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덕 고려아연 대표이사가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서울에서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 /사진=(서울=뉴스1) 민경석 기자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이사가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서울에서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 /사진=(서울=뉴스1) 민경석 기자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MBK파트너스·영풍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를 거뒀다. 임시 주주총회에서 '상호주 의결권 제한' 카드로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의 의결권을 무력화하면서 최 회장 측이 제안한 집중투표제 도입 등의 안건이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다만 MBK·영풍이 상호주 의결권 제한의 위법성을 지적하며 소송을 예고한 만큼 양측의 분쟁은 장기전으로 접어들 전망이다.

6시간 진통 끝 임시 주총 개회… 노조 시위까지 현장 혼란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개최된 주총은 시작 전부터 혼란이 이어졌다. 고려아연 노조는 주총 시작 2시간여 전인 오전 7시부터 현장에 집결해 MBK·영풍을 규탄하는 피켓을 든 채 "국가기간산업 고려아연 지켜내자"는 구호를 외쳤다.


피켓에는 '돈만 생각하는 투기자본 MBK' '무능한 경영진 적자기업 영풍' '환경오염 최대주범 영풍이 웬말이냐' '적대적 M&A 당장 철회해야' 등의 문구가 적혔다.

이날 임시 주총은 당초 9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6시간 가까이 지연됐다. 중복 위임장이 여럿 발견돼 이를 재확인하고 명확한 출석주식수와 주주수를 파악하는 과정에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된 탓이다.


고려아연 측이 개최 시간을 12시로 조정하고 이후 1시로 재차 순연했음에도 주총이 열리지 않자 MBK·영풍 측 대리인은 "오후 1시 이전에 중복 위임장 관련 연락은 끝났다고 들었는데 시간이 더 지났다"며 "혹시 누구를 기다리는 것이냐"고 항의했다. 고려아연에 우호적인 주주의 출석을 기다리느라 지연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 측은 우선적으로 확인된 숫자를 먼저 주주보고하고 개회를 한 뒤 1호 안건을 표결 하기 전 다시 최종 숫자 반영사항을 업데이트해서 보고하겠다며 오후 1시52분 임시 주총 의장을 맡은 박기덕 대표이사의 개회 선언으로 주총을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모든 주주총회는 출석주식수 발표가 있어야 시작한다. 그런 발표가 없는 개회 선언은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는 MBK·영풍 측 대리인의 항의에 다시 중단됐고 3시 무렵에야 재개됐다.

글로벌 비철금속 기업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 향배를 가늠할 임시 주주총회가 23일 서울 용산구 소월로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진행된 가운데 문병국 고려아연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노조원들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 /사진=임한별(머니S)
글로벌 비철금속 기업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 향배를 가늠할 임시 주주총회가 23일 서울 용산구 소월로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진행된 가운데 문병국 고려아연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노조원들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 /사진=임한별(머니S)


영풍 의결권 제한… MBK·영풍 잇단 항의에 주주 간 고성도

임시 주총이 본격 개회하면서 박기덕 주총 의장은 "본 주주총회에서는 영풍이 보유한 당사 주식 526만2450주(25.4%)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앞서 고려아연 자회사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는 영풍 발행 주식수의 10.32%에 해당하는 주식회사 영풍 발행 보통주 19만226주를 취득했다.

현행 상법 제369조 제3항을 보면 회사와 모회사 또는 자회사가 다른 회사의 발행주식 총수의 10분의1을 초과하는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 다른 회사가 가지고 있는 회사 또는 모회사의 주식은 의결권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법에 따라 의결권을 제한된다는 설명이다.

MBK파트너스·영풍 측은 즉각 반발했다. MBK·영풍 측 대리인은 "최대주주의 의결권이 부당하고 위법하게 제한된다라는 점을 전제로 안건 상정 자체와 표결 자체가 위법한 행위라는 부분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엄중히 경고한다"고 항의했다.

반면 고려아연 측은 "상법 상 상호주 규제, 예를 들어 상법상 자회사의 모회사 수익 취득 금지 규정은 국내 회사뿐만 아니고 외국 회사에서도 적용을 한다는 것이 통설이고 상법상 회사의 자회사에는 외국 자회사도 포함된다는 법무부 유권 해석도 있다"며 MBK·영풍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MBK·영풍 측 대리인들의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일부 소액주주들은 발언권을 얻은 뒤 "한 번 나온 발언들이 계속 반복해서 나오는데 의사진행을 속행해 달라"며 불만을 드러내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MBK·영풍 측은 임시 주총 일정을 연기해달라고 요구했고 이를 표결에 부치려 했으나 해당 안건 표결에도 의결권이 제한된다는 설명이 나오자 주총 연기 입장을 철회했다.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가 개최됐다. / 사진=고려아연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가 개최됐다. / 사진=고려아연


집중투표제·이사수 상한 등 통과… 향후 법적분쟁 불가피

결국 영풍의 의결권이 제한된 상황에서 최윤범 회장 측이 제안한 안건이 압도적인 찬성률로 통과됐다. 1-1호 의안인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의 건'은 출석 주식 수의 76.4%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1-2호 의안인 이사 수 19인 이하 제한을 위한 정관 변경의 안도 출석 주식수의 73.2%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반대는 26.4%, 기권은 0.4%이다.

이사 수 상한 가결로 신규 이사 14인을 선임해 고려아연 이사회 과반을 장악하려던 MBK파트너스와 영풍의 시도가 무위로 돌아갔다.

결국 MBK·영풍은 오후 7시40분쯤 "자의적으로 1대 주주와 주주들을 우롱하는 의사진행에 남아있을 수 없어 퇴장한다"며 주총장을 빠져나갔다.

임시 주총은 최 회장 측의 경영권 방어 성공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경영권 분쟁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MBK·영풍이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한 것의 위법성 문제를 따지겠다고 예고하면서다.

MBK 측 변호사는 "매우 위법한 행위, 현저히 불공정한 행위 등 주총 결의 부존재 사유에 대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MBK·영풍은 임시 주총을 빠져나온 뒤 발표한 입장문에서도 "오늘 임시주총의 위법적인 결과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취소 및 원상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며 "자본시장의 제도와 관련 법령에 따라 비록 시간이 걸리고 고통스럽더라도 저희 앞에 놓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려고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