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한의 역사 크루즈] 한국전쟁 76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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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임용한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이념적 창작과 자기 비하
내가 대학생일 때까지만 해도 한국전쟁에 관한 교육, 영화, 드라마가 차고 넘쳤다. 그러나 이것이 반공교육이라는 명분으로 체제 이데올로기적인 목적이 앞서다 보니 감추고 왜곡하는 부분도 있었다. 꽤 정직하고 사실적인 내용도 없지 않았지만, 옥에 티 같은 부분들, 소아병적인 제약이 감정적인 반감을 쌓았다.
그 잠재적인 반감은 생각보다 놀라웠다. 민주화가 되고 학문과 토론의 자유가 확대되면서 감정적 반발이 권위주의 시대에 대한 비판과 어우러졌다. 21세기에 만들어진 한국전쟁에 관한 아주 유명한 모 영화에서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분들이라면 남과 북을 가리지 않고 다 기절할 만한 환상적인 내용들이 가득하다. 더 놀라운 건 수많은 사람이 그 에피소드들을 사실로 믿는다. 이제는 제작진들도 저런 이야기를 사실로 믿고 만들었나 싶다.
영화나 드라마는 그렇다 치고 학자들의 글은 이성적 합리적이지 않을까. 아니다. 내가 수십 년을 학계에서 살아 본 사람으로 하는 말인데 학문이 이성적, 객관적이라는 건 이상이지 현실이 아니다. 학자의 연구와 글도 감정과 편견, 천박한 이데올로기의 세례를 극복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이건 우리나라 학계만의 문제가 아니고 세계적으로도 그렇다.
한국전쟁의 원인에 관한 미국 학계의 견해를 예로 들어 보겠다. 한국전쟁을 2차 대전 후의 세계와 냉전 구도, 미국과 소련의 분단이라는 책임감에서 보는 시각과 해방 후 한국의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두고 벌린 내전이라는 양대 시각이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전쟁에는 이 두 가지 요소가 다 있다. 또한 이 두 가지 요소는 각국의 지정학적 구조, 내적 역사, 문화적인 구조에 따라 갈등의 방식, 터져 나오는 사건, 양상이 다르기는 했지만, 2차 세계 대전 후에 제3세계 국가들 거의 모두가 겪었던 갈등이다.
이처럼 당연한 사실을 두고, 학자들은 왜 이런 이분법적인 논쟁을 벌일까. 속셈이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보통 수정주의 학파라고 불리는, 한국전쟁을 내전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미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자체가 잘못이라고 전제한다. 지구 반대편, 남의 나라 전쟁에 쓸데없이 간여해서 미국 젊은이들이 무의미한 피를 흘렸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해진 결론을 가지고 한국전쟁을 바라보니 한쪽 면만 쳐다보며 한국전쟁사를 풀어간다. 통일 한국이 사회주의 국가가 되어야 했다고 믿는 학자 중에는 이 견해를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많다.
한국전 초기 대응 전술은 범죄이다?
한국전쟁은 불필요한 전쟁이었다는 관점에서 보니 개전 직후 다급했던 상황, 미군의 전술에 대한 군사적인 평가도 달라진다. 일본에 주둔 중이던 미8군은 한국군과 북한군의 격차가 이렇게 클 줄 몰랐다. 서울이 3일 만에 함락되자, 다급했던 8군 사령부는 미군 부대를 준비되는 대로 축차적으로 투입한다.
당시 한국군의 잔존병력은 병력과 화력 모두 부족해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방어선을 형성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용감하게 대전이나 충주, 청주에서 버틴다고 해도, 좌우로 공간이 많아서 북한군은 쉽게 우회, 포위하여 섬멸할 수 있다. 게다가 지속적인 전투를 벌일 수 있는 탄약과 장비는 태부족이었다.
그랬기에 미군은 급한 대로 대대, 연대, 사단 순으로 차례로 병력을 투입했다. 한 번에 투입하면 좋았겠지만, 소집할 시간도 부족하고, 병력과 장비를 수송할 수송 수단도 극도로 부족했다. 덕분에 방어선을 양분해서 서쪽은 미군이 동쪽은 한국군이 맡는 분담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미군도 병력과 훈련, 장비 모두가 부족해서 절반의 방어선도 제대로 커버할 수가 없었다.
미군 사령부는 미군이 참전했다는 사실만으로 북한이 공세를 자제해 주기를 바랐다. 병사들에게도 북한군이 겁을 먹고 싸우지도 않고 전쟁을 그칠 것이라는 말로 허세를 부렸다. 미군 사령부가 북한군의 실력을 얕잡아 본 건 사실이지만, 이런 말 때문에 너무 과장이 되었다. 주일 미군은 전쟁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고, 한국의 상황이 급박했기에 준비 안 된 병사들을 희생을 무릅쓰고 투입했던 것이다. 낙동강 방어선 이전까지 조기 투입된 미군들은 무참한 망신을 당하고, 전력 절반을 잃었다.
이를 두고 수정주의파들은 미군 지휘관들에 대해 범죄행위라고 힐난한다. 그러나 이 축차 투입과 희생이 없었더라면 7월 하순쯤에 부산은 함락되었고, 지금 대한민국은 북조선 인민공화국이 되어 있을 것이다.
애초에 미국이 간여하지 말았어야 할 전쟁이라는 입장, 오로지 미국 국민이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축차 투입에 대한 비난을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이런 견해를 수용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
한국군은 무능했을까?
이제 한국군으로 돌아오면 전쟁 전후에 보인 권력층의 태도, 전쟁 준비 부족, 그 결과로 빚어진 3일 만의 서울 함락 등 초기 전황이 워낙 충격적이었다. 이런 패전을 겪으면 항상 두 가지 현상이 발생한다. 하나가 책임 전가를 위한 마녀사냥이고, 하나가 감정 위로를 위한 억지이다.
전쟁은 비극이고 패전은 더 큰 비극이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냉정하고 과학적인 분석 태도를 지녀야 한다. 화를 주체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잘못도 원인과 이유를 정확히 분석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런 분석을 변명이라고 생각하고, 감정적 분노와 비판을 정의 구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전쟁 직전, 국방부와 육군 참모본부의 오류는 정치인과 권력자들이 군의 최고 지휘부를 실력이 아니라 정치적 의도로 구성한 탓이 제일 크다. 국방부 장관 신성모는 영국에 유학해서 항해사 자격을 획득한 선장 출신이었다. 그러나 그가 바다에서 화물선이라도 지휘해 보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회사의 내근직이었을 가능성도 높다고 한다. 능력을 떠나서 그를 만났던 장군들의 평가를 보면 전쟁 중에도 그는 언제나 정치적인 사람이었고, 군을 이해하지도 이해하려도 하지 않았다.
육군 참모총장 채병덕 장군은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당시 35세였다. 뚝심도 있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군수, 회계, 조직관리 능력은 우수했지만, 일선 부대 지휘관을 해 본 적이 없다. 독일의 군사 영웅, 몰트게의 경우를 보면 참모총장이 야전 경험이 없다는 게 반드시 흠이 되진 않는다. 그러나 1950년의 참모총장 역할은 그에겐 버거웠다. 더 뛰어난 장군들이 있었음에도 노장 취급을 해서 이선으로 물리고, 채병덕을 참모총장에 임명한 건, 정치적 이해관계가 원인이었다. 어떤 나라도 정치적 이해가 군을 과도하게 억압하면 반드시 이런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인류사의 영원한 교훈으로 지금도, 앞으로도 예외가 아니다.
병사들로 돌아오면 북한군에는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에서 전투 경험을 쌓은 팔로군 출신들이 주전력이었다. 전체 10개 연대 규모로 거의 절반에 해당한다. 팔로군 사단이 그대로 북한군 사단으로 이름만 바꾼 경우도 있다.
훈련과 조직력, 전술적 완성도에서 분명 북한군이 한국군보다 우월했다. 그러나 이를 강조하다 보니 한국군은 무능하고 훈련도 되어 있지 않았던 부대로 너무 낮추는 경우가 발생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예를 들면, 한국 공군에는 전투기 자체가 없었으므로 북한군 전투기 조종사들은 미군 참전 전에는 절대적 우위를 누렸다. 그러나 북한군 조종사들도 일류 파일럿은 아니었다. 고난도 선회는 하지 못했으며 기본적인 비행술만 익힌 상태였다. 육군도 기본적인 전술은 익혔지만, 응용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무술로 치면 몇 가지 초식을 배워서 무조건 외워서 사용하는 식이었다.
한국군에 대한 가장 모욕적인 이해는 북한군은 그래도 이념과 목적이 확실하고 질서가 잡힌 군대였고, 한국군은 목적의식도 의욕도 부족하고 그저 일자리가 없어 생계를 위해 군에 들어온 어중이떠중이 집단으로 보는 견해이다. '장교들은 무능하고 병사들보다 더 의욕이 없다'라거나 '부정부패가 만연해서 병사들은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굶주리고, 구타와 체벌은 가혹하다' 등과 같은 견해는 의외로 좌우 이념을 가리지 않고 만연해 있다. 한국전쟁을 다룬 모 장편소설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기정사실화한다.
군대는 민간인 기준에서는 불편한 조직이다. 아무리 괜찮은 군대라고 해도 평상시에 민간의 시선으로 보면 이런 모습들이 두드러져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비약해서 가치관이 확립된 북한군과 군인정신도 없고, 될 대로 되라 식의 국군으로 나누는 건 극악한 비약이다.
개전 첫날부터 낙동강까지 국군이 형편없이 무너진 것처럼 보이지만, 열세이고 전략적 실수로 군이 단숨에 궤멸된 상황에서 이 정도 투지와 용기, 군인정신을 보여주는 군대는 드물다. 물론 겉모양만 봐서는 전혀 훌륭해 보이지 않고, 무능하고 비겁한 장교나 병사도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댐이 터져 물이 몰려오는 상황에서 도망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이 나라 사람들은 겁쟁이다. 비겁하다'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세계 최상급의 군에 비하면 모든 면에서 부족했다. 그러나 소수의 선진국을 제외하고 세계의 90% 국가 군대보다 못하지는 않았다. 자질과 투지, 애국심, 책임감에서는 더욱 그렇다.
현재에도 벌어지는 좌우 대립, 이념 갈등과 편견 때문에 아직도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들의 용기와 헌신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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