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의 연대로 DB하이텍이 물적분할을 전격 철회했다. 사진은 지난 9월22일 DB하이텍 소액주주 41명이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 /사진=DB하이텍 주주연대
소액주주의 연대로 DB하이텍이 물적분할을 전격 철회했다. 사진은 지난 9월22일 DB하이텍 소액주주 41명이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 /사진=DB하이텍 주주연대


▶기사 게재 순서
①"대주주만 살찌우는 '물적분할' 반대"… 행동나선 개미들
②'물적분할' 막힌 기업들… 자금조달 어떻게?
③'물적분할'만 아니면 괜찮나?



기업의 물적분할을 반대하는 동학 개미들의 움직임이 거세다. 이들은 특정 기업과 상관없이 주주연합을 구성, 각 기업의 대주주들만 살찌우는 물적분할 반대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알짜 사업부를 물적분할과 함께 재상장하려던 기업들은 이들 주주의 반대에 부딪혀 계획을 철회했다.

개별기업 소액주주들이 회사의 횡포를 저지했다는 소식에 분할 상장을 예정했던 기업의 개미들도 주주연합에 합류하며 세를 불리고 있다. 주주연합은 물적분할을 철회한 회사에 기존 주주들이 지분율대로 신설 법인의 주식을 나눠 갖는 인적분할을 제안하고 정치권엔 소액주주 보호 방안 마련을 주문하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물적분할은 모기업이 신설회사 지분 100%를 소유하는 방식이다. 상장 시 기존 주주들은 단 한 주의 주식도 받을 수 없어 주주가치 훼손 가능성이 크다. 소액 주주들이 물적분할을 반대하는 이유다.

"더 이상 못 참아"… 연대하는 동학 개미들



소액주주들의 적극적인 저지 활동으로 DB하이텍이 반도체 설계(팹리스)사업 분사 검토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DB하이텍은 지난 9월26일 공시를 통해 "사업부 분야별 전문성 강화 및 경쟁력 제고를 위해 설계사업 분사 검토를 포함한 다양한 전략 방안을 고려했으나 현재 진행 중인 분사 작업 검토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풍산도 방산 부문 물적분할 검토를 철회했다. 풍산은 지난 10월4일 "이번 분할에 대한 반대 주주 및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신중히 검토한 결과 분할절차 중단 및 분할계획서를 철회하기로 결의했다"고 공시했다.


풍산의 공시처럼 이들 기업의 물적분할 철회 배경엔 일반 주주가 있다. DB하이텍과 풍산의 소액주주는 연합을 구성, 단체행동에 나섰다. 개미들이 힘을 모아 물적분할을 저지했다는 소식에 SK이노베이션, 후성, 카카오게임즈, NHN, 현대모비스 주주들도 '물적분할 반대 주주연합'에 가입했다.

SK이노베이션은 SK온을, 한국조선해양은 현대삼호중공업을, NHN은 NHN클라우드를 각각 상장할 계획이다. 카카오게임즈는 자회사 라이온하트 스튜디오를 상장하려다 주주들의 거센 반발에 철회했다. 후성은 해외사업 부문을 담당하는 후성글로벌 상장을 검토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현물출자 방식으로 모듈과 부품을 생산하는 자회사를 신설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자회사 쪼개기 상장에 뿔난 개미들



DB하이텍의 주주들은 지난 7월 회사의 물적분할 소식에 소액주주연대 온라인 카페를 개설하고 지분을 모으기 시작했다. 결집 3주 만에 2%가 넘는 지분을 모은 주주연대는 대면 모임을 통해 주주대표와 운영진을 선발하고 비영리법인을 설립했다.

지난 8월엔 회사를 상대로 주주명부 열람과 등사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사측은 주주명부 전자문서 제출 요청을 거부하고 방문 열람만 가능하다고 답했다. 이에 반발한 주주연대가 주주명부 열람과 등사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히자 DB하이텍은 책자로 만든 주주명부를 우편 발송했다.

문제는 DB하이텍이 보낸 책자 형식이 주주연대가 요청한 내용과 달랐다는 점이다. 책자엔 11만명의 주주 이름이 가나다순이 아닌 무작위로 배열돼 있어 명부의 진위 확인을 할 수 없었다. 명단 작성 기준도 주주연대가 요청한 7월 말이 아닌 6월 말 기준으로 구성됐다. 이에 주주연대는 책자 수령 직후 배달 증명으로 서류를 반송하고 주주명부 열람과 등사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9월엔 풍산과 한국조선해양 주주들이 합류해 첫 대면 모임을 가졌다. 이후 국회 정무위원회에 방문해 김준기 DB그룹 창업회장과 최창식 DB하이텍 대표이사, 류진 풍산그룹 회장과 박우동 풍산 대표이사 등을 국감 증인으로 소환할 것을 요청했다.

주주연대의 요구에 정치권도 화답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용우(더불어민주당·경기 고양시정) 의원은 류진 풍산그룹 회장을 국감 증인으로 신청했다. DB하이텍은 물적분할을 철회하겠다고 밝혀 소환을 면했다. 주주연대는 풍산에 류 회장의 국감 출석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내며 압박했다. 결국 풍산도 물적분할을 철회하겠다고 밝히면서 소액주주의 승리로 끝났다.

'물적분할' 막은 개미들… 앞으로 계획은

잇단 물적분할 철회 소식에 참여하는 소액주주 기업이 늘면서 주주연대는 종목을 통합, '물적분할 반대 주주연합'을 출범했다. 주주연합의 리더는 DB하이텍 주주연대 대표가 맡고 각 종목 대표가 함께 운영하는 방식이다. 물적분할을 막아낸 주주연합의 다음 목표는 '인적분할'이다. 주주연합은 최근 DB하이텍에 '인적분할 제안 통보'라는 제목의 내용증명을 보냈다. 주주연합 대표는 한국조선해양 관계자를 만나 물적분할한 자회사를 재합병하고 인적분할할 것을 제안했다. 나머지 회사들에도 인적분할을 요구할 방침이다.

주주연합은 국민연금공단의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하기 위해 복지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이메일 발송 및 전화 돌리기 운동을 벌였다. 복지위 소속 한정애 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 강서구병)의 온라인 의원실 방명록 응원 댓글 달기 운동도 진행했다. 주주연합은 추후 소액주주연대 행동 시 국민연금공단에 협조공문을 발송할 계획이다.

주주연합은 주식시장 제도개혁과 소액주주 보호법 제정도 추진한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와 힘을 모아 주식시장 제도개혁을 위한 공매도 금지, 금융투자 소득세 유예를 요청할 계획이다. 소액주주 보호에 찬성하는 전 현직 의원들과 면담하며 상법의 이사 의무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추가하는 등 소액주주 보호법안을 입법화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물적분할 반대 주주연합 관계자는 "처음엔 DB하이텍의 물적분할을 막기 위해 시작했지만 종목이 늘어나면서 인수한 자회사를 상장하려는 카카오게임즈, 현물출자 방식을 선택한 현대모비스 등 다양한 경우가 발생했다"며 "그럼에도 본질은 모회사와 자회사, 손자회사, 증손자회사 등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에서 두 개 이상의 회사가 상장하면서 주주가치가 훼손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앞으로 중복상장을 반대하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고 더 많은 종목 주주들과 연대해 회사가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