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철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바탕으로 US스틸 인수 절차를 마무리하고 있다. 사진은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수출 야적장에 철강 제품이 쌓여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공식 승인하면서 한국 철강업계에 새로운 위협 요인이 떠올랐다. 일본제철은 미국 정부에 핵심 경영 사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황금주'(golden share)를 무상으로 제공하며 미국의 신뢰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내 보호무역 강화 흐름 속에서 일본 철강업계 입지가 커진 반면 한국은 수출 전략 전반의 재정비가 불가피해졌다.


16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일본제철은 이르면 오는 18일 US스틸 인수 절차를 최종 마무리한다. 지난 14일 미국 정부와 체결한 국가안보협정(NSA)에 따라 일본제철은 총 141억달러(약 19조2860억원)를 투입해 US스틸 지분 전량을 인수키로 했다.

일본제철은 핵심 자산의 매각·이전·합병 등 주요 경영 의사결정에 대해 미국 정부가 사전 승인권을 갖도록 했다. 이 협정의 일환으로 미국 정부는 일본제철로부터 황금주를 무상으로 발행받게 되며 이를 통해 전략 산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직접 개입이 가능해진다.


민간기업이 타국 정부에 황금주를 제공하는 것도 이례적이다. 일본제철이 이러한 파격적인 조건을 수용한 배경에는 미국 내 생산기지 확보를 통한 장기적 실익이 그만큼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본제철은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세계 1~2위권을 다투던 글로벌 철강사였지만 이후 중국과 인도 등 신흥 철강사의 약진 속에 5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이번에 US스틸의 연간 1400만톤 생산능력을 흡수하면 일본제철은 연간 8600만톤 이상을 생산하는 글로벌 '톱3' 철강사로 도약하게 된다.


고부가가치 시장인 미국 내 생산 거점을 확보하려고 했던 것도 이번 인수 추진의 핵심 배경이다. 최근 미국은 인프라 투자 확대, 전기차 산업 성장, 에너지 전환 등으로 고급 강재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입 철강에 최대 5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미국 우선주의'(Buy American)를 강화했다.

일본제철은 이번 인수로 수출 규제를 우회한 데 그치지 않고 미국 내 생산 기반을 확보했다. 자동차강판 등 고부가 제품을 현지에서 생산할 수 있게 돼 북미 시장 공략에서 유리한 입지를 선점하게 된 것이다.


한국 철강업계는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가 본격화되면서 파급 효과를 분석하고 대응 전략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미국의 고율 관세 정책으로 이미 수출 경쟁력이 약화된 가운데 일본 철강사의 현지 생산 확대는 한국 제품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국 철강사들은 2018년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 발동 이후 지속적인 수출 물량 제한과 관세 부과 압박을 받아왔다. 일본제철의 이번 US스틸 인수로 미국 내 '현지 생산+정책 우호' 구도가 더욱 공고해지면서 일본 철강사들이 구조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확보하게 됐다.

일본제철의 현지화 전략을 계기로 한국 철강업계도 단순 수출 중심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응해 현지 투자 확대, 합작사 설립, 생산거점 다변화 등을 본격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스코와 현대자동차그룹이 지난 4월 미국 루이지애나에서 합작 제철소 투자 계획을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 차원의 외교·통상 대응 역시 중요해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강화 기조가 장기화할 경우, 정부의 협상력과 대응 전략이 산업 경쟁력 유지의 핵심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박광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인수로 글로벌 철강산업의 경쟁 구도가 재편될 것"이라며 "일본제철은 US스틸을 품음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기술과 자본을 결집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