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현대카드 사옥. /사진=현대카드
서울 여의도 현대카드 사옥. /사진=현대카드

‘업계 이단아’ 현대카드가 국내 신용카드시장의 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현대카드는 최근 미국 창고형 할인전문업체 코스트코로부터 10년간의 독점 가맹계약을 따냈다. 내년 5월24일부터 10년 동안 코스트코에선 현금이나 현대카드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 소식에 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운다. 단순히 코스트코의 고객을 현대카드가 가져가는 걸 넘어 마니아에 집중된 현대카드 고객군이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돼서다. 현대카드가 이번엔 어떤 파격적인 카드를 꺼내 들지 시장이 주시하고 있다.


◆‘마니아 고객’ 확보한 현대카드

현대카드는 업계의 이단아로 불린다. 보수적인 금융시장에서 파격을 시도해와서다. 대세로 자리 잡은 세로형 카드플레이트가 대표적인 예다. 현대카드가 지난해 선보인 세로형 카드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최초의 시도였다. 가로형 플레이트 발급을 중단하고 모든 카드를 세로형으로 만드는 곳은 현대카드뿐이다. 슈퍼콘서트 개최, 각종 라이브러리 운영 등 비금융 분야에서도 사업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현대카드는 ‘마니아 고객군’을 형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른 카드사에 비해 현대카드 고객이 고액 연봉자이며 대손 위험도가 낮다는 점은 업계에서 잘 알려져 있다. 현대카드의 특화 상품이 프리미엄 카드인 점도 이를 방증한다. 지난해 초 현대카드가 출시한 연회비 250만원짜리 VVIP카드 ‘더 블랙’보다 높은 연회비 상품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카드사 한 관계자는 “현대카드의 텔레마케팅(TM) 상담원은 무조건 친절하지 않다. 달리 말하면 모든 고객을 떠안지 않겠다는 것이다. 끌고 갈 고객에게 집중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코스트코’ 잡은 현대카드, 판도 바꿀까

마니아 고객군을 형성했다는 건 충성 고객을 다수 확보했다는 의미다. 일정한 시장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고객층을 확대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대카드의 시장점유율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을 보면 3월 현대카드의 체크카드를 제외한 개인과 법인 신용카드의 신용판매(일시금·할부) 및 금융판매(현금서비스·카드론) 누적 이용액은 23조9487억원으로 비씨카드를 제외한 전업계 카드사 7곳 전체(154조9369억원)의 15.46%다. 신용카드시장에서 15~16%의 파이를 가졌다는 얘기다.

최근 5년간 현대카드의 시장점유율을 보면 2013년 15.76%, 2014년 14.75%, 2015년 14.54%, 2016년 14.43%, 2017년 14.99%다. 점유율이 꾸준하지만 정체돼 있다. 또 이 비율은 체크카드 이용액을 제외한 수치여서 체크카드 판매량이 많은 은행계열 카드사 실적까지 더하면 점유율은 더 떨어진다.


◆현대카드, 업계 2위 노린다

‘1국가 1카드사 가맹계약’ 정책으로 유명한 코스트코의 차기 제휴사로 현대카드가 선정된 점은 그래서 더 주목할 만하다. 업계 점유율 순위 변화를 예상해 볼 수 있어서다. 코스트코는 18년간 독점계약을 맺어온 삼성카드 대신 현대카드와 손을 잡았다. 내년 5월24일부터 10년동안 코스트코에선 현금과 현대카드만 이용할 수 있다.

코스트코의 연평균 고객은 약 30만명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카드가 이만큼의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것도 코스트코의 현 제휴사인 삼성카드 고객을 뺏어오게 된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점유율은 곧 ‘제로섬 게임’이다. 파이를 키우려면 타사 점유율을 반드시 낮춰야 하는데 국민 1인당 2장 이상의 신용카드를 소지한 국내 카드시장에선 쉽지 않다”며 “코스트코와 같은 초대형가맹점과 독점 계약을 맺는 건 점유율을 키우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현대카드는 체크카드를 제외한 신용카드시장에서 업계 3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현재 3위인 KB국민카드(15.62%)와의 점유율 차이는 0.16%포인트다. 업계 2위 삼성카드(19.43%)는 점유율 축소가 불가피해 2·3위 간 격차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코스트코 서울 양평점. /사진=뉴스1
코스트코 서울 양평점. /사진=뉴스1

◆업계가 주시하는 건 ‘고객군 확대’

물론 점유율 상승이 곧 실적 확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맹점수수료 수익이 증가해도 비용이 많이 들면 오히려 이익이 감소할 수도 있다. 특히 18년 동안 국내에서 영업한 코스트코가 고객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제휴사를 바꾼 건 현대카드가 코스트코에 파격적인 혜택을 제안해서가 아니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카드는 코스트코 제휴사로 선정된 주요 요인으로 PLCC(상업자 표시 신용카드) 전문조직 운영을 꼽았다. 제휴사 브랜드만 노출돼 PB상품이라고도 불리는 PLCC는 고객 서비스 운영 전체를 제휴사(코스트코)가 맡고 카드사(현대카드)는 카드 제작, 청구, 입금 등 실무 운영만 담당해 일반 제휴카드를 발급할 때보다 일정 수익을 포기해야 한다. 현대카드의 PLCC 전문조직은 실장급으로 운영될 것으로 보여 인력 비용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결국 현대카드는 단기이익을 기대하기보단 손실을 감수하고 코스트코와 계약을 맺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코스트코 계약 입찰에 뛰어든 곳은 현대카드와 현 제휴사인 삼성카드를 포함해 업계 1위 신한카드, IBK기업은행 등 4곳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코스트코와의 가맹계약에서 이익을 담보할 수 있다면 나머지 카드사도 모두 뛰어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코스트코-현대카드 계약 건을 업계가 주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니아를 중심으로 고객층을 꾸려온 현대카드의 고객 확보전략에 변화가 예상돼서다. 코스트코와의 계약으로 현대카드는 ‘특정 계층용’에서 ‘범용성 확대’라는 이미지를 심을 수 있다. 코스트코 계약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마니아를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프리미엄 서비스 운영에 능한 현대카드는 코스트코 고객용 프리미엄 상품을 출시할 가능성이 크다.

현대카드가 코스트코에서 발생하는 수수료수익과 이외의 신용판매 및 금융판매 수익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은 업계의 관심사 밖이다. 이는 타사의 내부 사정일 뿐이다. 그러나 고객군이 확대되는 건 자사 고객을 뺏길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단아 현대카드가 준비 중인 또 다른 파격 카드에 업계가 긴장하는 이유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56호(2018년 9월5~1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