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수합병(M&A) 과정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 중 하나가 '승자의 저주'다. 인수합병 과정에 투입된 막대한 비용 때문에 인수에 나선 기업들이 겪는 심각한 후유증을 일컫는다. 인수합병에는 성공했지만 인수 기업, 피인수된 기업 모두 악화일로에 놓인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일시적 실적 악화를 넘어 근본적인 경쟁력마저 상실해 파산에 이른 경우도 있다.


지난해 9월 MBK파트너스의 주식 공개매수로 시작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관련해서도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진다. 지난 23일 임시주주총회는 고려아연 측 승리로 끝났지만 법적 대응을 예고하는 등 MBK의 강경한 태도에는 변화가 없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사태의 장기화는 불가피해졌고, 이 과정에서 야기되는 부작용과 후유증은 가늠되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임시주총 이후 고려아연 측에서 MBK에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기약 없는 투쟁보다는 MBK를 새로운 협력자로 인식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ISS와 글래스루이스 등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국민연금 등이 내놓은 의견을 수용하고 이사회를 MBK에도 개방한다고 했다.


다른 의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MBK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다수의 인원을 이사회에 참여시키면 '레드팀'(시스템의 취약점을 발견하고 개선점을 제시하는 조직) 역할을 하게 할 수 있고, 고려아연 이사회의 독립성과 감독 기능을 강화할 수 있어 MBK가 주장하는 지배구조 개선에 나설 수 있는 포석을 만들 수 있다.

고려아연 측에서도 동아시아 최대 사모펀드인 MBK의 경험을 경영활동에 반영시킬 수 있다면 미래 성장 동력 준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 현 경영진이 세운 신사업 전략 '트로이카 드라이브'가 MBK의 지원과 협조로 성공한다면 기업 가치 상승은 자명하다. 이에 따른 주주 가치 제고는 고려아연, MBK, 소액 주주 모두가 '윈-윈' (Win-Win) 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이와 반대로 고려아연과 MBK가 지금처럼 갈등을 지속한다면 두 회사는 물론 국가, 소액 주주 등 모든 이해 관계자가 불안과 혼돈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세간에선 명분 없는 싸움으로 MBK가 고려아연 이사회를 장악해 경영권 뺏어 잇속만 챙기려 했다고 비난할 가능성이 높다.

경영권 분쟁이 지속되면 고려아연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 막대한 차입금과 이자에 따른 재무 악화, 불안한 미래로 회사를 떠나는 인재, 방치된 미래 신동력 등으로 회사 가치는 지금보다 쪼그라들 것이 분명하다. 이는 현 경영진과 MBK를 비롯해 고려아연을 둘러싼 모든 이해 관계자들이 원치 않는 결과지만 지금 상황의 변화 없이는 피하지 못 할 수 있다.

이 같은 결과를 막는 방법은 오히려 간단하다. 서로를 인정하고 대화에 나서 누구도 패할 수 없는 상황을 조성하면 된다. 오는 3월 예정된 정기주주총회에선 고성이 오가며 싸운 지난 임시주총과는 다르게 '국가기간산업'을 영위하는 고려아연의 미래를 위한 상생안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데스크칼럼] 고려아연 M&A 이후를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