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형 전시 '어둠 속 대화'는 최근 20대와 30대에게 인기 있는 체험형 전시 중 하나다. 사진은 대기 공간의 '당신은 어둠 속에서 무엇을 보셨나요?' 문구. /사진=이예빈 기자
체험형 전시 '어둠 속 대화'는 최근 20대와 30대에게 인기 있는 체험형 전시 중 하나다. 사진은 대기 공간의 '당신은 어둠 속에서 무엇을 보셨나요?' 문구. /사진=이예빈 기자


"색다른 경험이었다."

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서 진행되는 체험형 전시 '어둠 속의 대화'는 최근 20대와 30대에게 가장 인기 있는 체험형 전시 중 하나다. '어둠 속 대화'는 암흑 속에서 100분간 진행된다. 7~8명의 참가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길잡이인 '로드마스터'를 따라가며 다양한 체험을 한다.


시각을 제외한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사용해 이동한다. 소리도 듣고, 대화도 하고 공간을 만져보며 어떤 곳인지 상상해본다. 머니S는 시각 의존도가 높은 일상에서 시각이 차단된 상황을 체험하기 위해 지난 22일 북촌에서 열리는 '어둠 속의 대화'를 찾았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빛이 날 수 있는 스마트 워치, 소지품 등을 모두 사물함에 넣어야 한다. 기자를 포함한 총 6명이 안내자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어둠 체험 공간으로 이동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어둠 체험 공간으로 들어서기 전의 공간도 매우 어두웠다. 이어 어둠의 공간에 들어서자 눈을 감은 것과 뜬 것이 똑같을 정도로 깜깜했다.


일행에 의지하거나 벽을 잡고 걸어야 했다. 소리를 들으며 공간을 상상하고 좁은 공간인지 넓은 공간인지 느낌으로만 알아챘다. 처음에는 다칠까 무서웠지만 이어 다른 감각을 사용해 체험 공간에 적응했다. '어둠 속 대화'는 아무것도 모르고 가야 한다는 체험 후기가 많아 기자 역시 전시 공간에 대한 정보를 모른 채 시각을 제외한 감각을 사용하는 다양한 체험을 했다.

시각장애인의 삶 느껴보라는 전시 아냐… 유대감, 힐링, 색다른 경험

‘어둠 속 대화’는 암흑 속에서 100분간 진행된다. 7~8명의 참가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길잡이인 ‘로드마스터’를 따라가며 다양한 체험을 한다. 사진은 체험이 끝난 후 방문객들이 소감을 작성할 수 있는 방명록. /사진=이예빈 기자
‘어둠 속 대화’는 암흑 속에서 100분간 진행된다. 7~8명의 참가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길잡이인 ‘로드마스터’를 따라가며 다양한 체험을 한다. 사진은 체험이 끝난 후 방문객들이 소감을 작성할 수 있는 방명록. /사진=이예빈 기자


깜깜한 어둠 속에서 이런저런 감각을 경험하다 보니 답답했던 어둠이 편안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휴식의 시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 일행끼리 서로 의지함으로써 유대감도 생겼다.


현장에서 만난 송파구에 거주하는 김한영씨(남·30대)는 "여자친구와 한번 와봤는데 ('어둠 속 대화'가) 좋아서 가족들과도 방문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이 전시는 누구랑 체험하느냐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다른 것 같다"며 "전시회에 같이 온 사람과 어둠을 체험하며 유대감이 더 생기는 것 같다"고 밝혔다.

여자친구와 함께한 대학생 홍석현씨(남·24)는 "정말 깜깜했다. 사람은 원래 어두운 곳에서 눈이 적응하면 형태라도 보이는데 '어둠 속 대화'의 어둠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깜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생각보다 살면서 시각적으로 많이 의존해왔다는 것을 느꼈고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만을 사용하는 것이 색다른 체험이었다"며 "예상과 달리 시각 장애인의 삶을 무작정 느껴보라는 취지가 아니었던 것 같아 신선했다"고 밝혔다. 이어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며 "힐링했다"고 덧붙였다.


친구들과 함께 온 경기도 하남시에 거주하는 황서정씨(여·30대)는 "한번 와봤고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라며 "직접 친구들에게 추천해 같이 왔다"고 말했다. 이어 "평소 경험할 수 없는 거니까 같이 경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저만 두 번째이고 다른 친구들은 처음 방문했다"고 밝혔다. 그는 "같이 온 친구들도 주변에서 (이 전시를) 많이 추천받았다고 하더라"라고 덧붙였다.

시각 제외한 감각으로 인사이트 제공하는 '전시 퍼포먼스'

‘어둠 속 대화’는 단순히 사람들에게 시각 장애인의 입장을 느껴보라는 것이 아닌, 시야를 차단함으로써 얻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주기 위한 전시다. 사진은 ‘어둠 속 대화’ 북촌 상설전시관에서 사람들이 1층의 모습. /사진 = 이예빈 기자
‘어둠 속 대화’는 단순히 사람들에게 시각 장애인의 입장을 느껴보라는 것이 아닌, 시야를 차단함으로써 얻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주기 위한 전시다. 사진은 ‘어둠 속 대화’ 북촌 상설전시관에서 사람들이 1층의 모습. /사진 = 이예빈 기자


'어둠 속 대화'는 지난 1988년 독일에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시각장애인의 삶을 느껴보자는 취지의 단순한 이벤트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다 점차 커져 지난 2008년 독일에서 사회적 기업 형태로 발전했다. 독일 회사 이름은 '다이얼로그 소셜 엔터프라이즈'. 놀이가 아닌 문화콘텐츠 비즈니스로 바뀐 것이다.

'어둠 속 대화' 전시를 진행한 송영희 엔비전스 대표는 "이 전시는 단순히 사람들에게 '시각장애인의 입장을 이해하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어둠 콘텐츠'가 됐다"며 "전시를 통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고 문화활동을 통해 시각을 제외한 다양한 감각으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전시 퍼포먼스'"라고 소개했다.

이 전시를 접하면 자연스레 시각장애인을 떠올리겠지만 그렇지 않다. 송 대표는 "일상에서 눈에 잘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살지 않나"라며 "(보이는 것과 같은) 가장 익숙한 것이 멀어졌을 때 새로운 기회, 새로운 생각이 생겨나는 것에 초점을 맞춰 전시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해당 공간의 위생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묻자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엔데믹으로 위생 관리에 훨씬 더 민감하게 신경 쓰고 있다"며 "발달장애인 직원이 소독을 하는데 여러가지 일, 복합적인 일은 어려워하지만 본인에게 주어진 일은 굉장히 잘한다"고 흐뭇해했다. 그는 "다른 직원들도 계속 이 부분(소독관리)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밝혔다.

전시 유지 비용도 만만찮다. 송 대표는 "기부로 이뤄지는 비영리 단체가 아닌 사회적 기업이므로 이윤이 있다"며 "주된 수익은 공연 전시인데 버는 것과 쓰는 것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10년 동안 누적된 방문객 수는 70만명(지난 2023년 기준)"이라며 "하루에 최대 290명만 수용이 가능해 큰 수익을 낼 수 없다는 게 콘텐츠의 한계"라고 덧붙였다.

다행히 재방문율이 높은 편이다. 송 대표는 "성인인 아들과 그 부모가 함께 방문한 적이 있었다"며 "대화하다가 지금까지 서로 몰랐던 사실을 서로 알게 됐다고 하더라"라고 설명했다. 부모는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있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고. 이렇듯 서로를 알게 되는 소중한 기회로 작용한다고 송 대표는 자랑했다.

그는 "집에 있으면 (다른 가족이) '방에 있나 보다'하고 쑥 (자기 방에) 들어가는데 이런 기회로 말 한마디 해보는 건 일상에서 아쉬웠던 부분, 소통의 부재를 채워줄 수 있다"고 전시 효과를 설명했다.

송영희 대표는 사회적 기업 '엔비전스'를 운영하며 현재 '어둠 속 대화' 전시뿐 아니라 시각 장애인의 정보 접근성 웹사이트 컨설팅 사업도 하고 있다. 사진은 송영희 대표의 모습. /사진=머니투데이
송영희 대표는 사회적 기업 '엔비전스'를 운영하며 현재 '어둠 속 대화' 전시뿐 아니라 시각 장애인의 정보 접근성 웹사이트 컨설팅 사업도 하고 있다. 사진은 송영희 대표의 모습. /사진=머니투데이


송 대표는 사회적 기업 '엔비전스'를 운영하며 현재 '어둠 속 대화' 전시뿐 아니라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성 컨설팅 사업도 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이 정보를 접하는 데 어려움이 없게 도와주는 웹사이트를 컨설팅하고 있다. 엔비전스 이름은 '알파벳 'N'의 중의적 의미를 담아 그가 직접 만들었다. New, Network 두 가지 뜻이 'N'에 담겨있다.

'어둠 속 대화'는 지난 2007년 한국에 처음 들어와 서울 신촌에서 임시로 진행됐다. 현재 서울 북촌과 경기도 동탄에 '어둠 속 대화' 상설전시관이 있다. 동탄에서 진행하는 '어둠 속 대화'는 북촌과는 다른 내용으로 구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