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의 한 슈퍼마켓 내 화장지 매대가 텅 비어있다. /사진=로이터
지난 15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의 한 슈퍼마켓 내 화장지 매대가 텅 비어있다. /사진=로이터

코로나19가 전세계를 덮친 가운데 미국과 일부 유럽 국가에서 사재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에서 생수와 라면 등 식료품 위주로 대량구매 현상이 나타난 것과 달리 해외에선 ‘화장지 사재기’가 한창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마스크 원자재로 휴지 만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5일(현지시간) “(코로나19 확산 이후) 미국 시민이 보통 사는 양의 3~5배의 물품을 구매하고 있다”며 “진정하라”고 요청했다. 이어 “누구도 생필품을 비축할 필요는 없다”며 “유통업체는 계속 열려있을 것이고 물품 재고를 유지하기 위해 24시간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민 달래기에 나선 건 미국인들 사이에서 생필품 사재기가 극심해지고 있어서다. 현지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아침 일찍부터 대형마트에 몰려가 생필품을 사재기하는 시민들과 상품 매대가 텅 빈 모습을 쉽게 포착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인들은 화장지 사재기에 열을 올린다. 그 결과 미국 50개 주 가운데 41개 주에서 화장지 가격이 대폭 인상되는 사례도 발생했다. AP통신에 따르면 미국에서 두루마리 화장지 한개당 10달러(1만1000원)에 판매하는 지역이 나타나기도 했다. 

지난달 초 아시아 지역에서 시작된 화장지 사재기는 최근 미국과 호주, 유럽 등지로 번졌다. 이처럼 유독 화장지 수요가 급증한 것은 일본에서 시작된 가짜뉴스 영향이 크다. 마스크 원자재가 화장지와 같은데 중국에서 공급을 중단해 더 이상 구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화장지의 생산 원료는 펄프, 마스크는 폴리프로필렌·폴리에스터 등 합성섬유로 만든다. 또한 중국 본토 공급망에 문제가 생겼다는 내용도 틀렸다. 일본은 본토에 유통되는 화장지의 98%를 자국에서 생산하고 있고, 미국과 호주도 80% 이상을 자체 생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식료품과 마찬가지로 화장지를 비축해두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외출이 감소한 상황에서 미리 화장지를 대량 구매해 대비한다는 분석이다.


매리 알보드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휴지가 있어야 할 장소에 있으면 안심이 된다. 우리는 먹고 자고 배변하는데 이는 우리 자신을 돌보는 기본적 욕구이기 때문”이라며 “인간이 사회적으로 존재할 만한, 냄새 나지 않게 깨끗한 상태를 지키는 것에 관한 욕구”라고 언급했다. 

지난 20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위생용품 코너에 휴지가 가득 쌓여있다. /사진=김경은 기자
지난 20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위생용품 코너에 휴지가 가득 쌓여있다. /사진=김경은 기자


국내엔 사재기 없나


전 세계적으로 화장지 사재기 바람이 불고 있지만 국내 상황은 다르다. 국내 화장지 생산업체인 유한킴벌리와 깨끗한나라 측은 “국내 화장지 수급은 원활하며 입고 지연도 없다”고 밝혔다.

생수와 라면 등 식료품의 경우 대량 구매 현상을 보이고 있지만 사재기로 판단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전체 판매량이 급증한 데 비해 고객 1인당 평균 구매 금액은 크게 늘진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라면, 생수 등 생필품 재고가 많이 빠지긴 했지만 객단가가 뛰지 않았다”며 “한 사람이 대량 구매하는 현상은 없다. 사재기라기 보단 구매량이 평소보다 많아지고 신규 고객이 늘어난 정도”라고 해석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점포 매대가 비는 경우는 없다”며 “대구경북 지역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식품업계에서도 공장 생산량이 급증했으나 공급 부족을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농심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전과 비교할 때 최근 일평균 출고량이 라면은 30%, 생수는 15% 가량 증가했다. 다만 아직까지 수요가 공급을 넘어선 상태는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농심 관계자는 “충분히 대응 가능한 수준이며 사재기 현상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