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양민학살사건. (출처: South Korean Government(1951),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거창양민학살사건. (출처: South Korean Government(1951),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51년 2월 10일,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에서 국군에 의해 700여 명의 무고한 양민이 학살당하는 가슴 아픈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지리산 일대에는 공비(빨치산) 활동이 활발했다. 국군 제3사단 제25연대 1대대는 공비 토벌을 명목으로 신원면 주민들을 집단 수용하고, 이 과정에서 공비와 협력했다는 혐의를 씌워 700여 명을 학살했다. 희생자 중에는 노인, 여성, 어린이 등 무고한 주민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사건 직후, 정부는 사건을 은폐하려 했으나, 국회 조사단의 현장 조사와 일부 언론의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국회 조사 결과 사건의 전모가 밝혀져 내무·법무·국방의 3부 장관이 사임했다. 김종원·오익경·한동석·이종배 등 사건 주모자들은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얼마 되지 않아 모두 특사로 석방됐다.

200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출범하면서 거창 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 작업이 다시 시작됐다. 2004년, 1951년 2월 10일경부터 3월 8일까지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에서 국군 제3사단 제25연대 1대대가 작전 수행 중 주민들을 공비(共匪)로 오인하여 719명을 집단 학살한 사건으로 공식 확인됐다.


위원회는 유족들의 증언과 자료를 바탕으로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고, 국가에 대해 사과와 배상을 권고했다. 2021년 10월 당시 김부겸 국무총리는 거창사건 제70주기를 맞아 "우리 군에 의해서 자행된 이 참혹한 과오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를 드린다"고 말했다.

거창 양민 학살 사건은 전쟁의 참혹함과 국가 권력의 남용으로 인해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이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과거사 진실 규명의 중요성과 인권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