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누구 위한 셀프 계산대인가"… 고객도 캐셔도 힘들다
서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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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계산하라고 만든 기계 맞나요?"
북적거리는 마트 매장 안에서 인파가 가장 많이 몰린 장소는 계산대다. 따라서 계산대 앞은 각종 불만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이다.
현대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우리 사회에는 '무인화' 열풍이 불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많아진 데다 무인점포의 편의성이 관심사로 등극하면서다. 특히 최저임금 등이 갈수록 높아져 인건비 부담을 느낀 유통업체들은 앞으로 셀프 계산대를 더욱 늘릴 것으로 전망된다.
모든 인간의 창작물은 모순을 갖는다. 셀프 계산대도 마찬가지다. '빠른 계산'과 '편의성'을 장점으로 내세운 셀프 계산대는 한편으론 두려움의 대상으로 등극했다. 낯선 기계와 작동법에 소비자는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이용하더라도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난관을 겪는다. 오히려 '늦은 계산'과 '불편성'을 느낀 것이다. 셀프 계산대는 고객뿐만 아니라 캐셔에게도 공포의 대상이다. 언제든 실직할 수 있다는 위압감을 심어주기 때문.
머니S가 셀프 계산대를 향한 소비자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지난 22~24일 대형마트와 음식점, 카페 등 무인화 매장을 방문했다.
일반 계산대 vs 셀프 계산대… 고객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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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고양시에 위치한 한 마트는 총 6대의 계산대를 보유했다. 이 가운데 일반 계산대는 단 1대, 나머지 4대는 셀프 계산대가 자리했다. 일반 계산대가 아닌 셀프 계산대 앞에서 대기 중인 캐셔들의 모습도 보였다. 셀프 계산대 이용자들이 "왜 화면이 안 넘어가나" "어떻게 하라는 거야" "왜 이리 불편해" 등 불평의 목소리를 높이면 캐셔들은 이들에게 도움을 선사한다.
셀프 계산대 앞에서 불만을 토로하던 A씨(여·50)는 "딸 없이 혼자 시도해봤는데 하나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셀프 계산대가 증가했지만 다들 일반 계산대로 몰린다"며 "셀프 계산대 앞은 텅텅 비었고 일반 계산대 앞은 줄이 길다. 셀프 계산대가 증가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긴 줄에도 굳건히 일반 계산대 앞을 지킨 B씨(여·57)는 "줄이 길어도 기다리는 게 더 빠르다"며 "셀프 계산대로 가면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더 오래 걸린다"고 설명했다. 이어 "낮에 마트에 오면 비교적 사람이 적어서 빨리 계산하고 나갈 수 있다"며 '웃픈'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장점보다 단점 더 많아"… 셀프 계산대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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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계산대를 이용하는 소비자의 다수가 장점보다 단점을 나열하는 상황이다. 이들이 공통으로 지적한 셀프 계산대의 단점은 사용하기 어렵고 주변의 눈치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한 소비자는 "계산은 고객이 받을 서비스 아니냐"라며 "내 돈을 주고 서비스를 이용하러 왔지만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고령층의 소외' 문제도 등장했다. 셀프 계산대 앞에서 머뭇거리던 C씨(남·63)는 "어느 메뉴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 몰라서 힘들다. 영어만 가득한 기계도 종종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연령대별로 서비스의 유무가 나뉘는 것 같다"며 "젊은 층은 처음 보는 기계도 몇 번 눌러보면 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만 우리는 기계 앞에 한참 서 있어도 도움을 주는 이가 없다. 차라리 매장을 안 가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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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문제도 발생했다. 마트의 경우 '번거로움'이다. 평소 음주를 즐긴다는 D씨(여·38)는 "셀프 계산대를 이용해도 술을 구매하면 직원을 호출해야 한다"고 전했다. 사실인지 확인해보기 위해 기자가 직접 주류를 구매했다. 바코드를 찍고 '결제하기' 버튼을 누르자 '직원 호출' '관리자 인증'이라는 창이 떴다. 셀프 계산대를 이용해도 주변에 직원이 없어 기다리거나 직접 직원을 찾아야 하는 불편이 존재하는 셈이다.
카페를 이용하는 소비자는 '직원의 불친절'을 지적한다. 서울 성동구의 한 카페를 이용한 E씨(여·22)는 "셀프 계산대에 사람이 너무 많아 텅 빈 카운터에 주문을 요청했더니 '셀프 계산대를 이용하라'며 단칼에 거절하더라"라며 "카운터의 용도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직원이 너무 불친절하다"고 꼬집었다.
"고객 만족" vs "고객 불만"… 셀프 계산대, 정의로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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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업들은 앞으로 셀프 계산대를 더 늘릴 계획이다. D마트 관계자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며 "앞으로 고객의 만족을 위해 셀프 계산대를 더 적극 도입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캐셔를 다른 업무에 배치할 수 있으니 전체적인 마트 운영도 수월해졌다"며 "인건비를 줄여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캐셔들은 "인건비만 줄일 뿐 전체적인 마트 운영 비용 감소 효과가 없다"고 반박했다. 15년 동안 캐셔로 근무한 강모씨(여·54)는 "대부분의 캐셔는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50대"라며 "갑작스레 판매직으로 발령 내는 것은 퇴사하라는 암묵적인 압박"이라고 반발했다. 이어 "셀프 계산대 이용이 서툰 고객들은 우리에게 분풀이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셀프 계산대가 증가하는 만큼 캐셔는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다. 이에 캐셔들은 '생존권'을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캐셔 등으로 구성된 마트 노조는 "캐셔도 정년 퇴직자가 나오지만 그 빈자리를 사람이 아닌 기계(셀프 계산대)가 메우면서 신규 채용도 적어졌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일반 계산대와 셀프 계산대 사이에 캐셔가 존재하는 마트. 셀프 계산대를 이용하는 고객이 캐셔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캐셔의 업무만 번거로워졌다. 셀프 계산대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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