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주도의 '뉴 스페이스' 시대가 도래한 가운데 KAI에 대한 과도한 정부 개입이 경쟁력 저하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 강화를 위해 민영화를 통한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KAI


민간이 우주산업을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업 간 기술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관련 분야를 선도하고 있지만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경쟁력에 한계를 보인다는 지적이다. KAI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위해 민영화를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과거 우주산업은 군사·안보 목적에 따라 국가 주도로 성장해 왔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 미국의 스페이스X가 저비용 로켓 발사에 성공, 민간 주도의 우주산업 시대가 열렸다. 민간 기업 차원의 투자와 기술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우주산업의 중심축도 국가에서 민간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는 글로벌 우주항공 시장 규모가 2030년까지 2037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우주산업은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국가의 미래 생존 전략과 직결되는 분야로 주요국들은 관련 산업 개발, 민간 기업 육성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한국 정부도 5대 우주 강국 도약을 목표로 지난해 우주항공청을 출범시켰다.


국내 대표 우주·항공기업 KAI는 항공기부터 위성과 발사체를 아우르는 기술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오랜 시간 우주항공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 왔지만 글로벌 경쟁력은 여전히 미비한 수준이다. KAI가 세계적인 우주항공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이재명 정부가 민영화 추진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해외 민간 우주 기업들은 신속한 의사결정과 과감한 투자로 국가 주도의 '올드 스페이스'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반면 국책은행이 대주주로 있는 KAI는 경영 자율성이 제한되고 과감한 투자가 어려운 구조다.


현재 KAI의 최대 주주는 지분 26.41%를 보유한 한국수출입은행이다. 형식상 민간 기업이지만 정부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장도 '낙하산 인사'로 교체된다. 대부분 관료나 군 출신으로 우주항공 산업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우주항공 산업은 개발부터 상용화까지 10년 이상 소요되는 장기 프로젝트가 대부분이지만, KAI 사장의 임기는 3~4년으로 짧은 편이다. 측근 중심의 조직 개편이 이뤄지며 내부 갈등이 불거진 사례도 있다. 현 강구영 사장은 취임 후 임원 및 팀·실장급 직원들을 대거 해임했는데 이 과정에서 FA-50과 KF-21 개발을 함께한 35년 경력의 베테랑 엔지니어 류광수 전 부사장이 회사를 떠났다.


업계에서는 KAI의 최고경영자(CEO)로 대기업에서 경영 능력을 검증받은 인물이 선임돼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손재일 대표가 좋은 사례로 꼽힌다. 손 대표는 1990년 한국화약에 입사한 이후 30년 넘게 한화그룹에 몸담으며 방산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재임 기간 동안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역대 최대 실적을 갱신하며 코스피 시가총액 5위에 오를 정도로 성장했다.

스페이스X, 블루오리진, 버진갤럭틱 등 해외 주요 우주항공 기업들도 대부분 민간 기업으로 전문경영인 체제를 갖추고 있다. 국영 기업을 제외하면 KAI와 같이 관료나 군 출신이 CEO에 임명되는 사례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방산 업계 관계자는 "공군 조종사 출신이라고 해서 전투기를 잘 알 수는 있지만 이를 세일즈하면서 회사를 경영하는 일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라며 "경영 자질에 대한 검증 없이 이뤄지는 낙하산식 인사는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KAI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민영화가 검토되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