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가을이 다가오면서 등산객이 더욱 늘어난 가운데 산행을 즐기는 젊은층이 유독 많아졌다. 사진은 지난 10일 경기 고양 덕양구에 위치한 북한산 백운대 정상에 오르기 전 경치를 구경 중인 청년 등산객들. /사진=박정경 기자
선선한 가을이 다가오면서 등산객이 더욱 늘어난 가운데 산행을 즐기는 젊은층이 유독 많아졌다. 사진은 지난 10일 경기 고양 덕양구에 위치한 북한산 백운대 정상에 오르기 전 경치를 구경 중인 청년 등산객들. /사진=박정경 기자


'단풍의 계절' 가을이 다가왔다. 도심 거리를 오가는 시민들도 겉옷을 걸치기 시작했다. 비단 도심뿐만이 아니다. 산을 찾는 등산족 역시 겉옷인 '등산용 바람막이'를 꺼내 입으며 가을맞이에 한창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따르면 올들어 서울 근교 산(청계산, 인왕산, 북한산 등)을 찾는 등산객 수가 크게 늘었다. 특히 서울 북부와 경기 고양의 경계에 있는 북한산은 추석 연휴가 포함된 지난달 약 57만명이 찾았다. 올들어 500만명이 넘는 인원이 북한산을 올랐고 무더운 여름이 오기 전인 지난 5월엔 약 74만명이 다녀갔다.

등산객이 늘면서 저변도 확산됐다. 그동안 중장년층의 전유물처럼 느껴졌던 등산을 즐기는 젊은층이 증가한 것. 실제로 젊은층 사이에선 '등산스타그램'(등산+인스타그램) '등린이'(등산+어린이) 등 인스타그램 해시태그가 총 200만개를 웃돌 정도로 등산 열풍이 불고 있다.


이른바 'MZ세대(1981~1995년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6~2010년 출생한 Z세대)의 놀이터'라는 별칭까지 등장했다. 이에 머니S가 실제로 'MZ세대'가 등산을 많이 하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서울 근교 북한산 백운대를 찾았다.

국내 산이 'MZ세대 놀이터'라고?… "쉽게 봐선 안돼"

지난 10일 기자가 방문한 서울 근교 북한산 백운대에는 청년 등산객이 많았다. 사진은 이날 북한산 백운대 정상에서 하산하는 길에 촬영한 모습. /사진=박정경 기자
지난 10일 기자가 방문한 서울 근교 북한산 백운대에는 청년 등산객이 많았다. 사진은 이날 북한산 백운대 정상에서 하산하는 길에 촬영한 모습. /사진=박정경 기자


기자는 지난 10일 오전 7시30분 등산을 시작해 1시간가량 북한산을 올랐다. 그 과정에서 많은 청년 등산객과 마주쳤다.

기자가 만난 청년 등산객 대부분은 이날이 한글날(지난 9일)의 대체공휴일이어서 산을 찾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자가 만난 청년 등산객은 일반인이 아닌 '산악 마니아'가 많았다.


고등학교 동창생 3명과 함께 북한산을 오른 김모씨(여·29)는 "(저 말고) 친구들은 등산이 오랜만이거나 처음이어서 힘들어한다"며 "저는 산을 타기 시작한 지 5년째인데 친구들에게 등산을 알려줄 겸 같이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생각보다 애들 체력이 꽝이다"며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쉬운 산을 추천해줄 것을 그랬다"고 안타까워했다. 김씨의 친구 장모씨(남·29)도 "군대 시절과 달리 지금 나는 이 산을 오를 체력이 아니다"며 "정말 이 악물고 올랐다"고 등산 소감을 밝혔다.


울산에 거주 중이지만 일이 있어 서울을 방문한 최태수씨(남·39)는 "원래 오늘 날씨가 흐려서 등산을 안 하려고 했다"며 "그런데 비가 올 기미가 안 보여 즉흥적으로 산에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취미로 등산한 지 어느덧 약 10년째"라고 덧붙였다.

이에 기자가 '북한산 백운대가 초보자 코스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 그런가'라고 묻자 최씨는 "북한산은 등산객의 사고가 꽤 많은 편이라고 들었다"고 답했다. 그는 "오늘 올라보니 초행길이거나 등산 초보자가 오르기엔 조금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가을철인 지난달과 10월 사이 산악사고 출동 건수가 1122건으로 3년 동안 전체 출동 건수(약 4900건)의 23%를 차지했다. 산악사고 유형별로는 '실족과 추락 등 사고에 따른 부상'이 1544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 가운데 1189건이 북한산에서 접수됐다. 다른 서울 근교 산 중에서는 관악산 711건, 도봉산 466건 등으로 나타났다.

'MZ' 즐비할 줄 알았더니… 연령별 다양한 등산의 '목적'

청년 외에도 어린이·청소년층도 산을 찾기 시작하면서 국내 산에는 다양한 연령층이 등산을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지난 10일 북한산 백운대를 오르는 청년 등산객 일행. /사진=박정경 기자
청년 외에도 어린이·청소년층도 산을 찾기 시작하면서 국내 산에는 다양한 연령층이 등산을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지난 10일 북한산 백운대를 오르는 청년 등산객 일행. /사진=박정경 기자


이날 방문한 북한산에는 '미라클 모닝'(성공적인 기상)을 위해 산을 찾은 청년도 있었다. 또 오래전부터 취미를 이어온 중장년층 등산족이 상당히 많았고 부모를 따라 산을 오른 어린이나 청소년도 만났다. 그만큼 등산객 연령층이 다양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 종로5가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한모씨(남·26)는 "저는 주중에 모닝 루틴으로 러닝이나 등산을 한다"며 "이렇게 살아온 지 어느덧 4년째"라고 밝혔다. 그는 "주중 아침마다 미라클 모닝을 챙기는 이유는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서"라며 "대학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어 (등산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씨는 기자가 '다른 스포츠도 하나'라고 묻자 "헬스나 요가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며 "이런 건 비용이 들어서 러닝과 등산을 취미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서울에서 개인택시를 운행하는 박모씨(남·62)는 "연휴에는 꼭 산을 찾는 편"이라며 "이 근방에서 택시를 운행하는데 북한산을 자주 찾는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에는 도봉산에 올랐다"며 "시간과 여유가 있으면 꼭 등산을 하는데 연휴가 길 땐 지방에 있는 산도 오른다"고 덧붙였다.

부모를 따라 산을 오른 김모군(남·8)은 북한산 백운대 정상에 거의 다 오른 지점에서 기자가 힘들지 않은지 묻자 "힘들 땐 아빠가 안아서 올라가 준다"며 지친 기색 없이 산을 올랐다. 아빠 김모씨(남·38)는 "공휴일과 주말 등 시간이 날 때 서울 인근 산을 찾는 편"이라며 "가족과 함께 오르면 홀가분하고 개운한 것이 배가 된다"고 흐뭇해했다.

젊은층에게 등산이란?… "옷 사다보니" "사진 예쁘게 나와"

청년 등산객이 증가한 요인으로 등산룩의 유행과 SNS 파급력이 꼽힌다. 사진은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종로5가역 인근 한 아웃도어 매장. /사진=박정경 기자
청년 등산객이 증가한 요인으로 등산룩의 유행과 SNS 파급력이 꼽힌다. 사진은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종로5가역 인근 한 아웃도어 매장. /사진=박정경 기자


그렇다면 청년층이 부쩍 산을 찾기 시작한 원인은 무엇일까.

평소 유행과 패션에 관심이 많다고 밝힌 김모씨(남·31)는 "아웃도어 전문 브랜드인 A사의 옷을 지난해부터 사입기 시작했다"며 "요즘 이 브랜드가 내 또래에서 유행하길래 구매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해당 브랜드 바람막이가 대부분 30만~40만원이다"며 "가격대가 높아서 알아보니 등산복이더라. 그래서 산에도 오르게 됐다"고 밝혔다.

김씨는 "취미로 등산을 하니 다른 용품도 많이 구매한다"며 "최근엔 해당 브랜드 등산화도 구매했다"고 전했다. 이어 "다양한 장비를 구매하고 나니 등산을 오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웃어 보였다.

이처럼 트렌드를 쫓는 청년층은 최근 유행을 타기 시작한 이른바 '고프코어' 룩( 견과류를 뜻하는 '고프'와 자연스러운 멋을 추구하는 '놈코어'의 합성어)을 구매하면서 등산에도 취미를 붙인 셈이다.

젊은층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업로드하기 위해 등산을 다니기도 한다. 사진은 왼쪽부터 인스타그램 '등산' '아크테릭스' '고프코어' 등 해시태그 현황. /사진=박정경 기자, 인스타그램 캡처
젊은층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업로드하기 위해 등산을 다니기도 한다. 사진은 왼쪽부터 인스타그램 '등산' '아크테릭스' '고프코어' 등 해시태그 현황. /사진=박정경 기자, 인스타그램 캡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파급력도 젊은층을 산으로 이끌었다.

평소 SNS 활동을 즐기는 안모씨(남·26)는 "지난 2020년부터 산 정상에서 사진 찍기에 맛들려 등산을 시작했다"며 "최근에는 SNS 게시물에 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업로드하기 위해 산을 오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행을 쫓다보니 건강도 챙기고 취미도 생긴 꼴"이라며 "이 때문에 한 달에 두 번가량 등산을 한다"고 뿌듯해 했다.

10월13일 기준 인스타그램에서 '등산' 해시태그는 약 500만개에 달하며 게시물은 대부분 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와 함께 '고프코어' 해시태그가 2만여개, 브랜드 A사 해시태그는 8만여개로 집계됐다. 이밖에도 수도권 내 국내 산들도 해시태그별로 1만여개의 게시물이 검색될 정도로 인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