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대입 수능일 전날, 포항 인근에서 규모 5.4의 큰 지진이 발생했다. 입시 일정을 일주일 연기한 정부의 빠른 결정으로 더 큰 혼란을 막을 수 있었지만 수능을 코앞에 둔 수험생은 마음고생이 컸을 것이다.


이번 포항지진은 지난해 경주지진(규모 5.8)에 이어 역대 두번째로 큰 지진이다. 이쯤에서 많은 사람이 의문을 가질 것이다. 경주와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지진 발생위험이 큰 지역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텐데 왜 과학자들은 예측하지 못했을까. 지진예측의 역사가 얼마나 참담했는지는 과학계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러 나라에서 오랜 기간 진행된 수많은 지진예측연구는 이구동성으로 딱 하나의 명확한 결론에 도달했다. ‘지진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큰 지진의 전조 증세가 없을 뿐더러 미리 알기도 힘들다.

나와 같은 통계물리학자도 지진에 관심이 많다. 지구물리학을 전공하는 전문연구자가 한반도의 구체적인 지각구조에 관심을 기울일 때 통계물리학자는 이를 좀 다르게 본다. 지진 하나하나의 구체적인 원인을 이해하는 건 잠시 접어두고 지진 발생의 통계적인 패턴을 본다. 개별 지진은 예측할 수 없다는 게 과학계의 일반상식이지만 발생패턴은 묘하게도 일관성을 보인다. 
이를테면 큰 지진 발생 이후의 여진은 그 빈도가 시간에 반비례하는 일정한 패턴으로 줄어든다. 이를 ‘오모리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시간의 역수로 줄기 때문에 여진이 잦아드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기상청 홈페이지에서 지진 관련 자료를 내려받아 살펴보니 우리나라는 5 이상 규모의 지진이 4 이상보다 20%가량 드물게 일어난다. 또 4 이상인 지진은 3 이상보다 20% 드물고, 3 이상인 지진은 2 이상보다 또 20% 적게 발생한다. 20%라는 수치가 규모에 상관없이 일정하다는 게 흥미롭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20%라는 값만 다를 뿐 동일한 패턴이 다른 나라에서도 널리 관찰된다. 이는 ‘구텐베르크-리히터 법칙’으로 불린다. 여기서 20%라는 숫자가 지진의 규모와 상관없이 일정한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규모가 5 이상인 큰 지진이든 이보다 작은 3 수준의 지진이든 똑같은 패턴으로 발생한다는 뜻이다. 즉 지진의 규모에 특별한 값이란 없다.


지진에는 척도가 없다. 척도가 없는 것은 지진의 규모뿐이 아니다. 지진 사이의 시간 간격에도 척도가 없다. 다음의 큰 지진은 가까운 미래에 올 수도, 아주 먼 미래에 올 수도 있다. 지진 발생은 주기적이지 않다. 큰 규모의 지진이 일정한 주기로 일어나지 않는다. 통계물리학자가 어떤 눈으로 지진을 보는지 알고 싶다면 마크 뷰캐넌의 책 <우발과 패턴>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지진은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대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