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항공참사'와 '주홍글씨'
홍정표 산업1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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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국내 최악의 항공 사고로 기록된 무안국제공항 참사 발생한 지도 100일을 넘겼다. 탑승자 181명 중 179명이 숨지고 승무원 2명만 생존했다. 작년 12월 29일 오전 9시경 태국 방콕에서 출발한 제주항공 2216편은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에 동체 착륙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콘크리트 둔덕과 충돌해 폭발했다.
사고 당시 항공기 조정사는 콘크리트 둔덕이 없는 1번 할주로 착륙을 요구했지만 공항 관제탑에서 둔덕이 있는 19번 활주로로 착륙을 유도했다는 내용이 최근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해당 항공기 조종사는 세 차례에 걸쳐 1번 활주로 착륙 의견을 전했지만 공항 관제탑이 착륙 직전 19번 활주로로 안내했다는 것이다.
항공전문가들은 당시 사고와 관련된 내용 일체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관할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관제탑과 조종사 간 교신 일부만 공개해 배경이 주목된다. 조사를 통해 관련 내용이 추가로 밝혀져야 정확한 사고 원인이 판명날 전망이다.
유족을 포함한 피해자들이 고통을 호소하지만 이들을 위한 보상 등은 최소 1년 뒤에나 이뤄질 수 있다. 최종 사고 보고서 작성이 완료되는 시점이 빨라야 1년, 길면 1년 6개월은 걸릴 수 있어서다. 사고 원인이 구명되더라도 공항(한국공항공사, 무안국제공항), 항공사(제주항공), 항공기 제조사(보잉) 간 법적 공방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은 훨씬 더 많은 시간 뒤에야 가능하다. 과실 비중에 따라 배상 책임 규모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조사가 진행되지도 않은 사고 당시부터 국토부는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2216편 사고의 공식 명칭을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규정했다. 무안국제공항 잘못은 없냐는 의견이 사회 곳곳에서 제기됐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항공사고에서 국제 표준과 권고에 어긋나는 '참사' 표현을 쓴 것과 관련해서도 논란이 일었다.
사고 명칭에서 지역명이 빠지고 항공사 이름이 들어간 건 표심과 정치적 영향력 차이 때문이라고 얘기도 들린다. 제주항공도 AK그룹과 제주특별자치도가 협력해 만든 곳이어서 제주특별자치도가 나서 제주항공 대신 다른 명칭 사용을 요구했지만 정치권 입김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항공 전문가들이 제주항공 2216편 사고와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참사의 구분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간과됐다. 항공기 운영 주체가 제주항공이지만 참사로 이어진 것이 항공사 잘못만은 아닐 수 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도 항공 사고 명칭으로 '재난' '비극적인 사고' 등을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 특히 사고 원인과 결과가 확정되지 않은 조사단계에선 임시명칭 사용이 권고된다. 임시명칭은 비행기편, 사고·사건으로 짓는다.
종결되지 않은 사고 명칭을 공식화하는 것은 왜곡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항공사 이름을 딴 사고명은 오해의 소지가 될 수 있고, 회사가 문을 닫을 때까지 '주홍글씨'로 남을 수 있다. 사고의 무게가 무거운 만큼 항공사 이미지의 회복이 불가능 할 경우, 소속 직원들(2024년 기준 3205명)이 삶의 터전을 잃을 수 있다.
주홍글씨는 어떤 죄나 잘못을 저지른 사람 등에게 평생동안 따라다니는 정도를 넘어 죽은 후에도 잊힐 권리조차 박탈당하는 꼬리표 같은 것이다. 사고 발생 후 가장 중요한 건 의혹이 남지 않도록 진상을 정확히 규명해 다시는 같은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고 낙인 찍는 것은 옳지 않다. 정부 기관은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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