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경북 산불 사태를 계기로 주민 대피 체계의 허점이 드러나 개선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 29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노물리 마을이 산불로 전소돼 폐허가 된 모습. /사진=뉴시스
경남·경북 산불 사태를 계기로 주민 대피 체계의 허점이 드러나 개선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 29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노물리 마을이 산불로 전소돼 폐허가 된 모습. /사진=뉴시스


경남·경북 지역 산불 사태를 계기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주민 대피 체계에 허점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디지털 소외계층을 고려하지 않은 재난 문자 중심 경보시스템, 부정확하고 혼란스러운 대피 안내, 늦은 대응과 일률적인 대피 명령이 피해를 키웠다는 분석이다.


30일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전날 저녁 9시 기준 산불로 인한 사상자는 75명으로 집계됐다. 희생자들 대다수는 급속히 번진 산불로 대피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거나 대피하는 과정에서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가 커진 데는 미흡했던 대피 체계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경북 영덕군은 지난 26일 0시7분 주민들에게 강구면과 남정면으로 대피하라고 안내했다가 30분 만에 그곳까지 불이 번지자 포항 방면 대피로 안내를 바꿨다. 경북 청송군은 지난 25일부터 26일 이틀간 대피 장소를 세 번이나 정정했다. 재난 문자에 대피 장소가 명시되지 않거나 수시로 변경되는 혼선도 있었다. 경북 안동시는 지난 25일 오후 6시7분 '임동면, 임하면 주민들은 즉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시기 바란다'고 발송했다가 1시간 3분 후에야 '임동면 대곡1리, 2리 마을 주민들은 지금 즉시 길주초등학교로 대피하라'고 장소를 명시했다.


산간 지역 고령층 주민들은 재난 문자 기반 경보 체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들은 재난 문자를 잘 확인하지 못하거나, 구형 휴대폰을 사용해 정보 수신에서 누락된다.

이번 산불 사태로 재난 문자에 의존하는 산불 경보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대피 체계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산림청은 지난 1월 41페이지에 달하는 산불 방지 종합 대책을 발표했으나, 대피 관련 내용은 한 페이지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자력으로 대피가 어려운 고령층에게도 정확히 경보를 전달하고 대피를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평소 체계적인 사전 교육과 훈련도 필수적이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재난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주민 스스로 알고 있어야 문자 하나만으로도 반응할 수 있다"며 "특히 고령자와 취약계층에 대한 맞춤형 재난 대응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재난 대응 훈련에서 현장 대응과 상황 판단뿐 아니라 대규모 대피 절차와 조치까지 포함한 종합적인 훈련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