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IT 업계를 이끈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왼쪽부터), 김범수 카카오 창업주, 장병규 크래프톤 창업주, 김택진 엔씨소프트 창업주. /그래픽=김은옥 기자
한국 IT 업계를 이끈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왼쪽부터), 김범수 카카오 창업주, 장병규 크래프톤 창업주, 김택진 엔씨소프트 창업주. /그래픽=김은옥 기자


[S리포트] ①한국 벤처 1세대가 이뤄낸 IT 혁명


한국은 1990년대 후반 IMF라는 전대미문의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IT 강국으로 우뚝 섰다. 그 중심엔 인터넷·게임 산업을 개척한 벤처 1세대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 김범수 카카오 창업주, 장병규 크래프톤 창업주, 김택진 엔씨소프트 창업주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개인용 컴퓨터(PC)와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에 성장하며 한국 IT, 게임업계의 근간을 형성했다.


90년대 말 IT 벤처 붐은 서울대학교 동문들이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해진(86학번), 김범수(86학번), 김택진(85학번) 창업주는 물론 고인이 된 김정주 넥슨 창업주(86학번)까지 모두 같은 학교 출신 또래다. 장병규 창업주는 91학번으로 카이스트 전산학과를 나왔지만 그 역시 한국 IT의 황금 시대를 연 장본인이다.

PC가 막 도입되기 시작한 80년대와 90년대 초기 대학 시절을 보낸 이들은 90년대 말로 접어들면서 나란히 청년 창업가로 변신해 인터넷과 게임 산업을 일구며 IT 1세대의 시작을 알렸다.


가장 선배인 김택진 창업주는 모교 동아리 '서울대 컴퓨터 연구회' 출신에서 활약하며 대학 시절을 보냈다. 이 동아리에서 한글과컴퓨터를 창립한 이찬진(기계공학과·84학번), 김형집(전기공학과·86학번)·이희상(전기공학과·89학번)·우원식(제어계측공학과·87학번)과 함께 국민 워드프로세서 '아래아한글'을 개발했다.

김택진 창업주는 최초 인터넷 기반 PC통신 '아미넷'을 공개하면서 놀라움을 안겼고 1997년 엔씨소프트를 세우고 한국 게임의 획을 그은 온라인게임 '리니지'를 선보였다. 리니지는 리니지 라이크(리니지와 비슷한 게임)라는 장르를 탄생시킬 정도로 20년 이상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네이버 이해진과 카카오 김범수는 국내 플랫폼업계의 거물이다. 두 사람은 1990년 서울대학교 졸업 후 삼성SDS에 발을 들였다. 김범수 창업주는 한양대 인근에서 PC방을 운영해 일찍부터 사업가로서의 수완을 발휘했다. 이를 바탕으로 퇴사 후 '한게임 커뮤니케이션'을 설립하고 당구와 고스톱, 바둑 등을 온라인 게임으로 1년 반 만에 회원 1000만명을 확보하며 사랑받았다.

남다른 안목을 지닌 이 창업주 역시 1997년 사내 벤처 프로젝트로 네이버를 설립하였고 1999년 독립 기업으로 분사시켰다. 초기 검색 엔진 사업에서 삐걱거리던 그는 한게임과 합병해 NHN을 설립, 돌파구를 마련했다. 한게임의 안정적인 매출과 방대한 가입자 풀을 토대로 검색 사업을 강화해 네이버는 2004년 포털 시장 점유율 왕좌를 차지했다.

갈라선 이해진과 김범수, 네카오 탄생… 네오위즈·크래프톤 세운 장병규

네이버 카카오 이미지. /그래픽=김은옥 기자
네이버 카카오 이미지. /그래픽=김은옥 기자


두 사람은 2007년 각자의 길을 떠났다. 경영 방향을 두고 대립이 커지면서 김범수 창업주가 스스로 회사를 떠났다. 미국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그는 국내에서 2010년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선보이며 국민 메신저로 키워냈다.

이 창업주도 2011년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메신저 '라인'을 현지화해 일본 스마트폰 메신저 1위를 거머쥐고 압도적인 메신저 플랫폼으로 만들었다. 현재 동남아와 남미 등에서도 위상을 과시 중이다. 선의의 경쟁을 펼치던 두 사람 덕에 네이버와 카카오는 간편결제, 가상자산 시장에 나란히 진출하면서 기업 규모를 빠르게 늘렸다. 포털을 넘어 사업을 다방면으로 확장하면서 국내 양대 플랫폼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장병규 창업주는 크래프톤을 만들었지만 시작은 네오위즈였다. 카이스트 소프트웨어 개발 동아리 '스팍스'에서 프로그래밍 실력을 갈고닦던 시절을 거쳐 석사과정 당시 은사 김길창 카이스트 명예교수가 권유해 창업을 꿈궜다. 1997년 네오위즈홀딩스 이사회 의장 나성균과 함께 자본금 1억원으로 새로운 마법사란 의미의 인터넷 서비스 회사 '네오위즈'를 공동으로 세웠다.

네오위즈는 인터넷 접속 서비스 '원클릭'과 인터넷 채팅 서비스 '세이클럽' 등을 연달아 흥행시키면서 2000년 코스닥에 화려하게 입성됐다. 넥슨, 엔씨소프트와 함께 3N으로 불리며 게임업계의 주역으로 위상을 높였다.

군복무를 마치고 2005년 네오위즈 이사로 돌아온 그는 나성균 의장과 결별하고 검색사업 부문 인력과 함께 인터넷 검색 서비스 '첫눈'(1noon.com)을 설립했다. 50억원을 투자한 지 1년 만에 지분 전부를 NHN(현 네이버)에 팔아 3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차익을 남겼다. 해당 차익의 일부분은 고생한 직원들과 나누면서 호평을 받기도 했다.

장 의장은 2007년 국내 최초 초기기업 전문 투자사인 본엔젤스 벤처파트너스를 공동 창업해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에도 앞장섰다. 같은 해 게임사 '블루홀스튜디오'가 크래프톤의 모태다. 2015년 사들인 블루홀지노게임즈(현재 펍지 스튜디오)가 제작한 FPS 서바이벌 게임 'PUBG: 배틀그라운드(배틀그라운드)'가 메가 히트를 치면서 일약 내로라하는 게임회사 창업주가 됐다. 2021년 코스피 상장까지 마친 후 크래프톤은 약간의 부침을 딛고 현재 넥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두 게임사로 등극했다.

이들 IT 벤처 1세대들은 기업의 성공 이후 지원 직책으로 옮기는 등 경영 2선으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고 전사적 위기가 가중되면서 다시 경영 행보에 나서고 있다. 막후에만 머물기엔 급변하는 경영 환경이 만만치 않은 탓이다.

IT업계 관계자는 "벤처 1세대들은 한때 2선으로 물러서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 다시 경영 전선에 나서고 있다"며 "과거 성공 노하우를 바탕으로 회사의 어떤 변화를 이끌지 주목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