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거도항 태풍피해 복구공사 조감도.(출처=KDI 설계변경사전타당성검토 보고서)
가거도항 태풍피해 복구공사 조감도.(출처=KDI 설계변경사전타당성검토 보고서)

1600억원 규모의 국책사업인 '가거도항 태풍피해복구 공사' 시공사인 삼성물산이 하청업체를 통해 중소 건설사의 특허를 도용했다는 분쟁에 휘말렸다.

특허를 도용당했다고 주장한 건설사는 경영악화로 파산 위기에 처했으며 삼성물산의 하청업체를 경찰에 고소했다.

설계 받고 특허료는 지급 안해
  
지방 중소건설사인 청문건설 관계자는 "목포해양수산청이 발주한 가거도항 태풍피해복구 공사를 맡은 삼성물산이 특허를 도용했다"고 주장했다. 삼성물산이 연약지반을 보강하는 공사를 하기 위해 자사가 보유한 특허를 통해 설계를 받아 시공을 하면서도 특허료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삼성물산이 연관된 특허 도용 분쟁은 2015년 10월 말 삼성물산이 청문건설에 '연약지반개량공사 견적의뢰'를 요청하며 시작됐다. 청문건설에 따르면 당시 삼성물산은 이 회사에 설계 관련 견적을 요청했으며 해당 공사의 전면책임감리용역을 맡은 혜인이엔씨를 통해서도 5차례에 걸쳐 견적을 받았다. 청문건설은 이 견적에 대해 "삼성물산에 설계를 해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문건설 측은 "당시 삼성물산은 기술적인 문제로 연약지반 보강공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며 "우리 회사가 사용할 수 있는 특허인 'MAS공법'으로 공사를 할 수있다고 했더니 삼성물산으로부터 견적의뢰가 왔다"고 설명했다.


MAS공법은 선단장치에 3중관롯드가 연결되고 선단에 해머가 장착된 지반 굴착장치를 사용하는 지반개량 공법으로 일반 천공장비로는 작업이 어려운 전석 및 사석층 등의 보강작업에 특화됐다. 가거도항 연약지반개량공사는 당초 일반 SRC공법(고압분사주입 방식)으로 설계됐지만 가거도항의 수심이 45m로 깊어 작업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삼성물산은 설계를 맡은 혜인이엔씨와 수개월에 걸쳐 협의를 진행한 청문건설이 아닌 성우지오텍을 하도급 업체로 선정했다. 청문건설 관계자는 "삼성물산이 총 공사비용의 8%에 달하는 특허료를 아끼기 위해 그런 것"이라며 "(청문건설이 삼성물산에게) 설계를 해주고 시공계획을 설명한 몇개월 동안 아무런 일도 못했다. 특히 특허공법을 이용해 공사를 진행하려고 제작한 건설 장비들도 헐값에 팔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삼성물산의 하도급을 받은 성우지오텍이 청문건설이 특허 공법에 사용할 목적으로 만든 기계를 사용해 공사를 진행했다는 점이다. 앞서 성우지오텍은 해당 특허권을 가진 청문건설 관계자로부터 이 장비를 3억원에 구입했다.

목포해양청에 따르면 청문건설이 삼성물산에 설계를 해줬다고 주장한 시기와 삼성물산이 연약지반개량공사 설계를 마친 시기가 모두 2016년 초로 일치했다. 청문건설과 삼성물산의 설계논의가 끝난 것은 같은 해 2월이며 성우지오텍이 하도급사로 선정돼 특허권자에게 관련 장비를 구매한 시기는 3월이다. 해당 공사는 4월 초 착공됐다.


이는 청문건설 주장대로 이 회사가 삼성물산에 제공한 설계가 해당 공사에 사용되는 것이 시기적으로 가능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영세 하도급사가 도급사의 동의 없이 공법을 마음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며 "특허 공법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해당 기계를 샀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청문건설에 따르면 경찰과 감사원은 해당 사안에 대해 수사와 감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수사의 경우 올 초 종결 의견이 나왔지만 검찰에서 재수사를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원은 최근 경찰 조사결과를 토대로 청문건설 관계자를 소환했다.

이에 대해 성우지오텍 측은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우리가 해당 제품을 구입한 것도 맞고 사용한 것도 맞지만 특허를 침해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청문건설에서 견적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해당 공사 설계과정에서 경제성과 시공법 검토 차원에서 회의를 진행했는데 청문건설은  그 과정에서 견적을 건넨 세개의 업체 중 하나"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특허 문제로 삼성물산이 고소를 당해 경찰조사를 받은 적은 없으며 지난 1월 청문건설이 삼성물산 등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권침해 가처분소송도 기각됐다"고 설명했다.

◆“삼성물산, 저가입찰로 돈 궁했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는 삼성물산이 가거도항 태풍피해공사를 하면서 ‘저가 입찰’로 속앓이를 했다고 말했다.삼성물산이 2013년 입찰에 참여할 당시 해당 공사의 사업비는 1843억원 규모였다. 삼성물산은 입찰에서 1189억원을 써내 낙찰됐는데 당시 입찰에는 19개 업체가 참여했고 가장 높은 금액을 써낸 곳은 한라(1596억원)였다.

삼성물산은 이 공사의 최종사업자로 선정됐지만 ‘늑장공사’로 목포청으로부터 공사지체 보상금을 요구받을 정도로 공사를 더디게 진행했다. 목포해양청 관계자는 “삼성물산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목포해양청도) 공정 진척상황에 맞춰 지급하기로 했던 공사대금도 깎아서 줬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물산이 해당 공사에 착수하지 못한 것은 입찰에 참가한 영업 관련 부서와 공사를 직접 시공하는 실무부서 간의 책임문제로 내부갈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일단 '묻지마' 식으로 입찰에 참가해 공사를 수주했지만 공사를 진행해야 하는 부서에서 "그 금액으로는 공사가 불가능하다"고 버텼다는 후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유를 정확히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삼성물산에서 해당 공사 관련 인원이 대부분 자리에서 물러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삼성물산은 공사 입찰 1년만인 2014년 연약지반이 발견됐다는 이유로 설계변경을 요구했다. 당초 삼성물산은 600억여원의 공사비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기획재정부와 조달청 등의 심사를 거치고 KDI(한국개발연구원)의 적정성 평가 결과 434억원 수준으로 축소됐다.

삼성물산은 연약지반 개량공사 관련 하도급 비용으로 80억~160억원을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승인 예산이 434억원임을 감안하면 200억~300억원을 차액으로 남긴 셈이다. 이를 본 공사비에 합산하면 입찰 당시 최고가 제시액과 비슷한 수준이 된다.

한편 삼성물산은 2015년 목포청을 상대로 공사대금 관련 소송을 제기했으며 하청업체인 성우지오텍과도 금전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