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한국인] 한국계 오마바의 담대한 도전
<6> 앤디 킴 미국 뉴저지주 하원의원
박준식 머니투데이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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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욕의 한국인] 세계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뉴욕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활약하는 한국인과 한국계 코스모폴리탄들의 분투기를 찾아 고국에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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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간호사였다. 아버지는 고아로 커서 소아마비까지 앓았지만 MIT(메사추세츠공과대학)와 하버드대에서 공부해 유전공학 박사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경남 밀양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부모의 악전고투 정착기는 말 그대로 드라마였다. 한국에서 태어나 부모를 따라 미국에 온 누나도 초기엔 영어에 어려움을 겪어 학교생활을 힘들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예일대를 졸업하고 뉴욕대 교수가 됐다.
이런 집안에서 나고 자란 둘째 남자아이는 어떤 중압감을 가졌을까. 부모는 필라델피아 인근 뉴저지 남부 체리힐에서 아이를 가르쳤다. 인구 10만명이 안되는 캠든 카운티는 치안이 좋고 학군이 우수하지만 90% 이상이 백인이다. 한국인은 3000명 이내. 키작고 왜소한 체구의 한국아이가 중등교육 내내 주눅이 들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의외의 선택을 한다. 한국으로 치면 2년제 전문대라 할 수 있는 딥스프링스컬리지(Deep Springs College)에 들어갔다. 주변에 프린스턴과 유펜 등 아이비리그가 즐비했지만 그건 기득권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이 전문대는 1년 5만달러의 학비가 전액 면제였다. 학교도 네바다와 캘리포니아 접경 사막에 있었다.
그해 입학정원이 13명으로 아침에 일어나 전교생과 함께 우유를 짜고 가축에 사료를 먹였다. 미국 사회를 이끌 지도자 교육을 취지로 만들어진 학교에서 '언더독 정신'으로 꿈을 키운 것이다. 그렇게 2년을 노력해 시카고대로 편입했고 거기서도 로즈 장학생이 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미국 국무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한국계 미국 하원의회 3선 의원 앤디 김(Andy Kim)이다. 처음엔 외교전략관으로 일했다. 미국이 이라크 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을 거치며 중동 정세에 깊이 관여하면서 전문가가 됐다. 능력이 탁월하니 초반 승진가도는 가팔랐다.
하지만 어느 날 분명히 존재하던 유리천정을 맞았다. 미국 정부가 한국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서면으로 금지했다. 보스톤에서 태어나 본래적 미국인임에도 그의 성(性)을 보고 스파이 행위를 우려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근무할 때는 최고 등급의 비밀취급 인가도 받았지만 미국은 그가 한국에 충분히 기울어질 수 있다고 여겼다. 미국 정부의 업무배당 제한은 사실 공식적인 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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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에 오바마까지 선거 도와
자신을 외국인 취급하는 정부에서 일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판단, 이를 고치겠다고 결심했다. 나토(NATO) 사령관전략참모와 미국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이라크 담당관을 끝으로 그는 정부 일을 그만두고 2018년 뉴저지 남부(3구)로 돌아와 하원의원에 출마했다.백인 인구가 80% 이상이고 아시아계는 3%도 안되는 지역구에서 앤디는 4000여표 차이로 신승했다. 그는 "다른 누군가가 내가 성취할 수 있는 혹은 없는 일, 그리고 내가 이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규정하도록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앤디가 출마하자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물론 오바마 전 대통령도 선거운동을 도왔다. 앤디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부를 이끌던 시절, 원내에 입성한 후 주한미군을 포함한 국방부를 관할하는 군사위원회를 배정받았다. 그는 미국의 대북정책이 북한과의 평화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정해지는데 역할을 다했다.
미국의 국익과 한반도의 평화가 서로 상충하는 가치가 아니라는 신념에 따라 소임을 다한 것이다. 하원의원이 된 이후에도 스스로는 유리천정을 깨뜨리기 위해 일하는 역할만을 바꾼 것일 뿐이고 여전히 민주주의를 위한 공직자(Public service provider)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앤디는 재선에서는 4만표 차이로 압승했고 지난해 9월에는 41세 나이에 3선에 성공했다. 그런데 한 달여 만에 그는 다시 담대한 도전을 시작했다. 상원의원 출마를 천명한 것이다. 상원은 한국계 정치인들에겐 미지의 영역이다. 2년짜리 하원에 비해 6년 임기의 상원은 스포트라이트의 비중이 다르다. 435명의 하원이 지역구라면 100명의 상원은 전국구다.
재선 상원의원이나 주지사는 대통령 후보로도 자주 거론된다. 하원이 주로 예산 등의 돈 문제를 다루는데 비해 상원은 외교전략과 국제정세 등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의사결정을 좌우한다.
이런 의미에서 앤디가 상원을 목표한 것은 정치적 야망이기도 하지만 지금이 바로 적기라는 판단 때문이다. 같은 당 상원의원인 밥 메넨데스가 뇌물과 부패 혐의로 기소되면서 낡은 정치, 부패한 정치에 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자신감을 느껴서다.
앤디는 지난 1월13일 뉴저지 포트리 한인유권자연대(KAGC) 사무실을 찾아 "3번의 선거를 치르면서 단 한 번도 우세로 평가되지 않았지만 이기는 방법을 알고 이겨냈다"며 "지난해 10월 이후 이미 270만달러의 자금을 모았고 이제 한국인 커뮤니티는 새로운 후보, 젊은 후보, 우리의 힘을 보여주고 우리 커뮤니티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대표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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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 도전… 6월 프라이머리가 시험대
그는 일단 올 여름(6월) 민주당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적격 여부를 시험받는다. 하지만 상대는 만만찮다. 필 머피 현 뉴저지 주지사의 아내 태미 머피가 민주당 카운티 의장들의 지지를 얻어 경선 출마를 선언해서다. 주지사로 차기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필 머피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도 앤디를 오히려 '언더독'이라고 평가했다.이에 대해 "물론 내가 상원의원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이 아니라면 한국계나 아시아 커뮤니티의 힘을 보여줄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계로선 가장 높은 자리에서 한반도 정세에 대한 문제에 당당히 관여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상원에서 한반도 정책을 논의하면서 한인들의 목소리는 전혀 고려하지도 않음을 알게 됐다"며 "한·미동맹의 파트너십을 공고히 하고 아시아에 지정학적인 안정을 정착시키려면 가장 높은 자리에 그를 대표할 적임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치에 입문한 후 70여차례의 타운홀 미팅을 열어 시민과 유권자들의 의견을 경청한 앤디의 힘은 민주당에서도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최근 가상대결을 전제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앤디가 42%, 태미 머피가 19%, 메넨데스 현 의원이 5%를 각각 얻었다. 뉴저지는 민주당 우세 지역이어서 예비선거 승리는 11월 상원의원 보증수표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 1월15일 마틴 루터킹 목사의 서거일을 기념한 날에 앤디는 소셜미디어에 다음과 같이 정치 포부를 밝혔다. "리더십이 무엇이냐고 그의 딸이 물었을 때 킹 목사는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중요한 덕목으로 사랑을 말했다.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시절에 우리는 그 사랑이라는 단순한 진리에서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다. 봉사와 리더십, 적극적인 시민의식으로 정의롭고 강력한 민주주의를 만들고자 한다면 다시 되새겨야 할 진리다."
<프로필 >
◆출생
1982. 7. 12. 미국 보스턴
◆소속
미국 뉴저지주(하원의원)
◆학력
뉴저지 체리힐 고등학교 (Cherry Hill High School East)
딥스프링스컬리지 (Deep Springs College) - 2년제 학교
시카고 대학교 (University of Chicago) 정치학 학사
로즈 장학금 선발 (Rhodes Scholarship)
옥스포드 대학교 (Oxford University) 국제관계학 석사, 박사
◆경력
2019.01~ 미국 뉴저지주 민주당 하원의원
2013~2015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 NSC 이라크담당 보좌관
2011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사령관전략참모
2009~2013 미국 국무부 외교 담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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