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열차, 아프리카 로보스 열차, 스위스 글래시어 익스프레스. 여행자들의 버킷리스트에는 기차여행이 빠지지 않는다. 기차는 다른 교통수단과 다르다. 버스와 비행기는 목적지에 이르는 도구에 그치지만, 기차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여행이다. 역에 발을 들이는 순간, 이미 여행은 시작이다. 웅장한 역사와 노선마다 독특한 기차, 객실의 아늑한 의자, 그리고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기차여행을 특별하게 만든다.


2025년 1월 1일 우리나라 기차여행의 새 장을 열 동해선 ITX-마음 열차가 시동을 걸었다. 강릉 새벽 5시 28분, 부산 새벽 5시 33분. 각각 부산과 강릉을 향한 첫 기차가 역을 떠났다. 단절되었던 삼척~포항 구간이 이어져, 강릉에서 부산까지 기차로 달리는 시대가 열리게 된 것. 삼척~포항 구간 철도건설을 위해 첫 삽을 뜬지 15년 8개월 만의 일로, 사업비 약 3조 4000억 원이 투입됐다. 비록 현재는 평균 5시간이 걸리지만, 내년에는 시속 260km의 KTX-이음이 투입되어 시간이 대폭 단축될 전망이다.

기차의 가치는 속도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유명 관광열차는 '느림의 미학'을 강조한다. 빠르게 달리면 놓칠 풍경을, 느리게 가면 고스란히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해선 열차는 아름다운 동해안을 따라 달린다. 7번 국도처럼 내륙과 해안을 오가며 경로를 이어간다. 강릉역에서 동해역 구간은 그림같은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진다. 삼척 근덕역, 영덕 고래불역, 포항 월포역 주변도 바다 경관이 일품이라, 바다열차가 부럽지 않다.


며칠 전 설렘을 가득 안고 동해선 열차에 올랐다. 차 안에서는 강원도 사투리와 경상도 방언이 어우러졌다. 마치 강원도와 경상도를 잇는 작은 화개장터 같은 분위기였다. 고향 울진으로 향하는 사람, 커피를 마시러 강릉으로 떠나는 여인, 대게를 맛보러 영덕으로 가는 여행자들. 기차를 타는 이유도, 목적지도 다양했다. 동해선이 만들어낸 새로운 풍경이었다.

열차는 매력적인 작은 역을 지나쳤다. 고래불해수욕장을 앞에 둔 고래불역, 대게 경매로 유명한 후포항이 가까운 후포역, 대게타운 바로 앞의 추암역, 그리고 이현세 만화가의 벽화가 있는 매화역. 이미 알려진 부산이나 강릉 같은 도시들보다는 소박하고 작은 매력을 품은 마을들을 천천히 여행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동해선 열차는 해파랑길 걷기와 자전거 여행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동해선이 없을 때는 해파랑길을 걸은 후 출발지점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지만, 이제는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새로운 동선을 계획할 수 있게 됐다. 열차 시간표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상상의 나래를 끝없이 펼쳤다.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큰 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역에서 지도조차 찾기 어려웠다. '두 팔 벌려 환영한다'는 구호는 있었지만, 정작 여행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는 없었다. 역에 도착해 여행지로 이동할 교통수단도 막막했다. 버스나 자전거는 찾아보기 어려웠고, 택시가 유일한 선택지였다. 역 주변에 걸어서 가볼만한 곳도 마땅치 않았다. 동해선 개통을 고대해 온 삼척과 울진도 상황은 비슷했다. 삼척은 동해선 개통을 기념해 환선굴 입장료를 할인해준다고 홍보했지만, 정작 환선굴까지 가는 방법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환선굴까지 택시비는 4만원이 넘었다.

여행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자전거 대여 서비스나 시티버스를 운영하는 것도 방법이다. 먼 거리는 택시비를 일부 지원할 수도 있다. 역에 내려 어떻게 이동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여행자에게 입장료 할인은 그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단순히 '오라'고 손짓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행자들이 '왔을 때' 즐길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동해선 개통이 만들어낼 새로운 여행 문화를 위해, 세심하고 다정한 배려가 필요한 때다.
채지형 여행작가 / 그래픽=김은옥 기자
채지형 여행작가 / 그래픽=김은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