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해운은 창업주 이씨와 전문경영인 박씨·신씨 일가가 지분을 나눠 가진 구조다. 전문경영인 출신 두 집안은 지주사를 설립해 창업주 일가를 밀어내고 경영권을 확보했으며 혼맥으로도 연결돼 눈길을 끈다./그래픽=김은옥 기자


박현규 명예회장의 별세로 고려해운의 독특한 지배구조가 주목받고 있다. 창업주 일가를 밀어내고 경영권을 쥔 전문경영인 박 씨·신씨 일가가 사돈 관계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3세 승계를 앞둔 상황에서 창업주 일가의 존재감이 여전해 경영권 분쟁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경영권 분쟁이 현실화할 경우 창업주 집안과 혼맥으로 엮인 코오롱그룹도 개입할지도 관심거리다.


창업주 이학철 회장은 1954년 고려해운을 설립했다. 한·일 컨테이너 정기선 운영을 시작으로 해상화물운송주선업, 항공화물운송업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박현규 명예회장은 1970년 고려해운 전무로 영입됐고 신태범 KCTC 회장도 비슷한 시기에 입사해 함께 회사를 성장시켰다.

이 회장이 별세한 1980년 박 명예회장은 고려해운 대표에 올랐다. 5년 뒤 박 명예회장이 대표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이 회장의 아들 이동혁 전 회장과 신태범 회장의 공동 대표 체제가 출범했다. 당시 38세였던 이 전 회장은 젊은 나이로 취임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창업주와 전문경영인 일가의 갈등은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됐다. 2001년 이 전 회장은 당시 회장으로 취임하며 전문준 부사장을 대표로 선임했다. 이를 계기로 내부 균열이 생겼고 박 명예회장은 2005년까지 이사직만 유지했다.

그 사이 박 명예회장의 아들 박정석 현 고려해운 회장과 신 회장의 딸 신정애 씨가 결혼하면서 더 가까워졌다. 두 집안은 고려해운 지분을 사실상 공동 보유하며 경영에서도 손발을 맞췄다. 2004년 이 전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임을 두고 사돈인 박 명예회장과 신 회장이 의도적으로 밀어냈다는 시각도 있다.

2007년부터는 박정석 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이후 2016년 신 회장의 아들 신용화 사장이 경영에 합류하면서 현재의 박 회장·신 사장 체제가 만들어졌다.


2012년 박 명예회장과 신 회장 등은 경영권 강화를 위해 지주사 고려HC를 설립했다. 고려HC 내 박씨 일가 지분은 박정석 회장이 24.68%, 친동생 박주석 부사장이 23.81%로 총 48.49%에 이른다. 신 사장과 친형 신용각 씨는 각각 4.34%, 7.94% 갖고 있다. 사실상 가족회사로 수년째 지분율 변화가 거의 없다.

현재 고려해운은 박씨 일가가 경영권을 쥐고 있지만 3세 후계 구도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난 3월 박현규 명예회장의 별세가 경영권 향방의 변수가 됐다. 박 회장의 아들 박태민 상무가 경영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지만, 이동혁 전 회장도 고려해운 지분 40% 이상 보유가 있다. 이 전 회장은 개인 최대 주주로 회가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창업주 일가가 재계 그룹들과 혼맥을 맺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이 전 회장은 코오롱그룹 2대 회장인 이동찬 명예회장의 3녀 이혜숙 씨와 혼인했다. 여동생 이운경 씨는 홍원식 남양유업 전 회장의 배우자다. 일각에선 코오롱그룹과 회사를 사모펀드에 판 홍원식 남양유업 전 회장이 고려해운 경영권 분쟁에 개입할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현재 고려해운 지분은 고려HC가 42%, 창업주 일가인 이 전 회장이 40.87%를 보유하고 있다. 박씨와 신씨 일가의 지분은 각각 5.53%, 4%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