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후 더 빛났던 지미 카터… 100년의 '발자취'
최진원 기자
3,091
2024.12.31 | 10:19:34
공유하기
|
미국의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가 향년 100세의 나이로 지난 29일 오전 3시45분(이하 현지시각) 별세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임기를 마친 후 카터재단을 설립해 약 40년 동안 세계 평화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가장 존경받는 미국 전직 대통령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24년 10월 미국 조지아주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해군 사관학교를 졸업 후 해군 장교로 활동하다 1962년 조지아주 상원의원 선거를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미국 조지아주지사를 거쳤고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대선 후보에 나서기 전까지 카터 전 대통령은 무명에 가까웠다. 이 시기 미국 최악의 정치 게이트인 '워터게이트 사건'과 베트남 전쟁 등이 겹치자 미국 국민들은 기성 정치인과 다른 카터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그는 1976년 대선에서 제럴드 포드 대통령을 꺾고 미국의 3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재임 시절 카터 전 대통령은 크게 인기가 없었다. 1970년대 미국의 경제 불황과 높은 실업률 등이 겹치면서 재임 첫해를 제외하곤 내내 20%대의 저조한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중재한 '캠프 데이비드 협정' 체결을 이뤄내는 등 외교적으론 중동 평화에 기여했지만 결국 재선에는 실패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80년 대선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 로널드 레이건에게 대패 후 백악관을 떠났다.
카터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한국과 마찰도 빚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주한 미군의 점진적 철수를 주장했다가 설전을 빚었고 한미동맹을 위태롭게 만들기도 했다.
|
카터 전 대통령이 가장 위대한 전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퇴임 후 더 많은 활동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그는 고향 조지아에 카터 센터를 설립 후 전 세계 분쟁 지역에 도움의 손길을 펼쳤다. 카터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 취약국에 선거 감시 활동을 지원하고, 전염병 확산의 원인인 기니 벌래 퇴치 등에 매진했다. 또 빈곤층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비다트 프로젝트(사랑의 집짓기) 운동도 전개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북한의 핵 문제에 직접 개입했다. 그는 1994년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탈퇴하자 평양에 직접 방문했고 김일성 주석 등과 만남 가지는 등 국제 평화에 상당수 개입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
카터 전 대통령과 아내 로잘린 여사와의 순애보도 화제가 됐다. 그는 1946년 로잘린 여사와 결혼 후 평생을 사랑하고 함께 봉사했다. 로잘린 여사는 지난해 11월 향년 96세의 나이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카터 전 대통령은 오랫동안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 등을 투병하다 생을 마감했다. 그는 지난해 2월부터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호스피스 돌봄을 받아오던 중 가족의 곁에서 별세했다.
<저작권자 ⓒ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경제 뉴스’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보도자료 및 기사 제보 ( [email protected] )>
-
최진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