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허리 통증 치료를 위해 경기도 부천의 한 한의원을 방문했던 30대 여성이 봉침 치료를 받고 쇼크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의사단체(의료계)와 한의사단체(한의계)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서로에 대한 인신공격까지 서슴없이 벌이는 가운데 한의원 내 ‘전문의약품 응급키트’ 도입이 새로운 쟁점으로 부각돼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한의계, 응급전문의약품 구비·사용 예고 파문 확산

대한한의사협회는 지난 9일 성명을 통해 “현행법에는 한의의료기관에서 ‘에피네프린’과 같은 응급약을 구비해 유사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명확한 조항이 없지만 양방 측의 반대로 전문의약품이 포함된 응급키트를 자유롭게 비치하거나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환자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막중한 책무를 완수해 내기 위해 한의학적 근거와 원리에 따라 전문의약품 응급키트 사용에 적극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한의사협회는 응급전문의약품 사용 근거로 해외 사례를 들었다. 미국의 경우 응급구조사가 에피네프린 등 다양한 응급약물을 투여할 수 있고 영국도 에피네프린을 포함해 20~30여종의 약물투여가 가능하다는 것.


한의사협회 관계자는 “한의사가 응급전문의약품을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약물 알레르기 반응 등 긴박한 상황에 어쩔 수 없이 투약하는 응급용으로 구비하겠다는 것이지 보편타당하게 활용하겠다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의의료기관에서 전문의약품 응급키트를 구비해 사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앞서 의료계는 한의의료기관에서 에피네프린·항히스타민·스테로이드 등의 전문의약품 응급약 사용을 안내한 것을 문제 삼아 한의사협회와 주요 관계자를 고발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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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10일 입장자료를 내고 “한의원에 현대의학의 응급전문의약품을 구비하겠다는 주장은 한의원에서 아나필락시스 같은 생명이 위중한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겠다는 것으로 한의사들에게 무면허 불법의료행위를 시키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모든 한의사를 범법자로 만들겠다는 몰염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의사협회는 ▲봉침에 대한 안전성이 검증되기 전까지 한의원 봉침사용 즉각 중지 ▲한의원에서 사용하는 모든 약침을 의약품으로 분류해 철저히 관리 ▲한의원의 모든 한약에 대해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의무 제도화 ▲한약 불법제조의 온상으로 활용되는 원외탕전실 제도 폐기 ▲한의사협회의 의료인단체 제외 등을 정부에 촉구했다.

대한의원협회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대한의원협회 관계자는 “한방이라는 학문의 한계상 알레르기 반응에 대한 사전검사의 개념이 없고 아나필락시스가 발생했을 때 대처할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에 애초에 봉침과 같은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이 있는 치료는 시행하지 않는 게 맞다”며 “한의사협회가 한방학문의 한계를 인정하고 반성하기는커녕 봉침사망사건을 계기로 응급전문의약품을 사용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이가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2015년 경희대 한의대 연구진은 벌에 쏘인 후 아나필락시스가 발생했을 때 북소리가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며 “배운 적도 사용한 적도 없고 투여용량·방법을 모르는 에피네프린·항히스타민제와 같은 현대의학의 의약품을 한의사들이 사용하겠다는 것은 한방이라는 학문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포기가 싫으면 에피네프린 운운하지 말고 경희대 연구진이 개발한 북소리나 울려라”고 맹비난했다.

◆의료계 “한방 한계 인정하고 반성해야”

이처럼 의료계가 한의사의 근본적인 부분까지 건드리자 한의계는 의사 유령수술(대리수술)과 수술실 내 성희롱 사건 등을 거론하며 역공에 나섰다.

한의사협회는 21일 “일부 양의사들의 유령수술과 수술실 내 성희롱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며 “아직도 근절되지 않고 있는 유령수술문제와 수술실 내 각종 성희롱 및 폭력사태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수술실 내 CCTV 설치’에 대한 입법화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또한 한의사협회는 의사도 봉침의 일종인 ‘아피톡신’을 처방·투약하면서 마치 봉침 등 약침에 문제가 있다고 비난하는 것은 국민을 기망하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봉침 쇼크에 대비하기 위해 응급전문의약품을 비치하겠다는 한의계 의도를 비판하는 것은 의료계의 억지라는 것.

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양방도 봉침 시술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 여론을 호도하며 국민의 진료 선택권과 편의성을 심하게 훼손하고 있다”며 “‘모든 의료기관의 응급의약품 의무비치’와 ‘수술실 내 CCTV 설치’의 조속한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