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잡으러 나간 5명의 소년… 11년 만에 유골로 돌아와[오늘의역사]
윤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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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6 | 07: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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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9월26일. 대구 달서구 와룡산에 올라갔다가 동반 실종된 학생 5명이 백골로 발견됐다. 전국민이 이들의 행방에 관심을 보이며 대대적인 수색작업이 펼쳤지만 결국 사라진 지 11년 만에 모두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대구 성서초등학교를 다니던 우철원(13)·조호연(12)·김영규(11)·박찬인(10)·김종식군(9) 등 5명의 아이들은 도롱뇽 알을 채집하기 위해 와룡산에 올랐다가 행방이 묘연했다.
해당 사건은 일명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으로 세간에 알려졌다. 전국민적 관심을 받자 이들을 찾기 위해 연간 경찰과 군인 등 35만명이 동원됐고 현상금 4200만원까지 내걸었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에도 아이들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들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사건이 발생한지 무려 11년6개월이 지난 이후였다. 한 등산객이 도토리를 줍기 위해 풀숲을 뒤지다 뼈를 발견했다. 바로 개구리 소년들의 유골이다. 그는 발견 즉시 경찰에 신고했고 사건명은 '암매장'으로 변경됐다. 신원확인을 위해 모인 유족들은 땅속에 파묻힌 유골과 옷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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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장소 인근에서 유골이 발견됐다는 사실은 큰 충격을 안겼다. 당시 연인원 수십만명이 수사에 동원됐으나 아이들이 발견된 곳은 달서구 성산고교 신축공사장 뒷편으로 500m 떨어진 와룡산 새방골이었기 때문이다. 경찰의 수색은 소년들이 처음 오른 곳으로 추정되는 불미골 쪽에 집중됐다.
경찰은 유골 발견 직후 아이들의 유골이 모여 있는 점을 미루어 봤을 때 길을 헤매다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실제로 실종 당일의 기온은 3도에서 12도 사이였으며 오후 6시부터 약 5㎜의 비가 내렸다.
하지만 또 한번의 충격은 이들이 저체온증이 아닌 타인에 의해 살해됐다는 점이었다. 부검을 맡은 경북대 법의학팀은 이들의 죽음을 타살로 결론지었다. 우철원 군의 두개골에 무려 25번이나 찍힌 상흔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사팀은 범행 도구에 대한 실마리조차 찾지 못했다.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은 경찰의 수사 과정이 미흡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경찰은 당초 아이들이 단순 가출을 했을 것으로 보고 뒤늦게 수사에 착수했다. 뒤늦게 납치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검찰총장은 "실종 어린이들을 돌려보내 주면 최대한 관용을 베풀겠다"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한 범죄심리학 교수는 김종식군의 아버지를 범인으로 지목했고 이에 굴착기를 이용해 김군의 집 욕실과 방바닥 등을 파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종식군의 아버지는 추후 건강이 악화돼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유족들은 2005년 말부터 기자회견을 통해 공소시효 연장 및 폐지를 촉구했다. 하지만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이 사건의 시효 만료 전까지 통과되지 못했다. 결국 개구리 소년 사건은 2006년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2019년부터 대구경찰청장기미제사건 수사팀은 사건 재수사를 시작했지만 범인의 흔적조차 남지 않아 영구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올해는 '개구리 소년' 실종 33주기다. 이유도 모른 채 아이들을 보낸 부모들은 아직까지 진실이 밝혀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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