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마차를 자동차로 바꾸는 것보다 더 큰 편익을 소비자에게 주진 못하지만 정부규제와 인식의 변화는 자동차의 전기화를 부추긴다. 이미 많은 업체들이 전기차 판 모델T를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시장과 기술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글로벌업계의 각축전은 이미 시작됐다.

◆ 정부정책이 성장 이끌어

지난 10월25일 전기차 동향 관련 간담회에서 조기연 알릭스파트너스 부사장은 “현재 전기차 활성화로 가장 주목할 성과를 보이는 나라는 중국과 북유럽 강소국가들”이라며 “정부주도 정책이 전기차 성장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컨설팅회사인 알릭스파트너스는 APEX라는 전기화지수 개념을 사용해 이같이 분석했다. APEX는 전기차 판매량과 판매비율 수치에 1회 충전시 최대주행거리 개념을 더한 E-range와 E-share라는 수치로 각 나라와 업체의 전기차시대 진입 정도를 나타낸다.

각 주체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전기차시대에 접근하는 가운데 단순히 전기차 판매량과 판매비율 만으로는 시장과 업계 상황을 다각적으로 분석할 수 없어 만들어낸 개념이다. 조 부사장은 “APEX를 이용해 지역별·제조사별 집중분야 등에서 좀 더 다양하고 유의미한 분석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알릭스파트너스의 분석에 따르면 전기차시대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국가는 중국과 북유럽 강소국가들이다. 중국은 압도적인 전기차 판매대수를 바탕으로 E-range에서 독보적이다. E-share에선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네덜란드, 스웨덴 등 유럽 강소국의 점수가 높다. 특히 노르웨이는 2위인 아이슬란드(1.60%)의 7배에 달하는 11.86%로 압도적이다.

조 부사장은 “중국시장은 현지 제조사의 플릿판매가 시장 확대를 주도하고 있고 내연기관 자동차산업을 보유하지 않은 노르웨이 정부는 오랜기간 적극적인 정책으로 전기차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전기차시대를 앞당길 일관성 있는 프로그램과 정책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 국가는 최근 더욱 강력한 전기차 확산책을 내놓고 있다. 중국은 2019년부터 완성차 제조사가 일정 비율을 전기차로 의무 판매하는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고 노르웨이와 네덜란드는 2025년부터 전기차만 판매하도록 할 방침이다.


[머니포커S] 한국 전기차, '따라가기' 스톱!

◆ 한국도 잠재력 크다

알릭스파트너스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전기차산업과 시장은 아직 두각을 나타내진 못하지만 가능성이 열려있다. 조 부사장은 “충전소와 같은 기반 시설이 부족하고 전기차 구매자에 대한 정부 지원이 충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의 인식 변화 및 다양한 모델 선택권이 전기차 판매량을 증가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전기차시장은 아이오닉을 비롯해 다양한 신규 전기차 모델이 출시된 2016년 이후 급성장했다. 2013년 1분기 0.01%이던 한국시장의 E-share는 올 2분기 0.23%로 19.2배 증가했는데 이는 글로벌 평균 성장치(5.8배)를 크게 상회한다. 젊은 소비자층이 기존 내연차량의 대안으로 전기차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고 세계 최고수준의 IT인프라를 갖췄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 위주인 우리나라 주거환경에서 인프라 구축이 어렵다는 의견도 많지만 이 역시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 부사장은 “공동주택의 경우 초기 인프라 설치에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일단 인프라가 확보되면 더욱 효율적으로 전기차를 운영할 수 있다”며 “충전과 관련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개발되고 있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기업이 얼마나 변할 수 있느냐다. 전기차시대는 기존 완성차업체보다는 테슬라와 같은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업계를 이끌어 나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전기차 제조사 중 테슬라는 E-range와 E-share에서 모두 압도적인 1위다. 즈더우(Zhidou)와 BYD 등 중국 현지제조사도 새로 조명받는 업체다. E-range와 E-share에서 각각 10위, 17위로 평가된 현대차그룹이 적극적인 태세로 나서지 않는다면 새로운 시장을 선도하는 플레이어가 되기 어렵다. 기존의 패스트팔로워 전략으론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당장 내년부터 정부의 보조금이 줄어들 전망인데 완성차업체들이 만드는 전기차는 아직 팔아서 돈을 남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비용을 낮추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업계 관계자는 “내연기관 생산체제에서 만들어지는 전기차는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며 “전기차를 위한 전용라인을 만드는 등 적극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폐쇄적인 기업문화도 문제로 지목된다. 수직계열화된 기업구조에서 활발한 인수합병(M&A)이나 기술교류 등을 기대하긴 어렵다. 최고수준의 배터리업체 등 훌륭한 협업 파트너가 국내에 많이 있지만 협업에 인색한 것도 사실이다.

조 부사장은 “현재 공급자가 소비자보다 우위에 있는 산업은 자동차가 거의 유일한데 전기차시대에서는 이런 구도가 사라질 것”이라며 “소비자에게 매력적인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의 혁신이 필수”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2호(2017년 11월1~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