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각이 남다른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머니S는 Z세대 기자들이 직접 발로 뛰며 그들의 시각으로 취재한 기사로 꾸미는 코너 'Z세대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Z시세)을 마련했습니다.
우프 체험기 ①편에서 이어짐
농촌의 낭만을 찾아 우프 코리아를 체험해봤다./사진=박정은 기자
높은 빌딩과 수많은 사람이 있는 도시에서 생활하다 보면 가보지 않은 농촌에 대한 향수가 생기기도 한다. 시끄러운 도시의 소음이 아닌 자연의 소리를 듣고 좁은 모니터가 아닌 탁 트인 공간에서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고 싶어진다. 하지만 아무런 연고 없이 농촌에 대한 향수를 해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물론 여행지 숙소에서 하루를 보내고 맛집을 찾아가는 등의 짧은 경험은 가능하다. 하지만 진짜 '농촌'을 경험할 순 없다. 갑작스러운 귀농을 생각할 수는 더더욱 없다. 도시에 지친 삶 속에서 진짜 농촌에 대한 경험을 가질 수 있는 우프코리아(WWOOF Korea)를 체험은 그런 면에서 진짜 농촌 체험을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
"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 두렵고 설레는 준비기간
━
"사람들이 왜 숙식을 공짜로 주겠어, 쉴 틈 없이 일해야 할걸?"
기자는 우프코리아 멤버십 가입과 호스트와의 연락 과정을 거쳐 '강원도 홍천 흙집 치유동산'으로 우핑(우프 체험)을 가기로 결정됐다. 돌연 농촌으로 떠난다는 말에 주변 사람들은 우려를 쏟아냈다. 한 번도 도시를 벗어나 본 적 없었던 사람이 농촌에서 더부살이하는 건 힘들 것 같다는 이유다. 실제로 기자는 친인척이 모두 서울에 거주하고 있어 본격적으로 농촌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그렇게 기자는 설렘과 불안을 안고 생애 첫 농촌, 홍천으로 떠났다.
우핑을 가는 길은 설렘과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홍천의 적막한 도로./사진=박정은 기자
"기사님 여기가 정말 정류장 맞나요?"
기자는 시외버스를 타고 홍천으로 향했다. 농가의 위치가 시내와 떨어져 있어 지도상으로 가장 가까운 정류장에 내리게 됐다. 내리자 보이는 것은 흔한 버스 표지판도 없는 흙길과 차도뿐이었다. 흙길 옆에는 장작들이 쌓여 있었다. 우프 활동에 장작 패기가 있어 '저 장작을 패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장작을 따라 40분 정도 더 들어가서니 농가를 찾을 수 있었다.
우핑을 가는 길은 설렘과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사진은 기자가 방문한 홍천 흙집 치유동산의 모습./사진= 한국기행
농가에 도착하자 호스트가 반갑게 맞이하며 농가를 소개해줬다. 농가의 크기는 크지 않았지만 흙집과 나뭇잎 모양으로 만든 텃밭들이 짜임새 있게 배치돼 있었다.
우핑을 가는 길은 설렘과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사진은 흙집의 내부 모습. 원형적 구조를 살렸다./사진=박정은 기자
"자기가 살 집을 직접 짓지 않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어요."
집 건축에 직접 참여했다는 호스트는 원형으로 흙집을 지은 이유로 '소통'을 꼽았다. 상담을 공부한 호스트 부부는 소통하는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호스트는 원형으로 둘러앉으면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소통할 기회가 더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프를 하는 것도 노동력을 얻기 위함보다는 '소통'을 하기 위함에 있다"고 강조했다. 호스트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도착 전 막연하게 느꼈던 부담은 한층 가벼워졌다.
━
"쉬운 게 하나도 없어"… 도시 청년의 농촌 적응기
━
기자가 방문한 곳은 농산물 판매가 아닌 자연 체험 활동이 주가 되는 농가였다. 때문에 사람들이 방문하는 봄~가을에는 일이 많지만 겨울에는 일이 많지 않다. 우퍼들은 주로 밭을 가꾸거나 꽃을 따 찻잎을 만드는 것을 보조한다. 하지만 겨울이었건 관계로 밭을 비옥하게 만들고 체험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다.
첫날 농촌 적응은 쉽지 않았다. 장작을 때는 기자의 모습./사진=박정은 기자
첫 번째로 할 일은 장작을 패는 일이었다. 다행히 이곳을 찾는 길에 봤던 나무를 정리하는 것이 아닌 구들방을 데우기 위한 장작패기였다. 흙집은 냉난방을 사용하지 않는 온돌방이라 오늘 밤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장작을 때야 했다. 장작을 모아 불을 지피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구들방의 특성상 방안으로 연기가 새어 나오는 경우도 있어 문을 열어놓고 반나절을 기다려야 하는 등 주의가 필요했다.
첫날 농촌 적응은 쉽지 않았다. 퇴비를 뿌리는 기자의 모습./사진=박정은 기자
두 번째로는 발효된 퇴비를 밭으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호스트는 유기농 기법 '파마 컬쳐'는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나뭇잎을 땅으로 덮어두거나 발효된 퇴비를 사용하는 방법으로 땅을 비옥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외바퀴 수레도 있고 퇴비의 개수도 20여개라 만만하게 봤지만 퇴비 하나의 무게가 20㎏인데다 완만한 오르막길이었다. 다행히 함께하는 우퍼가 있어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다음 작업은 발효된 퇴비를 밭 위에 뿌리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죽은 작물들과 살아있는 줄기들을 구분하기 어려워 진땀을 뺐지만 꼼꼼하게 하기보다 넓게 흩뿌리는 것이 좋다는 호스트의 가르침 하에 작업하니 일은 금방 끝났다.
첫날 농촌 적응은 쉽지 않았다. 구들방에 누워 바라보는 천장. 마음이 안정된다./사진=박정은 기자
일과가 끝난 뒤 단독으로 마련된 숙소에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일과 후 농가 주변을 산책하려 했으나 구들방에 누워 있으니 온몸이 녹아내려 움직일 수 없었다. 연기 배출이 덜 끝나 창문을 열고 있음에도 방의 열기는 후끈했다. 뜨끈한 바닥에 누워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선잠이 드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었다.
함께 휴식을 취하던 우퍼와 호스트 부부 그리고 그들의 아들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식사를 함께하며 우프 활동과 귀농에 대한 여러 얘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모두가 잠든 농가엔 적막만이 가득했다. 평소 잠에 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됐지만 너무 조용한 탓이었나 어떻게 잠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잠들었다.
━
일손이 필요한 곳에 '척척'… 빼놓을 수 없는 낭만까지
━
낭만과 일 모두 즐길 수 있었던 둘째날. 음식을 준비하는 기자의 모습./사진=박정은 기자
둘째 날의 아침이 밝았다. 이날은 홍천군 지역아동센터 청소년들이 방문해 농가에 마련된 목공소에서 방문하는 날이었다. 아침밥을 먹은 뒤 호스트와 함께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호스트는 아이들이 익숙하지 않은 음식에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며 유기농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아이들에게 친숙한 요리를 하기 위해 신경 썼다. 직접 딴 꽃으로 만든 레몬 꽃차와 고구마 크로켓, 감자 구이를 준비해 목공 수업이 끝난 아이들에게 대접했다. 다소 심심한 맛에 처음 반응은 미적지근했지만 달콤한 장미꿀을 찍어주니 어느새 음식은 완판됐다.
낭만과 일 모두 즐길 수 있었던 둘째날. 페인트 칠하는 기자의 모습./사진=박정은 기자
이날 마쳐야 할 업무는 농가 내에 있는 농장 부대시설에 페인트칠을 하는 것이었다. 사다리를 처음 사용해봐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나뭇결을 따라 붓을 움직이니 칙칙했던 농장은 점점 푸르게 변해갔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닭 때문에 가끔 사다리에서 휘청거리긴 했지만 작업은 금방 끝났다.
낭만과 일 모두 즐길 수 있었던 둘째날. 농가에서 바라본 밤 하늘./사진=박정은 기자
"안반데기보다 별이 잘 보이는데?"
이날도 작업이 끝난 뒤 구들방에 누워 선잠이 들었다. 저녁 시간 닭이 우는 소리에 깨 밖으로 나가보니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수많은 별이 반짝였다. 최근 별을 관측하기 좋은 강원도 안반데기로 여행을 갔다왔다던 우퍼는 이곳에서 별이 더 잘 보인다며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 캄캄한 밤, 아직 녹지 않은 눈과 얼음 위로 썰매를 타며 낭만을 즐겼다.
━
"배워보지 않아서 그래요"… MZ도 푹 빠진 '자연'
━
아쉬움이 가득한 마지막날. 톱밥을 까는 기자와 우퍼의 모습./사진=박정은 기자
마지막 날은 밭 위에 톱밥을 까는 작업을 했다. 외바퀴수레를 한번 써봐서인지 작업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첫날에는 2~3시간 걸리던 작업이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작업이 막바지로 향할수록 정든 장소와 사람 그리고 동물들과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커졌다. 작업을 마치고 호스트가 준비해준 꽃차를 마시며 아쉬움을 달랬다.
아쉬움이 가득한 마지막 날. 호스트 부부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사진=박정은 기자
"싫은 게 아니라 경험해보지 않아서 무서워하는 것"
우핑을 진행하며 호스트와 자연, 세대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호스트는 MZ세대가 자연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기자도 처음에는 동의했지만 우프 체험을 하며 기피하는 것이 아닌 잘 모르는 것에서 오는 막연한 두려움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MZ세대가 자연을 경험할 기회가 없어 두려워했던 것이다. 자연을 제대로 경험해본다면 도시와 또 다른 매력에 빠질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