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2월5일 김기영 감독이 자택 화재로 인해 별세했다. 사진은 영화 촬영 현장에 나선 김기영 감독의 모습. /사진=한국영상자료원 캡처
1998년 2월5일 김기영 감독이 자택 화재로 인해 별세했다. 사진은 영화 촬영 현장에 나선 김기영 감독의 모습. /사진=한국영상자료원 캡처


1998년 2월5일 '한국 영화계의 원로' 김기영 감독이 향년 7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이날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위치한 김 감독의 자택에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는 김 감독 내외가 거주 중인 한옥을 불태웠고 부부는 연기에 질식해 생을 마감했다.


김 감독의 아들 김동원씨는 추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유서가 기묘했다고 밝혔다. 그는 잿더미 사이에서 불에 타지 않은 아버지의 유서가 비닐에 쌓인채 발견됐다며 유서 내용을 공개했다. 유서에는 '내가 이 한옥을 사지 말자고 했는데 네 엄마가 우겨서 샀다' '내가 공중에 떠서 우리 집 마당을 내려다보는데 아마도 내가 죽은 모양이다' '네가 마당에 삼발이를 치고 땅을 파고 있는 것이 보인다' 등의 내용이 적혀있었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내려다보는 듯한 내용이었다. 당시 미공개 작품이었던 김 감독의 영화 '죽어도 좋은 경험'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주인공 부부가 화재로 죽는다.

서울대 의대생… '충무로 최고' 괴짜 감독이 되다

괴짜 감독으로 알려진 김기영 감독이 1998년 2월5일 사망했다. 사진은 김기영 감독의 하녀 시리즈 중 하나인 영화 '충녀'의 장면. /사진=한국영상자료원 캡처
괴짜 감독으로 알려진 김기영 감독이 1998년 2월5일 사망했다. 사진은 김기영 감독의 하녀 시리즈 중 하나인 영화 '충녀'의 장면. /사진=한국영상자료원 캡처


김 감독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은 그를 '괴팍한 괴짜'라고 회상했다. 평소 심각한 외골수에다 영화밖에 몰랐던 김 감독이다. 또 그가 만든 영화는 기괴하고 무거운 주제를 거침없이 다뤘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많은 후배 감독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지금은 세계적인 영화 감독이 된 봉준호와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도 김 감독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1919년 태어난 김 감독은 서울대 의대 출신의 수재였다. 그러나 그는 의학이 아닌 연극과 영화에 큰 관심을 보였고 교내 연극반을 만들어 여러 작품을 무대에 올리며 연출가로서 인정받았다. 그러던 중 6.25가 발발했고 김 감독은 부산으로 피란을 떠났다.


이후 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하던 김 감독은 주한미국 공보원으로부터 영상을 제작하는 일을 맡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영상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그는 이 기간에 미국에서 건너온 최신 장비를 이용해 미국의 선전 영화를 찍으며 감독으로서의 수련 과정을 거쳤다. 이후 1955년 자신의 첫 장편 영화인 '죽엄의 상자'를 완성하며 충무로에 데뷔했다.

의사 출신이었던 김 감독은 자신이 예술가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자신을 변태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회를 병리적 시각으로 바라봤고 1960년 대표작 '하녀'를 발표하며 소름 끼치는 컬트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자기 작품을 시리즈로 제작했고 '화녀' '수녀' '충녀' 등의 작품을 만들었다. 하녀 시리즈의 여자 주인공은 모두 육체적 혹은 정신적인 불구자들이 나온다. 다만 김 감독은 소름 돋는 영화의 연출자이면서 무서운 장면을 촬영한 이후 외면할 만큼 겁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감독은 당시 유명 감독들에 비해 적은 양인 32편의 영화만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