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2025년 BOK 국제컨퍼런스에서 크리스토퍼 월러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와 미국 경제 전망과 다양한 통화정책 이슈에 대해 대담하고 있다. /사진=뉴시


이재명 정부가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속도를 내면서 금융권에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주도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프로젝트가 정책 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오는 2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은행권 정기이사회 후 오후 6시부터 열리는 시중은행장의 만찬 회동에 참석한다. 한은에선 통화정책과 금융시장을 담당하는 박종우 부총재보도 참석한다.

이 총재는 시중은행장을 만나 이달말 테스트가 종료되는 디지털화폐 실험과 스테이블코인 발행 등 현안 논의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재는 지난달 26일 팀 아담스 국제금융협회(IIF) 회장과 회동을 갖은 직후 시중은행장들을 불러 회의 결과를 공유하고 은행들의 입장을 듣기도 했다. 이 자리에선 한은의 디지털화폐 사업인 '프로젝트 한강'과 '아고라프로젝트' 논의가 이뤄졌다.


한강 프로젝트로 불리는 디지털화폐 테스트는 중앙은행이 발행한 디지털화폐로 국민이 교보문고, 세븐일레븐 등에서 실제로 물건을 구매해 보는 첫 실험이다. 현재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BNK부산 등 7개 은행이 참여 중이며 이달 말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한은이 비트코인, 이더리움 같은 민간 디지털 자산이 법정화폐의 자리를 대체하지 못하도록 중앙은행이 통화 주권을 유지하려는 목적이다. 이 총재는 지난 2일 '2025 BOK 국제콘퍼런스'에서 크리스토퍼 월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와의 대담을 통해 "원화 표시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은행에만 허용할지, 비은행에도 허용할지에 대해 금융 안정 측면에서 다방면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용범 전 차관 정책실장 기용… 스테이블코인 도입 속도

정부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속도를 내면서 한은의 디지털화폐 실험에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기간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필요성을 밝혔고 국내 블록체인 전문 투자사의 싱크탱크 대표를 맡았던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1차관을 대통령실 정책실장으로 기용했다.


김 실장은 해시드오픈리서치 대표 시절이던 지난달 말 보고서에서 은행 뿐 아니라 민간 금융사와 핀테크 기업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가 되는 한국형 구조 시나리오를 제시한 바 있다. 민주당은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과 증권형토큰(STO)의 발행을 제도권 내로 편입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법안은 5억원 이상의 자기자본을 보유한 국내 법인에 한해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고 금융위원회의 인가를 의무화했다. 일반 디지털자산은 발행 신고만으로 유통이 가능하다.


금융권에선 정부의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은이 CBDC를 도입할 경우 스테이블코인의 결제 수단으로 역할이 약화하는 등 이해 상충 우려도 제기된다. 이 대통령은 시절 캠프 정책 자문 싱크탱크 내부에서는 "스테이블코인과 CBDC가 양립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은은 다음달 스테이블코인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 방안을 주제로 콘퍼런스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 총재는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화폐의 대체재라 비은행 기관이 마음대로 발행하면 통화정책 유효성을 상당히 저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지원 KB증권 연구원은 "스테이블코인이란 새로운 금융자산에 어떤 법적지위와 규율체계를 부여하는지에 따라 시장의 안정성과 산업성장 가능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며 "발행주체를 중앙은행으로 한정할 것인지 또는 금융기관까지 확대할 것인지 등에 따라 제도적 성격과 시장의 구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