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탄소배출권 거래로 번 돈 어디로?
[머니S리포트-탄소배출권에 숨 못 쉬는 산업계②] 3차 계획 도입 코앞… 활용처 '불투명'
권가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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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배출을 줄여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탄소배출권 거래제 3기가 내년부터 시작된다. 2015년부터 올해까지 진행된 1기와 2기엔 탄소배출권 가격 급등과 불안정한 수급으로 기업이 숨막혀 했다. 내년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친환경 정책까지 얽혀있어 기업에게 배출권은 생존의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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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대 석탄화력발전소인폴란드 벨차우토우 발전소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사진=로이터 |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환경부가 2기(2018~2020년) 탄소배출권 거래제 기간 동안 기업으로부터 거둬들일 것으로 예측되는 수익은 모두 5000억원이다. 정부가 한국거래소(KRX)에 유상할당분을 내놓으면 배출권이 부족한 유상할당 대상 기업들이 이를 구매했을 때 수익이 발생한다. 이 수익은 기업이 유상할당분을 구매할 때마다 국고로 들어온다.
현행 배출권거래제법 제35조(금융상·세제상의 지원 등)에 따르면 정부는 배출권거래제 수입을 기술 개발 지원에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배출권 거래제가 6년째 시행되고 있지만 환경부는 아직까지 해당 수입의 활용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국내 주력 수출 품목인 철강과 석유·일반기계 제품의 회복은 내년 하반기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여기에 내년 배출권 거래제 3차 계획이 시작되면 당장 돈을 지불하고 구매해야 하는 배출권 비중이 늘어나는 데다 감축률도 강화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기업 지원 환경을 구축하지 않으면 기업을 해외로 유출시키는 ‘탄소 누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 ‘투명성’ 불신 여전
배출권 거래가 가장 활발한 유럽연합(EU)은 1만4000여개의 발전시설 및 산업공장 탄소배출을 제한하고 있다. 기업의 지원도 활발하다. 독일은 배출권 거래제를 통해 얻은 수익을 국가기후대응계획과 국제기후대응계획 펀드로 활용하고 있다. 아일랜드는 환경청 재원과 배출권 거래제 운영비용으로 쓴다. 헝가리의 경우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효율 개선사업에 투입하고 있고 체코는 공공부문 건물 에너지효율 증대에 재투자하고 있다. 탄소배출량 2위로 관련 수익을 재생 에너지나 저탄소 기술에 투입하는 미국에선 캘리포니아 등 9개 주 정부가 별도로 ‘지역온실가스구상’을 설립해 탄소배출 거래제를 시행한다.
반면 한국은 어느덧 3차 계획 도입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수익의 활용처는 정해지지 않고 있다. 환경부 기후경제과 관계자는 “거래제 수익 활용 방식은 기획재정부와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환경부의 투명성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거래소는 배출권 거래 정보를 공유하는 배출권시장협의체를 구성했다. 공공발전사와 포스코, 현대제철 등 100여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환경부는 기업이 요청사항을 배출권시장협의회를 통해 전달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문제는 시멘트업종을 비롯한 중소 규모의 기업은 연회비 등 각종 부담으로 협의체에 합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환경부는 배출권 거래제 시작 당시 투명성을 앞세웠지만 협의체를 명목으로 연회비를 받는 데 이어 정보 비대칭을 야기한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협의체에서 공유된 정보나 회의 내용이 참여하지 않은 다른 기업에게 전혀 전달이 안 되는 등 그들만의 리그를 조성하고 있다”며 “불투명한 운영은 가격 급등과 시장 유동성 악화를 야기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기업 재투자·예비물량 할당 속도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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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국가 탄소배출권 경매수입 활용 내역. /그래픽=김은옥 기자 |
정부가 배출권 경매수익으로 대기업 투자를 유인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확한 수치 등은 환경부가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현재 중소기업 위주의 일부 투자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을 통해선 의미 있는 수치의 감축을 이뤄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결국 국가적 차원의 탄소배출 감축을 위해선 배출량이 큰 대기업 투자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게 업계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국은 경쟁국보다 가파른 속도로 배출 규제를 하고 있다. 중국은 내년부터 국가 단위의 탄소배출 거래제를 시행할 예정이며 이 중 발전부문만 우선 시행키로 했다. 미국은 일부 지역이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고 있고 100% 무상할당이다. 한국은 에너지·온실가스 관련 효율이 높은 기재를 갖고 있는 국가인 만큼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정부가 기업과 함께 기술·장비 개발 및 투자를 연구하는 등 제도 설계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를 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해외의 친환경 발전소 설립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온실가스 배출 감축량을 인정받는 일본을 참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임재규 에너지경제연구원 기후변화연구팀 선임연구원은 “기업의 감축 투자를 촉진하려면 적정 가격이 형성돼야 하고 이는 결국 정부가 목표한 탄소 감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 안정화를 위한 예비물량도 풀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거래제 기간 동안 설비를 신·증설한 업체에 추가 배출권을 할당하기 위해 마련한 잔여 물량을 기존 할당업체에 재분배해 달라는 것이 골자다.
환경부 주도가 아닌 환경부-기재부-산업부 간 협업을 통해 제도를 이끌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환경부는 ‘온실가스 배출 규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총괄기능을 국무조정실로 옮기거나 경제 및 산업부문 전문 부처 간 업무 협조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유상할당 비중도 더 이상 늘려선 안 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유상할당 비중을 늘리면 기업이 공장을 해외로 옮기는 ‘탄소 누출’ 발생 가능성이 가장 걱정”이라며 “탄소 감축은 국제사회와의 약속인 만큼 제도의 일관성은 유지하되 앞으로 제2차 계획 수준의 유상할당 비중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내년 선물시장 도입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시각이 나온다. 김태선 나무ENR 대표는 “기관 투자자가 먼저 참여하고 일반 투자자의 경우 18개월 전체 기간에 참여하는 것보다 12개월로 한정해야 한다”며 “선물을 바로 도입하면 투기적인 매수세가 강해지며 배출권 가격 혼란이 커지게 된다. 이는 정부의 개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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