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파이브' 스틸 컷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한국 영화계 코미디 강자들의 최근작은 다소 실망스러운 성적을 냈다. '타짜' '도둑들'의 최동훈 감독은 '외계+인' 1부(2022), 2부(2024)로 각각 약 154만 명, 약 143만 명, '스물'과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은 '드림'(2023)으로 약 112만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과속스캔들' '써니' 강형철 감독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약 147만 명의 관객이 '스윙키즈'(2018)를 봤다.


그리고 무려 7년 만에 나온 신작 '하이파이브'는 강형철 감독의 흠집 난 자존심을 단박에 회복시켜줄 강력한 한 방이다. 생동감 있는 캐릭터들이 대사로 톡톡 쏘는 유쾌한 티키타카와 '극장용 영화'의 미덕을 의식한 듯 엄청난 속도와 강도로 펼치는 스펙터클한 판타지 액션 장면들은 보는 이들의 속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하이파이브' 스틸 컷


영화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초능력자가 장기를 이식하고 난 뒤 특이한 방식으로 소멸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국가대표 출신 태권도 관장 종민(오정세 분)의 딸 완서(이재인 분)는 심장을 이식받은 후 엄청난 힘과 스피드를 갖게 된다. 하지만 아팠던 딸의 건강을 걱정하는 종민은 전자 시계로 딸의 심장 박동수를 체크하며 전전긍긍한다. 완서는 홀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지만 친구가 없어 늘 외롭다.


그런 완서에게 어느 날 작가 지망생 지성(안재홍 분)이 찾아온다. 장기 이식으로 능력을 얻게 된 초능력자들을 찾고 있는 지성은 그 자신도 폐를 이식받은 후 남다른 폐활량을 얻게 된 초능력자다. 그는 입으로 엄청난 위력의 강풍을 쏟아내는 능력을 발휘하는데 예컨대 재채기하면 눈앞에 있던 물건들이 날아가고 리코더의 마우스피스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자유자재로 연주를 할 수 있는 식이다.

그렇게 초능력을 갖게 된 사람들이 완서와 지성을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신장 이식 후 의문의 능력을 갖추게 된 프레시 매니저 선녀(라미란 분)과 각막 이식 후 핑거스냅 한 번이면 전자기파를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 힙스터 백수 기동(유아인 분), 간 이식 후 치유 능력을 얻게 된 작업 반장 약선(김희원 분)까지.


'하이파이브' 스틸 컷


친구가 필요했던 완서는 같은 사람에게서 이식받은 장기들로 연결된 이들이 생겨 마냥 즐겁다. 그런 그들에게 어둠의 무리가 접근한다. 새신교 교주 영춘(신구 분)의 딸 춘화(진희경 분)이다. 춘화는 죽어가던 아버지가 췌장을 이식받은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장기 이식에 뭔가가 있었음을 직감하고 다른 이식자들을 찾아 나선다. 그 사이 영춘 역시 자신이 젊음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을 깨닫고 회춘해 성공해 젊은 시절의 몸(박진영 분)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다른 장기이식자들의 능력을 탐하며 그들을 찾아 나선다.

'하이파이브'은 세상 시원하게 웃을 수 있는 영화다. '과속스캔들' '써니'의 감독답다는 말밖에 더 할 말이 없다. 게다가 식상하지 않은 웃음을 준다는 점에서도 박수 받을만하다. 유치한 말장난에만 머무르지 않고 갑자기 초능력이 생겨버린 사람들의 상황을 활용한 기발한 액션, 코믹 시퀀스들이 흥미롭다. 가공할만한 재채기 능력이나 기이하면서도 아이디어가 매력적인 초능력을 활용한 야쿠르트 카트 체이싱체이싱 장면을 보면서 웃지 않을 수가 없다.


배우들의 퍼포먼스는 훌륭하다. 이재인은 '써니'의 심은경을 보는 듯 순수하고 느긋한 십 대 소녀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그려냈다. 안재홍은 '안재홍 했다'. 웃기려고 노력 없이 지적인 능력과 콤플렉스를 두루 갖춘 인물을 진지하게 연기했는데 그것만으로 보는 이들을 웃긴다. 라미란은 순진하고 청순한, 감독이 표현했던 '첫사랑 이미지'를 연기했고, 박진영은 대선배 신구를 통째로 삼킨 듯한 2인 1역을 해 보였다. 그밖에 김희원과 오정세, 진희경, 신구 등의 배우들도 적재적소에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하이파이브' 스틸 컷


'하이파이브' 스틸 컷

특히 돋보였던 것은 유아인이다. 유아인은 시작한 지 약 20분쯤 됐을 때 나오는데, '관상' 속 수양대군 등장 신에 필적할 만한 장면을 보여준다. 손가락 스냅 하나로 전자장치를 조종하는 힙스터의 캐릭터는 그만큼 '유아인 맞춤'이다. 연기력을 차치하고 봐도 배우가 가진 특유의 존재감과 스타성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상습 마약 투약 혐의로 재판을 받는 중이기에 이런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의 마케팅에 전혀 활용될 수 없겠으나, 기동의 등장 장면만큼은 앞으로 두고두고 회자할 명장면이 될 것이라 감히 예측해 본다.

신나는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가 다소 느슨해지는 감은 있다.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에서의 쾌감이 크지 않고, 초능력자들의 설정값을 끝까지 명확하게 알기가 어려워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속도감이 좋고 리드미컬한 대사와 코미디가 자칫 지루해질 수 있었던 틈들을 잘 메워준다. 러닝타임 119분. 오는 30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