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팬텀'에서 주인공으로 출연 중인 카이(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내가 어떤 배경이나 외모, 경제력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내 부족함과 결핍까지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사람과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뮤지컬 배우이자 팝페라 가수 카이(44·본명 정기열)는 "'팬텀'은 겉으로는 기형적인 얼굴을 가린 가면을 소재로 하지만, 그 안에 깊은 은유가 담겨 있는 작품"이라며 이 뮤지컬의 '숨겨진 의미'를 설명했다. 12일 서울 강남구 이엠케이(EMK)뮤지컬컴퍼니 사옥에서 열린 '팬텀' 10주년 기념 라운드 인터뷰 자리에서다.


카이는 "작품 속 '가면'은 우리 모두가 저마다의 상처와 아픔, 기형적으로 비틀어진 마음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상징하는 메타포"라며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우리 삶은 가치 있고, 짧기에 더욱 소중하다"고 했다.

뮤지컬 '팬텀'은 프랑스 추리 소설가 가스통 르루(1868~1927)의 '오페라의 유령'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흉측한 외모로 인해 세상에 버림받은 천재 음악가가 가면 뒤에 숨겨진 자신의 아픔과 사랑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작품은 파리 오페라하우스를 구현한 3층 구조의 대형 무대와 빠른 장면 전환 등으로 몰입감을 높여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제11회 골든티켓어워즈 대상을 받은 바 있다. 2015년 국내 초연 이후 꾸준한 사랑을 받아 올해 다섯 번째 시즌을 맞았다. 이번 시즌은 스토리와 무대 구성은 이전과 동일하지만, 음악과 대사 일부를 과감히 삭제해 러닝타임을 20분가량 단축했다.

팬텀 역 이미지. 왼쪽부터 박효신, 카이, 전동석.(EMK뮤지컬컴퍼니 제공)


10주년 맞은 '팬텀', 롱런 비결은


10주년 공연을 맞은 소감을 묻자, "초연 때부터 했기 때문에 10년이 흘렀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마음만큼은 처음 시작했던 때와 같다"며 "나이가 훌쩍 지나 돌아봤을 때 배우로서 후회하고 싶지 않아, 10년간 컨디션·체력·내면 관리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팬텀'의 롱런 비결에 대해서는 "원작 소설인 '오페라의 유령' 자체가 팬텀이라는 인물, 숭고한 사랑, 초현실적인 상상력 등 뮤지컬화 되기에 매우 뛰어난 요소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그 지점을 연출자인 로버트 요한슨이 무대 위에서 극대화해 잘 표현한 덕분이다"라고 했다.


카이가 생각하는 '팬텀'의 매력은 뭘까.

"'순수함'이요. 요즘은 많은 콘텐츠가 천천히 진행되는 사랑을 '지루함'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팬텀'이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지극히 순수한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또 그 사랑을 표현하는 무대적 장치들이 정통적인 예술의 형태라는 점도 '팬텀'만의 고유한 매력이라고 보고요."

카이가 보는 박효신과 전동석

카이는 이번 '팬텀' 무대에서 주인공 '에릭' 역을 맡아 박효신·전동석과 번갈아 무대에 선다. "박효신은 명실상부한 보컬리스트다, 호소력 짙은 음색으로 팬텀 역할을 훌륭히 소화한다, 저나 전동석 배우처럼 뮤지컬에 자주 출연하진 않지만, '팬텀' 연습 과정에서 깊이 있는 시각과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전동석은 뮤지컬 무대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저도 여러 작품에서 함께 무대에 섰다"며 "배우로서 깊은 고민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단순히 '잘생긴 배우'로만 평가되기 아까운, 매우 진지한 배우"라고 말했다.

팬텀 역의 카이(EMK뮤지컬컴퍼니 제공)


한세대학교 공연예술학과 교수이기도 한 카이는 "교수 이야기만 나오면 부끄러워서 땀이 날 정도"라며 "학생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는 편이지만 딱히 지도 편달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성악과 교수였다면 발성의 옳고 그름에 대해 이야기했겠지만, 뮤지컬은 개성이 거의 90%를 차지한다고 본다"며 "획일화된 가르침으로 학생들 개성을 훼손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학생들에게 늘 "기본기에 충실하라"는 조언을 잊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최근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토니상 6관왕을 수상한 데 대한 소감도 전했다. "한 사람의 '뮤덕'(뮤지컬 덕후)으로서 정말 자랑스럽다"며 "어떤 일이든 물꼬가 트이면 한순간에 붐이 일기 마련인데, 이번 수상이 계기가 되어 한국 뮤지컬이 해외에서 더 주목받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개막한 '팬텀' 10주년 공연은 오는 8월 11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