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규 KB금융 회장./사진=임한별 기자
윤종규 KB금융 회장./사진=임한별 기자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9년 동안 저는 노란색 이외의 넥타이를 매본 적이 없습니다. KB를 상징하는 노란색 넥타이를 매고 일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 너무 감사했고 또 행복했습니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25일 서울 여의도 KB금융 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은 소회를 전했다. 윤 회장은 오는 11월20일 9년간의 임기를 끝낸다.

윤종규 회장은 "백팩을 잘 메고 다니다 보니 주변에서 백팩을 맨 회장이라는 별명을 붙여줬지만 많은 분들이 제 진짜 트레이드마크를 노란 넥타이라고 생각한다"며 "제 친구는 가끔 '네 몸에는 빨간 피가 아니고 노란 피가 흐르는 거 아니냐'라고 농담하는데 임기가 두 달여밖에 남지 않았지만 양종희 내정자가 가벼운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남은 기간 인수인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설명했다.


윤종규 회장은 2014년 11월 취임한 이후 치밀한 M&A(인수합병)로 2008년 이후 9년 동안 신한금융에 밀렸던 KB금융을 명실상부한 리딩금융그룹으로 탈바꿈했다. KB금융은 2017년 사상 처음으로 3조원대 순이익을 낸 데 이어 신한금융을 제치고 리딩금융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윤 회장은 KB가 재임 기간 중 리딩금융그룹이 된 것이 가장 보람된 일이라고 꼽았다.

윤 회장은 취임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는 "회장으로 취임했을 당시 축하보다 오히려 걱정을 해주셨던 시기였다"며 "취임 후 첫 3년은 직원들의 자긍심을 회복하고 고객들의 신뢰를 우선해 리딩뱅크로 돌아가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역대 어떤 은행도 리딩뱅크에서 내려온 이후 다시 1등으로 올라간 사례가 없었다며 KB국민은행의 1등을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고 돌아봤다.


두 번째 임기 3년은 KB금융을 부동의 리딩금융그룹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윤 회장은 "LIG손해보험과 현대증권을 인수해 두 회사를 완전 자회사로 편입했고 프르덴셜생명을 추가로 인수해 비은행 부문을 획기적으로 강화했다"며 "이러한 노력들로 인해 비은행 부문은 은행과 함께 KB의 강력한 양 날개 성장 엔진이 돼 더 빠르고 힘차게 나아갈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임기 3년은 지배구조, 즉 흔들리지 않도록 탄탄한 경영 승계 절차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윤 회장은 "이를 위해 이사회와 긴밀히 소통했고 체계적인 CEO 경영 승계 프로그램을 KB금융에 정착시키고자 했다"며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모범적인 회장 후보 추천 과정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윤 회장은 "저희가 리딩뱅크, 리딩금융그룹이라고 얘기하지만 세계 순위로 보면 60위권에 머물고 있는데 이 부분은 굉장히 아쉽다"며 "한국 1위 금융그룹이라고 하면 세계 상위권에 있어야 할 텐데 상당한 자괴감을 느껴 앞으로 양종희 내정자가 한 단계 진보하리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윤 회장은 '한국 금융의 삼성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가장 먼저 쓴 금융인이기도 하다. 그는 "20년이 지난 지금 보면 진전이 얼마나 있었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 쓸쓸한 생각이 없지 않아 있다"고 토로했다.

국내 금융사들의 글로벌화와 관련해 윤 회장은 "현재 (세계적인 금융사와) 격차가 굉장히 벌어져 있기 때문에 단기에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환상을 가져선 안 된다"며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차근차근히 해야 하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정책적인 수단과 지혜를 총동원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개인 자산이 부동산에 집중돼 지난 1960~70년의 경제성장의 과실이 궁극적으로는 국내 부동산에 상당 부분이 몰려 있는 부분이 옳은 결과 내지는 과정이었는가 하는 부분에서 안타까움이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앞으로 실질 성장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면서 점차 둔화하겠지만 금융자산은 상당 부분 빠른 속도로 늘리라고 생각한다"며 "이러한 금융자산을 잘 활용해 소위 돈을 돈이 돈을 버는 부문에서 금융회사의 역할이 매우 크다고 생각하는 만큼 자산 운용 부문의 인력 등을 대폭 강화하고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KB금융은 현재 글로벌 전략을 투트랙으로 펴고 있다. 선진국 시장에선 CIB(기업투자금융)와 자산운용을 중심으로, 신흥국에선 한국에서와 같이 종합금융회사로 가서 더 경쟁력을 확충하는 방향으로 잡고 있다.

아울러 윤 회장은 지배구조와 관련해 "정답이 없다"고 단언했다. 윤 회장은 "지배구조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데 획일화 내지 통일화할 수 없다"며 "각 금융사가 처한 상황, 체질, 연혁, 문화에 맞게 개발하고 육성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윤 회장은 과거 흑역사도 언급했다. 윤 회장이 KB금융 수장으로 올랐던 2014년 당시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KB국민은행장이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를 놓고 갈등을 벌이다 동시에 사퇴하는 이른바 'KB 사태'를 겪은 바 있다.

이후 윤 회장은 회장직과 은행장까지 3년간 겸직하며 내분으로 인한 혼란을 수습하고 조직을 정비하는 데 힘을 쏟았다.

윤 회장은 "지배구조에 있어 어느 회사보다 신경을 썼던 건 사실"이라며 "CEO(최고경영자)의 중요한 책무는 본인 재임 기간 좋은 경영 성과를 내고 지속 성장할 수 있는 토대 만들고 본인의 뒤를 이어 더 좋은 CEO가 나와서 더 잘할 수 있도록 체계를 정비하고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부문에 집중해 취임 초기부터 KB금융의 승계 프로그램에 대해 이사회와 긴밀히 협의를 쭉 진행해 왔다"며 "나름대로 바람직한 지배구조를 발전시키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더 보완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회장의 뒤를 이을 차기 회장에는 LIG손해보험 인수 실무를 맡았으며 '비은행 강자'로 불리는 양종희 부회장이 내정됐다. 양종희 내정자는 오는 11월 중 임시 주주총회 등의 승인을 거쳐 회장으로 취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