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오브 킹스' '이 별에 필요한' 포스터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상반기 극장은 침체가 이어졌다. 지난해 상반기 '파묘'와 '범죄도시4'가 각각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희망을 주었던 것과는 달리, 올해는 가장 크게 흥행한 작품이 누적 관객 300만 명대에 머무를 정도로 관객 동원이 힘들었다. 그뿐 아니라 5월 열린 제78회 칸 영화제에서는 3년 연속 한국 영화의 경쟁 부문 진출이 불발됐으며 공식 섹션에 시네파운데이션 초청작인 '첫여름'(감독 허가영) 말고는 단 한 편도 초청되지 않아 '한국 영화 위기론'에 힘을 실었다. 이처럼 침체한 분위기 속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은 감지됐다. 예술성에서도 기술력에서도 수준을 인정받은 K애니메이션은 위기 가운데 좋은 성적을 냈고, 신규 배급사인 바이포엠스튜디오는 남다른 전략으로 가뭄 속 괄목할 만한 결실을 이뤘다. 또 업계 2위와 3위 멀티플렉스 체인 롯데컬처웍스와 메가박스중앙은 합병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 극장 살리기에 나섰다.

◇ K애니메이션의 부상

올해 2월 개봉한 애니메이션 '퇴마록'은 최종 5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퇴마록'은 특별한 능력을 갖춘 퇴마사들이 절대 악에 맞서는 대서사의 시작을 담은 오컬트 블록버스터. 90년대 나와 누적 100만부를 판매, 'K-오컬트 바이블'로 불리는 이우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애니메이션은 원작의 팬인 4050 세대에 이어 20·30세대까지 사로잡으며 팬덤을 형성했다. 팬데믹 이후 애니메이션은 극장에서 강세를 보여준 장르였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490만 명) '스즈메의 문단속'(557만 명) '엘리멘탈'(723만 명) '인사이드 아웃2'(879만 명) 등 일본과 미국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뜨거웠다. 최근 들어서는 이와 별개로 한국에서 기획하고 제작한 애니메이션이 주목을 받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데, 지난해 8월에 개봉해 124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은 '사랑의 하츄핑'이 대표적이다.


올해도 주목받는 국산 애니메이션이 등장했다. 오는 7월 16일 개봉을 앞둔 '킹 오브 킹스'(감독 장성호)다. 예수의 삶을 다룬 '킹 오브 킹스'는 우리나라 VFX 1세대인 장성호 감독의 제작사 모팩스튜디오에서 제작하고, 장성호 감독이 직접 연출했다. 이 애니메이션은 우리나라보다 미국에서 먼저 개봉, 북미에서 박스오피스 수익 6000만 달러(약 815억 8200만 원)를 벌어들였다. 이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의 흥행 성적을 뛰어넘는 기록이다. '킹 오브 킹스'뿐 아니라 넷플릭스를 통해 지난달 30일 공개된 애니메이션 '이 별에 필요한'(감독 한지원)은 감각적인 그림체와 이야기, 음악, 김태리·홍경의 내레이션으로 글로벌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더불어 올해 칸 영화제 병행 섹션인 비평가 주간에 초청받은 유일한 한국 작품 '안경'(감독 정유미)도 단편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K애니메이션 장르의 부상을 예감하게 했다.

영화 '승부' 스틸 컷


◇ 위기판의 다크호스? 바이포엠스튜디오


극장가에서 배급사 바이포엠스튜디오의 존재감도 두드러졌다. 바이포엠스튜디오는 올해 '히트맨2'에 이어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승부' '바이러스' '노이즈' '태양의 노래'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배급했다. 그중에서도 '히트맨2'은 누적 254만명 이상, '승부'는 214만명 이상을 동원하며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톱2위와 4위에 각각 랭크됐다. 영화 '동감'(2022)의 메인 투자사로 영화 사업에 뛰어든 바이포엠 스튜디오는 지난해 12월 개봉한 영화 '소방관'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흥행을 맛봤고, 상반기 무려 6편의 영화를 내놓았다. 이는 국내 메이저 배급사인 CJ ENM이나 롯데엔터테인먼트, 메가박스중앙, 쇼박스, 뉴(NEW)의 같은 시기 개봉 편수와 비교할 때 월등히 많다.


그뿐만 아니라 '소방관'이나 '승부'는 배우의 사생활 문제로 리스크가 있는 작품들이었던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뉴미디어 중심 광고대행사 포엠스토리에서 시작한 회사인 바이포엠스튜디오는 기존 투자배급사들에 비해 바이럴 마케팅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업계는 리스크가 있었던 두 작품이 기대 이상의 흥행을 하는 데 바이포엠스튜디오의 이 같은 마케팅 역량이 활용됐다고 보고 있다. 또한 대작 블록버스터가 아닌 중소 규모의, 타깃이 명확해 마케팅적 효과가 높을만한 작품을 선택하는 바이포엠스튜디오의 전략이 위기 상황 속에서 빛을 발했다는 평을 내리기도 한다.

롯데컬처웍스, 메가박스중앙 로고

◇ 롯데와 메가박스의 MOU

올해 상반기 극장가의 큰 뉴스 중 하나는 멀티플렉스 체인인 메가박스중앙과 롯데컬처웍스의 합병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이었다. 지난 5월 9일 두 회사는 MOU 체결을 발표하며 "두 회사의 합병을 통해 기존 극장 및 영화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신규 사업을 확대함으로써 코로나 이후 침체한 국내 영화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업계 2, 3위를 다투는 두 회사의 합병 계획은 그 자체로 한국 영화의 위기를 방증하는 듯해 위기감을 상기시키기도 했으나,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두 회사의 시너지를 기대해 봄 직하다.