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K-컬처'는 이제 '글로벌 문화'로 확실히 자리매김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K-팝', 'K-드라마', 'K-예능', 'K-무비' 등은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뉴스1은 지구촌 전역에서 주목 받고 있는 'K-엔터테인먼트'의 주역들을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가 직접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누는 [정덕현의 페르소나K] 코너를 마련, 독자들에게 재미와 정보를 동시에 전달하고자 합니다.
코요태 신지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서울=뉴스1)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코요태는 1998년에 데뷔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세대 혼성그룹이다. 2000년대 초반 가요계를 강타한 히트곡 제조기였고, 현재까지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장수 그룹이다. 모든 멤버들이 노력하고 기여한 바가 크지만, 그중에서도 신지는 코요태의 영원한 홍일점 뮤즈로서 이 그룹의 음악적인 색깔을 만들어온 인물이다.
뛰어난 가창력으로 코요태는 물론이고 솔로 활동으로도 두각을 나타내는 신지는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활약하는 방송인이기도 하다. 특유의 입담으로 기분 좋은 활력을 불어넣는 신지는 코요태의 리더인 김종민과 다양한 케미를 보여주며 방송가에서도 주목받았다.
코요태와 이 그룹의 중심에 선 신지는 복고풍이지만 이를 세련되고 트렌디하게 들려주는 음악적 스타일을 갖고 있다. 그래서 최근 몇 년간 지속된 레트로와 뉴트로의 트렌드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또한 코요태는 그룹 활동과 솔로 활동이 적절히 조화됨으로써 ‘따로 또 같이’를 일찍부터 현실화해 낸 그룹이기도 하다. 각자의 활동이 그룹으로 모였을 때 시너지를 내는 그룹, 그 중심에는 코요태의 영원한 홍일점 뮤즈 신지가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왼쪽)와 코요태 신지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 최장수 혼성 국민그룹 코요태의 바늘과 실
코요태는 흔히들 '국민그룹'이라고 불린다. 1998년에 데뷔해 현재까지도 활동 중인 국내 최장수 혼성그룹이다. 또 걸그룹, 보이그룹으로 나뉘는 경우가 대부분인 K팝 신에서 드물게도 혼성그룹이다. 물론 몇 차례 멤버들이 바뀌기는 했지만 신지는 그 데뷔 시절부터 현재까지 굳건히 코요태를 지켜내고 있는 기둥이다. 이 그룹이 이토록 오래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룹 활동과 더불어 각 멤버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저마다의 활동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특히 김종민과 신지는 방송 활동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왔다.
"종민이 오빠에 비하면 저는 조금 했던 편이죠. 가수가 본업인지 예능이 본업인지 약간 헷갈리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오빠는 가수 할 때를 더 좋아해요. 천재냐 바보냐, 진짜 많이 물어보시는데요, 천재도 아니고 바보도 아닙니다. 다만 머릿속에 생각한 게 입 밖으로 잘 전달이 되지 않을 뿐이죠. 종종 단어 선택이 올바르지가 않아요. 예를 들어서 나는 코요태의 디딤돌이다, 버팀목이다 이렇게 얘기해야 하는데 '걸림돌'이다 이렇게 나오곤 하죠. 아주 일반적인 분이지만 버퍼링이 좀 있다고 해야 하나요?"
'디딤돌'을 '걸림돌'이라고 말한다는 대목에서 말실수에서조차 김종민이라는 코요태 리더의 인간됨이 느껴진다. 말실수는 어쩌면 진심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법이 아닌가. 물론 김종민은 진짜 코요태의 걸림돌이 아니라 버팀목이고 디딤돌이다. 하지만 스스로는 자신을 한껏 낮추고 있다는 걸 그 말실수에서 읽을 수 있다. 그것이 김종민이 오래도록 대중들에게 호감을 주는 이유다. 그렇다면 사적으로 김종민의 진짜 모습은 어떨까.
"김종민 씨와 저는 바늘과 실 같다고 할까요. 함께 활동하고 방송도 함께하기도 했지만 방송에서의 모습보다 사적인 김종민 씨는 더 좋은 분이에요."
코요태 신지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 어려서부터 키웠던 가수의 꿈
1998년 데뷔 앨범부터 코요태는 전국을 휩쓸었다. 수록곡 '순정'은 전국 나이트클럽에서 빠지지 않는 곡으로, 곡이 흘러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오오오~'하며 노래를 따라 하곤 했었다. 데뷔 당시 신지는 고등학생이었다. 그래서 나이트클럽에서 어떤 반응이 있었는지를 알 수는 없던 나이였다.
"성인이 된 후 인천에 있는 나이트클럽 행사를 간 적이 있는데 학교 선생님들이 다 오셔서 제 앞에서 춤추시고 응원해 주셨던 걸 기억해요. 또 데뷔 무대 할 때 '쇼 뮤직탱크'를 아직도 기억하는데 그때도 반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들이 직접 공개홀에 오셔 가지고 응원을 해 주셨어요. 끝나고 다 같이 짜장면 먹었던 기억이 잊히지 않아요."
코요태의 음악은 댄스 음악이 베이스다. 그런데 그 댄스 음악을 뚫고 나오는 목소리가 바로 신지라는 보컬의 저력이다. 당시에도 신지의 가창력은 화제가 됐다. 굉장히 높은 고음을 편안하게 불렀다. 특히 코요태의 곡은 그 고음이 끝없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도 그걸 잘 소화했다. 신지는 어려서부터 노래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고 한다.
"아기 때 세숫대야 위에 올라가서 '개구리 왕눈이'를 그렇게 불렀어요. 그 만화 영화를 너무 좋아했던 거죠. 초등학교 때는 학교 대표로 어린이 창작 동요제를 나갈 뻔하기도 했었고요. 학교에서 늘 구령대에 올라가서 뭔가 해야 되는 일들이 저한테 많이 주어졌었어요. 당시 생활기록부 보면 장래 희망 가수라고 쓰여 있는데 노래하는 거를 진짜 좋아했어요.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율동을 가르쳐주고 하는 게 재밌었던 것 같아요. 제가 내성적인데 노래를 할 때는 달라져요. 내가 이걸 어떻게 할 수 있지 하고 생각하는 것들이 좀 많은데 무대 위에 올라가거나 카메라가 있으면 달라지죠. 물론 힘들고 부침을 겪은 적이 있었는데 그래도 무대가 저한테는 가장 잘 맞는 공간인가 봐요."
코요태 신지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 혼성그룹 코요태의 홍일점이자 메인보컬
코요태는 혼성그룹이다. 걸그룹이나 보이그룹처럼 하나의 성별로 구성돼 있는 팀하고는 음악적으로도 또 활동에 있어서도 조금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6집 앨범 '디스코왕'이 나왔을 때는 하루 행사만 13군데씩 뛰었다. 사실상 거의 멤버들이 함께 먹고 자고 했던 건데 홍일점으로서 불편하기보다는 서로 격의 없어지는 가족 같은 사이가 됐다고 한다. 혼성그룹은 역시 팬덤 자체도 다른 면이 있었다.
"다른 색깔이 있고 팬덤도 조금 달라요. 사실 그렇게 막 좋아하는 팬들이 많이 없어요. 대신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는 건 맞는 것 같아요. 음악적으로 사랑을 받는 건 맞는 것 같은데 개개인으로는 팬덤이 뜨거울 정도는 아니죠.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멤버 옆에 늘 여자가 있고 내가 좋아하는 여자 멤버 옆에 늘 남자가 있으니까."
그렇게 말해도 신지의 인기는 뜨겁다. 최근 유튜브 채널 코요태레비전에 신지가 올린 솔로 곡 영상의 댓글들을 보면 '신지 너무 예쁘다' '목소리 너무 좋다'는 반응들이 쏟아져 나온다.
"본래 혼성그룹은 남자 멤버들이 인기가 많거든요. 근데 저희는 남자 멤버들이 이제 조금 무던하고 팬들과 소통하는데 부끄러움이 많아서 제가 조금 더 활발하게 하는 편이라 감사하게도 저를 좋아해 주시는 오래된 팬분들이 많이 계신 것 같아요."
유튜브 영상에서 솔로로 노래하는 지금의 신지의 목소리는 과거와는 사뭇 달라졌다. 과거 초창기 시절만 해도 고음 위주의 곡을 쭉쭉 뚫고 올라오는 ‘쇳소리’에 가까운 가창력으로 소화했다면 지금은 훨씬 편안하고 원숙해졌다고 할까.
"저는 한동안 제 목소리가 너무 싫었거든요. 왜 그 쇳소리 나는 목소리가 너무 힘들었어요. 녹음할 때 일부러 그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 계속 시키셨던 적도 있죠. 당시에는 음이 낮으면 노래라고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1집 때보다 2집이 더 높아졌고 음역대가 2집 때보다 3집 때가 더 높아지니까 결국에는 성대 결절이 왔죠."
신지는 성대결절을 두 번이나 겪었다. 보통 성대결절이 오면 심리적인 것과 겹쳐 노래를 다시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성대가 붙지 않으니까 호흡이 계속 새는 거예요. 쇳소리만 나고, 뭔가 내가 하고 싶은 음을 정확하게 낼 수도 없고, 그냥 바람 빠지는 소리만 계속 나니까 원래 제가 가지고 있던 파워풀한 소리가 절대 나오지 않더라고요. 무대 울렁증을 겪고 노래를 못하게 되기도 했었는데 쉬는 게 제일 좋다고 하더라고요. 자의로든 타의로든 쉴 수밖에 없었는데 결론적으로는 그러고 나서 제 목소리가 오히려 조금 많이 좋아졌어요. 예전보다 조금 덜 허스키하고."
코요태 신지 ⓒ News1 권현진 기자
◇ 레트로하면서도 트렌디한 매력
신지가 데뷔하던 1990년대 말은 음악에 있어 고음에 강박에 있다시피 한 시절이었다. 고음을 자유자재로 해야 가수라 불렸고, 그것도 진성으로 불러야 인정해 주는 분위기이기도 했다. 요즘처럼 편안하게 듣는 음악이 일반화돼 진성만큼 가성도 많이 쓰는 상황과는 너무나 다르다. 신지는 그 옛 시절의 노래로부터 현재로 빠져나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중이었다,
"약간 창법을 바꿔보기도 하고 보컬 트레이닝도 받아보고, 그러면서 방법을 조금씩 조금씩 완벽하지는 않지만 찾은 것 같고 지금도 찾아가고 있어요. 허스키 보이스도 좋다는 분들도 있지만 가끔 SNS를 보면 비브라토를 쓰는 게 '올드하다'는 이야기도 나오거든요. 그러면 자신감이 좀 떨어지긴 하죠. 또 고음을 예전보다 못 올린다고도 하는데, 그건 사실 올리려면 올릴 수 있겠죠. 그런데 그렇게 또 목이 상해서 가수 활동이 줄어드는 것보다는 적당히 올리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적당히 제가 올려도 사실 낮은 키는 아니거든요."
요즘 음악은 확실히 가창력을 드러내려 하기보다는 음악 자체를 잘 들려주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그래도 사람들은 관성이라는 게 있어서 신지 하면 '고음'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이 바뀐 트렌드 속에서도 그걸 원하는 분들이 여전하다고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유튜브에 올라온 솔로곡을 들어보면 신지의 차분한 목소리가 발라드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저한테는 코요태의 활동도 마찬가지고 솔로 활동도 조금 힘든 점이 있어요. 코요태를 할 때 신나는 댄스곡을 계속하다 보니 솔로 할 때 제가 비슷한 음악을 해버리면 약간 코요태의 보컬이 나와서 겹치는 면이 생기잖아요. 그런 음악을 하면 멤버들한테 약간 해가 되는 것 같고, 저희는 가족이라 그렇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발라드 너무 좋아하는데 발라드로 활동을 많이 하지 못해서 대표님께 죄송스러워요. 다행히 저희 대표님은 제 목소리가 발라드에 잘 어울린다고 평가를 해 주셔서 발라드곡을 계속 주시고 신지 씨 괜찮을 때까지 기다려 드릴 테니 일단 음원이라도 계속해서 도전을 해보자고 하세요."
요즘 레트로가 대세다. 디지털 세상에서 아날로그적인 맛이 주는 특별함이 있어서다. 그런데 올드함과 레트로는 다르다. 쉽게 올드하다고 말하지만, 코요태, 특히 신지의 음악은 레트로다. 여전히 트렌디한 감각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건 신지 스스로의 끝없는 노력의 산물이었다.
코요태 신지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 방송의 당찬 모습 속에 가려진 섬세함
신지는 라디오 진행도 꽤 오래 했다. '싱글벙글쇼'를 2021년부터 2024년까지 했다. 처음 시작은 정준하와 했고 끝은 이윤석과 함께했다. '싱글벙글쇼'가 폐지되면서 하차한 신지는 이 라디오 방송에 남다른 애착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라디오가 갑자기 그렇게 끝나고 한 1년 가까이 방황한 것 같아요. 매일 같은 시간에 매일 출근하던 게 이렇게 없어져 버리니까 약간 사람이 이상해지더라고요. 갈 데가 없어진 거죠. 그리고 프로그램이 바뀐다는 걸 좀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갑자기 알게 됐어요. 그 전년도에 라디오 DJ 우수상을 받고 꼭 최우수상까지 받고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라디오는 라디오만의 장점이 있는데 특히 편하게 갈 수 있어서 좋아요. 초반에 준하 오빠랑 할 때는 좀 슬프고 무거운 내용이 많았다면 윤석이 오빠랑 같이하면서는 좀 밝고 더 젊어진 싱글벙글쇼의 느낌으로 갔던 것 같은데, 사연만 보게 되잖아요. 그냥 다 내 얘기 같은 거예요. 라디오는 직접 그 사람을 대면하지 않아도 사람 사는 이야기를 알 수 있잖아요. 저도 집순이 스타일이라 밖에 잘 활동을 안 해서 의외로 그런 것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게 너무 좋았어요. 또 생방송의 묘미도 있었고요."
최근 들어 김종민이 결혼을 하게 되면서 코요태 멤버들에게도 결혼 이야기를 묻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래서인지 이 시기와 맞물려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지상렬과 보여준 달달한 분위기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의도치 않게 상렬이 오빠랑 그런 그림으로 잡혔는데 본래 기획 의도는 그렇지 않았어요. 첫 촬영에 상렬 오빠 형수님께서 저를 너무 진짜로 마음에 드셨던 거예요. 그래서 녹화 당일 그 흐름이 갑자기 이상하게 바뀌어 버렸죠. 본래는 상렬 오빠에게 어떻게 하면 연애를 할 수 있는지 그런 팁을 주러 가는 거였는데 갑자기 저랑 뭔가 연결되는 분위기가 된 거예요. 사실 저랑 오빠는 그 형수님과 형의 리마인드 웨딩을 미리 경험해 보는 그런 거였죠. 종민 오빠한테 배운 건데 오빠가 롱런하는 이유는 성실함과 제작진에 대한 신뢰거든요. 분위기가 좀 이렇게 흘러가도 너무 심한 게 아니면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이건 방송이 아니라 그 짧은 장면에 대한 여러 기사들이 나와 마치 두 사람이 좋은 분위기인 것처럼 몰아갔기 때문이지만, 둘 사이는 그냥 아주 친한 오빠 동생 사이란다.
"제가 진짜 '찐'으로 촬영하는 날 잠깐 쉬는 시간에 물어봤어요. '오빠 나한테 마음 있니? 지금 너무 크게 이슈가 돼서 나도 당황스러울 지경이야' 그랬더니 너는 그냥 오빠한테 친동생이라고 하더라고요. 나도 마찬가지야 했죠."
연예인이라 의도치 않게 오해를 사고 이슈가 되는 일들이 생기곤 한다. 신지가 팔에 '신지댕'(Shin ji daeng)이라고 새긴 문신이 이슈가 됐던 것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여기에는 단순한 문신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저한테는 굉장히 의미 있는 문신이었거든요. 저한테는 사실 이지선이라는 본명으로 산 시간보다 신지로 산 시간이 더 오래됐죠. 지댕이라는 별명으로 팬들과 호흡한 시간이 더 많기 때문에 저한테는 신지댕이라는 그 단어가 주는 힘이 굉장히 크거든요. 제가 생각보다 많이 유리 멘탈이라서 이런 게 큰 의미도 힘도 돼요. 그래도 예전보다는 단단해졌고 조금 편안하게 넘길 수 있는 면이 있긴 있지만 아직도 여전히 힘든 건 있어요. 아닌 걸 맞다고 얘기하는 게 너무 답답한 거죠. 쌍꺼풀 수술했다고 발표했을 때도 진짜 쌍꺼풀만 한 거 맞냐고 묻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사실이고요. 대신 운동이나 식습관 같은 루틴으로 관리를 많이 해요."
코요태 신지 /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 신지의 여러 얼굴 그리고 가능성
신지가 스스로를 유리멘탈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적이 놀랐다. 방송에서 보여주는 똑 부러지고 당찬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서였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신지라는 인물이 얼마나 섬세한 사람인가가 느껴졌다.
"예전엔 그게 서운했거든요. 근데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제가 방송에서 보인 모습들은 그게 다기 때문에 그분들은 그런 모습을 저로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27년 동안 그런 이미지로 그런 모습으로 시청자 여러분께 보이다 보니까 그런 신지의 모습이 익숙해서 멤버들이 가끔 신지가 생각보다 굉장히 여리고 눈물도 많고 상처도 잘 받는다고 해도 믿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누구나 여러 가지 얼굴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방송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어떤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되고 그 일면만 보이게 되는 경향이 있다. 신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보면 볼수록 방송에서 봤던 것 이상의 다양한 면모들이 느껴지는 신지였다.
"사실 라디오도 예전엔 생각도 못 했고, 뮤지컬은 제가 너무 무대 울렁증이 심해서 제안이 많이 들어왔어도 못했죠. 연기도 사실 '거침없이 하이킥'이 굉장히 잘 됐는데 그 캐릭터가 너무 무겁고 힘들어서 사무실에서 중간에 하차하라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제가 끝까지 버틴 거거든요. 근데 지금은 많은 분들이 오히려 그때의 신지를 이해할 수 있다고 얘기들 하시더라고요. 연기는 기회가 된다면 또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스스로 유리멘탈이라고 할 정도로 쉽지 않은 나날들도 있었지만 신지를 버티게 해준 건 역시 코요태라는 그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코요태는 어떤 존재냐는 질문에 그녀는 '집'이라고 했다. 힘들어서 다시 돌아와도 언제든 쉴 수 있는 집 같은 존재. 하지만 나는 그녀가 가끔씩 그 집을 나와서 바깥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좀 나오고 싶은데 원래 집순이 스타일이어서. 멤버들이 뭔가를 먼저 시작하면 제가 집을 나오기가 좀 쉬울 텐데 멤버들도 그다지 집 밖을 나가려고 하지 않은 것 같아서."
사실 그 집은 신지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이라기보다는 그녀가 지키고 있는 집에 가까웠다. 하지만 집이란 밖으로 나와도 여전히 집이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 신지는 코요태라는 집을 베이스로 해서 계속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쌓아왔던 거였다. 앞으로의 솔로 활동이나 연기, 뮤지컬, 방송 그 무엇이든 마음껏 펼쳐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바로 그 과정을 통해 이미 준비된 거였다.
"저도 이제 솔로로도 자신감 있게 무대에 서는 게 목표이기도 하고 또 제 주변에 계신 모든 분들이 바라는 모습이기도 해요. 김종민 씨나 빽가 씨도 너무너무 응원해요. 김종민 씨는 매번 나는 신지 너의 목소리를 너무너무 사랑한다고 하고, 빽가 씨도 '네가 솔로로 무대에 서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죠."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왼쪽)와 코요태 신지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 신지와 코요태, 따로 또 같이의 성장
최근 신지는 유튜브 개인 채널 '어떠신지?!?'를 개설했다. 이미 코요태 채널은 있지만 개인 채널은 처음이다. 일상 브이로그에 가까운 채널인데, 신지의 모습과 더불어 이지선이라는 자신의 모습 또한 이 채널을 통해 보여줄 거란다.
"저는 유튜브를 잘 모르는데 이제 개인 채널을 슬슬 시작하려고 해요. 대표님께 상의를 드렸는데 쿨하게 '네, 신지 씨 해보세요. 그런 것도 해보셔야 경험이 되는 거예요'라고 해주셔서 시작하게 된 거죠. 무대 위에서의 신지 말고 무대 아래에 서서 지댕이. 평소 지선이에 가장 가까울 때의 모습들을 많이 보여드리려고 해요."
신지는 한결 편안한 얼굴이었다. 코요태를 통해 성장했고 이제 신지로서도 새로운 길을 열어나가려는 참이다. 그녀에게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물었다.
"예전에는 제가 남들의 시선에 대한 강박관념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저 스스로가 뭘 하고 싶어도 눈치를 보고, 본인을 좀 사랑해 주지 못했던 것 같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일이라면 저 자신을 좀 사랑해 주면서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좀 하면서 살아가야 나중에 덜 후회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는 눈치 보면서 좀 끌려다녔다면 이제는 제가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만큼 저 자신을 좀 단단하게 만들고 좀 사랑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어요."
최근 들어 가요계의 활동은 '따로 또 같이' 방식이 대세다. 그룹 활동을 하면서도 각자 개인 솔로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 개인에게도 그룹에게도 시너지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코요태는 바로 이 따로 또 같이 방식을 일찍이 성공적으로 해온 팀이 아닐 수 없다.
"저는 김종민 씨와 빽가 씨가 그렇게 둘이 노래를 좀 한번 냈으면 좋겠어요. 저 없이. 그렇게 집에 있는 엄마를 좀 벗어나서, 그 둘도 뭔가를 독립적으로 하면 콘서트 할 때 저도 쉴 시간이 있잖아요(웃음). 그러니까 저는 좀 멤버들도 그런 재밌는 무언가를 더 늦기 전에 해봤으면 좋겠어요."
코요태는 현재도 왕성히 활동하는 최장수 혼성그룹이다. 그런데 이 혼성그룹이 이렇게 오래도록 이어올 수 있었던 힘은 레트로 하면서도 세련된 트렌디함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과 더불어, 그룹 활동과 개인 활동을 일찍부터 '따로 또 같이' 해온 유연함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속에서 신지라는 홍일점 뮤즈는 단단하게 코요태라는 집을 지켜온 장본인이다. 이제 그녀는 코요태 활동과 더불어 솔로 가수 신지로서의 활동 또한 펼쳐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이미 국민그룹이라고 얘기될 정도로 혼성그룹으로서 K팝 가요사에 중요한 한 줄을 그은 페르소나지만, 앞으로의 행보도 기대되는 팀이다. 무엇보다 좀 더 단단한 모습으로 세상 밖으로의 행보를 준비하는 신지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